'손가락에 꼽을 만큼 친한 친구 앞에서 마음을 푹 놓고 실컷 울어대는 일도 있었는데, 친구들은 나중에 장난 삼아 그 일을 '완창(판소리의 한 마당을 처음부터 끝까지 부르는 일)'이라 부르며 지금까지 놀린다.
기억으로는 완창을 두 번 했는데, 한 번은 거의 다섯 시간 동안 친구 집에서, 한 번은 대충 세 시간 동안 강릉에서 울어 젖혔던 것 같다.'
-박연준, 『소란』 중에서
영화를 보거나 소설을 읽다 보면 곧잘 눈물바람을 해 주위를 살피기도 하지만,
슬픔이 북받쳐 오를 때는 이상하리만치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정말 울고 싶을 때는 꽉 잠긴 수도꼭지처럼 마음이 답답해졌다.
'남자라고 울음을 삼키는 것봐.' 라며 누군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그때 뱃속 모든 걸 토해내듯 울고 싶었다.
'옛날에는요. 대곡제라는 게 있었어요. 남의 장례식에서 돈을 받고 대신 울어주는 일이죠. 물론 눈물을 흘리지는 않고 대체로 곡소리만 크게 규칙적으로 내는 일이었겠지요. 상주가 내내 곡소리를 내기 어려웠기에 생긴 제도 같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갑작스럽게 닥친 죽음에 도무지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는 사람, 무기력해진 사람, 마비된 사람, 현실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긴급 투입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김지연, 「울음의 형식」 중에서
열아홉 살의 봄날, 시골 할머니집에서 치른 아버지의 장례식. 영정 옆에서 홀로 상주가 되어 무릎을 꿇고 앉아 문상객을 맞이하던 나에게 어느 먼 친척분이 한마디 하셨다.
“아버지를 보낸 죄인이니까 더 크게 곡소리를 내야지”
아버지의 부재를 실감하기도 전에 나는 죄인이 돼 버렸다.
치욕스러웠다. 점차 배가 고파오는 게, 꿇고 있던 무릎이 너무 아파 잠깐이라도 일어나 무릎이나 허리를 쭉 펴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게.
그렇게 죄인의 마음으로 문상객을 맞이하고 보냈다.
슬픔의 정체를 목격하기도 전에, 스스로를 충분히 원망하기도 전에 그날은 조용히 지나갔다.
꺼이꺼이, 대성통곡, 미친 듯 울지 못해 내내 억울했다.
몇 년 전 퇴근하고 집에 와 옷방에서 옷을 갈아입다 말고 나도 모르게 노트에 이 글을 끄적였다.
그러다가 완창의 순간이 나에게도 찾아왔다.
이후로 글에 빚을 진 느낌이다.
글을 쓰는 이유는 그 빚진 마음 때문이다.
갚기 위해 쓰지만 이 빚은 쓰면 쓸수록 늘어난다.
글을 쓰다 보면 치욕스러움이 사라진다. 그렇다고 치욕스러웠던 날이 완벽해지는 건 아니다. 그저 어느 정도, 참을 만 해질 뿐이다. 완벽을 추구하지만 우리는 항상 '어느 정도'를 살아 내고 있다.
모멸감이 들 때면 집에 돌아가 밤에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럼, 그 하루가 견딜 만해진다.
★ '이어 쓰기' 연재를 마칩니다. 읽고 쓰므로 오늘 하루가 견딜 만 해지기를 바랍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FxBq8JCsRC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