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다희 Oct 24. 2024

왜 우리는 계속 냉장고를 여는가

왜 우리는 계속 냉장고를 여는가: 허기의 철학


배가 고프지도 않은데 자꾸 냉장고를 열어보는 자신을 발견한 적 있는가? 문을 열고 내부를 확인한 뒤 아무것도 꺼내지 않고 닫는 행위를 반복하는 이 행동에는 대체 어떤 심리가 숨어 있을까? 냉장고 앞에서의 이 의식에는 우리의 삶과 욕망, 그리고 불안이 엉켜 있다. 이제 이 사소한 행동 속에 담긴 철학적 의미를 유쾌하게 풀어보자.


1. 존재와 공허: 냉장고 안에서 무엇을 찾는가?


헤겔은 “욕망이란 결핍의 인식”이라고 했다. 배가 고프지 않은데도 냉장고를 여는 건 단순한 허기가 아니다. 우리는 사실 삶의 공허함을 채울 무언가를 찾고 있는 것이다. 냉장고 안에 아무리 많은 음식이 있어도 그게 마음의 허기를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막연한 기대감을 품고 냉장고를 열며 이렇게 생각한다: “뭔가 내가 원할 만한 게 있을지도 몰라.”


2. 지연된 선택: 프로크라스티네이션의 한 형태


냉장고를 여는 것은 단순한 탐색이 아니다. 종종 그 순간은 무언가를 해야 하지만 미루고 싶은 마음의 결과다. 공부, 업무, 혹은 집안일을 미뤄두고 우리는 냉장고 문을 열며 스스로에게 작은 휴식을 선물한다. 냉장고는 마치 “지금 해야 할 일은 잠시 뒤로 미뤄도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안식처가 된다.


3. 탐험과 일상의 반복: 새로운 걸 기대하는 모순


놀랍게도 우리는 이미 냉장고에 무엇이 있는지 대부분 알고 있다. 그런데도 몇 번씩 열어보는 이유는 혹시라도 새로운 것이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기대 때문이다. 니체는 영원한 반복을 인간 존재의 본질로 보았다. 냉장고 문을 열고 닫는 것도 일종의 작은 반복이다. 매번 똑같은 결과가 나오는 걸 알면서도, 혹시 이번엔 다른 무언가가 있을지 기대하는 것이다.


4. 소유의 허무함: 넘치는 식재료와 부족한 만족


“냉장고에 이렇게 많은데도 먹을 게 없네?”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온다. 이는 쇼펜하우어가 말한 욕망의 무한 순환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의 욕망은 충족될 때마다 새로운 결핍을 만들어낸다. 냉장고 속 재료가 아무리 많아도, 우리는 늘 **“지금 당장 내가 먹고 싶은 그 무언가”**를 찾지 못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양이 아니라 내가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것이다.


5. 결론: 냉장고를 닫고 삶을 열어라


냉장고 문을 열어보는 것은 단순한 습관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일상을 향한 작은 기대, 결핍의 인식, 그리고 미뤄둔 불안이 숨어 있다. 하지만 냉장고가 모든 답을 주지는 않는다. 진짜 필요한 건 냉장고 속에 있는 음식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에 대한 통찰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다음번에 냉장고를 무의식적으로 열게 된다면 이렇게 생각해보자:

“진짜 내가 원하는 건 냉장고 안에 있는 게 아니라, 내 마음속에 있을지 모른다.”


“냉장고를 여는 건 잠깐의 도피일 수 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그 문을 닫고 나서 시작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