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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다희 Oct 24. 2024

왜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되는 말을 할까

왜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되는 말을 할까: 침묵의 철학


모임에서 대화가 끊길 때, 어색한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말을 꺼낸 적 있는가? 꼭 하지 않아도 될 농담이나 덧붙일 필요 없는 의견을 굳이 내놓는 자신을 발견하며 후회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왜 우리는 굳이 말을 덧붙이는 걸까? 이 불필요한 말 속에는 인간의 불안, 존재감에 대한 갈망, 그리고 관계 속의 미묘한 심리가 숨어 있다.


1. 침묵은 불안하다: 공백의 공포


사르트르는 “타인의 시선이 나를 규정한다”고 했다. 대화 중의 침묵은 마치 타인에게 나의 존재가 사라지는 순간처럼 느껴진다. 침묵을 채우기 위해 하는 말들은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 **“나 아직 여기 있어”**라는 무의식적인 신호다. 인간은 공백을 두려워하고, 침묵 속에서 자기 존재가 지워질 것 같은 불안을 느낀다.


2. 말을 통해 관계를 확인하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는 세계를 그리는 도구”라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말을 통해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 이상으로 관계를 확인한다. 대화의 맥락과 상관없이 내뱉는 말들은 상대와의 연결을 유지하려는 시도다. “어디까지 이야기했지?“라거나 “날씨가 참 좋네” 같은 말은 정보의 가치보다 관계를 잇기 위한 의식에 가깝다.


3. 불완전함을 견디지 못하는 마음


칸트는 “인간은 항상 완벽함을 추구하지만 도달할 수 없다”고 했다. 대화 중에도 우리는 어색한 공백이나 불명확한 감정을 완벽하게 정리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 순간 떠오르는 말들은 대부분 준비되지 않은 미완의 표현들이다. 말을 덧붙이는 것은 대화를 완벽하게 만들고 싶은 강박의 표현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강박이 오히려 대화를 어색하게 만든다.


4. 침묵의 미학: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자유


동양 철학에서는 침묵을 가장 깊은 소통으로 여긴다. 노자는 “말하지 않음으로써 모든 것을 말한다”고 했다. 우리가 꼭 말을 해야만 서로를 이해하는 건 아니다. 때로는 침묵이야말로 가장 솔직한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침묵의 가치를 알면서도 그 순간을 견디기 어려워한다. 침묵은 관계의 불확실성을 떠안아야 하는 용기를 필요로 한다.


5. 결론: 말보다 중요한 것은 존재 그 자체


말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에도 말을 하게 되는 것은 우리의 불안과 관계를 확인하려는 본능 때문이다. 하지만 진정한 소통은 말의 양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진심에 달려 있다. 때로는 아무 말 없이도 충분히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 침묵을 두려워하지 말자. 그 순간에도 우리는 충분히 존재하고 있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사라지지 않는다. 진짜 중요한 것은 그 순간에도 내가 여전히 여기에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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