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도 만나 볼래요?
축구를 좋아하는 나, 그리고 22년 K리그 우승을 차지한 울산현대를 응원하는 나는 오랜 라이벌인 포항스틸러스를 좋아하지 않는다. 울산의 오랜 라이벌, 동해안 더비라고 불리는 상대편을 단순히 라이벌 구도를 엮어서 좋아하지 않거나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그 안에는 작은 이야기가 있다.
축구를 좋아하고 응원한 시간은 제법 되지만, 드문드문 끊겼던 시간들도 많기에 세세한 이야기를 모두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내가 겪은 것만으로도 포항스틸러스를 좋아하지 않는 일들이 제법 된다.
첫 번째는 김병지의 포항 이적이다. 포항의 경우, 모기업의 관계와 지리적 접근성이라는 이름으로 기자들이 만든 동해안더비라는 라이벌 구도가 형성되어 있었고, 2002 월드컵 이전 전남드래곤즈와 더불어 축구전용구장을 가진 팀이었다. 구단의 역사도 오래되었고 재미있는 축구를 했던 팀이다. 부러움과 시기를 가지고 바라본 팀이었다. 그리고 역대 유명한 국가대표 선수들의 소속팀이었다. 이름만 들어도 유명한 홍명보, 황선홍, 우리 전 세대인 최순호라는 걸출한 선수들이 포항 출신 또는 포항이 배출한 꽤 유명한 선수들이었다. 부러워했고 라이벌이라는 생각을 가진 곳에 팀의 상징이라고 생각했던 김병지 선수가 포항으로 이적을 한 것이었다.
예전부터 울산 프런트가 일을 못한다고 호되게 욕을 먹던 시절이었다. 당시 울산 프런트는 자신들의 위치가 선수들이나 팬들보다 높은 위치로 생각하고 있어서 본인과 등급이 맞지 않는다라는 생각을 가지면 상대편의 의견은 가볍게 무시해 버린다. (검증되지 않은 사견이기에 오해는 없기를 바란다_지극히 개인적인 시점이다) 그러면서 선수의 요구사항을 잘 들어주지 않았고, 선수들은 더 좋은 기회를 찾아 떠나가기도 했다.
김병지의 포항 이적 후 울산은 포항만 만나면 승리를 하지 못했다. 김병지는 울산만 만나면 미친듯한 선방이 이어졌고, 울산은 패배 또는 무승부의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으며 포항만 만나면 승리를 하지 못한다는 불안감과 더불어 포항팬들의 조롱을 몸소 맞게 되었다.
그 후 김병지는 2005년 시즌이 끝나고 FC서울로 이적을 하게 되며 울산은 김병지의 트라우마를 조금씩 벗어나게 된다. 그러면서 나의 마음도 조금은 부드러워지게 되었다. 결국 포항에 대한 패배가 싫었던 것이다.
두 번째는 2007년 K리그 시즌이다. 축구 리그라는 종목에 플레이오프라는 제도를 운영하던 시절이다. 6강 플레이오프 제도를 도입했다. 야구의 플레이오프와 비슷하게 운영이 되었는데, 3~6위 팀이 겨뤄 최종승자팀이 2위 팀과 맞붙었다. 그 경기에서 승리팀은 1위 팀과 맞붙어 최종 챔피언을 결정짓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개인적으로 축구리그 경기에서 플레이오프 방식을 매우 반대한다. 이유는 축구리그는 장기간 기나긴 여정으로 운영이 되는 한 시즌의 노력에 대한 결과물과 보상인데, 플레이오프는 6위 팀이 최종 챔피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1년 동안 리그의 많은 경기를 하면서 한 경기 한 경기가 소중한 것인데, 플레이오프로 챔피언을 정한다면 리그 경기는 그저 챔피언결정전에 가기 위한 가치 없는 수단에 불과한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실제로 유럽 리그의 경우 플레이오프로 운영되지 않는다. 경기 자체에 대한 가치부여를 하고 결과물의 종합으로 우승팀과 그 시즌의 순위를 결정한다. 우리 인생과 마찬가지로 보는데, 내가 노력하고 이뤄낸 결과물을 통해 가치를 만들어 간다는 것이 인간다움과 연결된다고 바라본다.
어쨌든, 3~6위에서 한 팀을 가려내기 위해서는 두 번의 경기가 필요했다. 울산과 포항은 각각 승리를 거두고 2위와 맞붙기 위한 경기를 치르게 된다. 당시 울산은 3위였고, 포항은 5위였다. 포항은 4위 팀을 이기고 울산은 6위 팀과 맞붙어 일정을 소화했다. 경기는 대진 시 상위팀의 홈구장에서 이루어졌기에 문수에서 경기를 했다. 승부차기를 통해 울산과 맞붙게 된 포항의 열세로 생각했으나, 포항이라는 팀은 울산만 만나면 절대적인 팀이 되어버린다. 전, 후반 각각 1골씩 먼저 넣어 2:0으로 리드하다 우성용이 만회골을 넣었으나, 이미 대세는 기울어졌고, 당시 문수 S석에는 (그 당시에는 S석이 원정/N석이 홈) 1,2층 포항팬들로 가득했고, 울산에 대한 조롱의 소리는 극에 달했다. 포항에 대한 좋은 감정은 아니었지만 이 시기부터 미워하는 감정이 생긴 것 같다. 늘 포항에 무너지고, 놀림받고 조롱당하고 내가 울산을 응원하는데 부러워했던 팀이었고 우리 팀 보다 잘하는 팀을 응원하는 팬에게 비참한 대우를 받는 게 너무 싫었다. 결국 그해 정규리그 5위 팀이었던 포항은 파라이스 감독의 매직이란 말과 더불어 1위였던 성남일화까지 무너뜨리고 최종 챔피언 자리에 등극하게 된다.
이후 축구에 대한 마음이 멀어졌다. 정확하게는 K리그에 대해 거리를 둔 것이 맞다. 그 당시 박지성이 잉글랜드에서 활약이 대단했고 미디어도 해외축구로 집중되어 있었다. 울산의 미끄러짐과 더불어 해외축구로 눈을 더 돌렸고 취업이란 핑계로 축구장을 잘 찾지 않게 되었다. 대신 다른 재미를 찾았었다. (술을 많이 먹었었지) 불안정한 삶 속에서 이 회사 저 회사 옮겨 다니며 30대에 이르러 안정이 되었을 때 다시 축구장을 찾게 된다.
세 번째가 바로 2013년 시즌이다. 13년이 되어 조금은 안정된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고 당시 울산의 성적도 매우 좋았다. 12년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무패 우승을 한 팀이었으며, 13년 시즌은 리그에서 꽤 괜찮은 성적을 내며 진행되고 있었다. 드디어 문수에서 마지막 경기가 오랜 숙적 포항스틸러스와 마지막 경기가 13년 12월 1일 열리게 되었다.
당시 울산과 포항은 승점 차이가 2점으로 비기기만 해도 우승이 확정되는 경기였다. 당시 김신욱이 경고 누적으로 그날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으나, 단단한 수비력으로 철퇴축구라는 별명으로 리그를 지배하던 울산이었기에 무난히 우승하리라 생각했다. 날씨가 제법 쌀쌀했지만 2만이 넘는 관중들이 문수를 가득 채운 날이었다.
팽팽하던 경기의 끝자락 전광판 90분의 시간은 채워졌고, 추가시간 4분이 주어졌다. 모두 7년 만의 우승을 준비하던 시간 주어진 추가시간도 흘러간 그때 마지막 포항의 프리킥이 선언되었다. 시종일관 라인을 올려 울산을 압박하던 포항의 마지막 기회였다. 하프라인에서 올라온 공이 포항 선수의 슛으로 이어졌을 당시 김승규의 첫 번째 선방이 있었다.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서의 혼전의 상황에서 리바운드된 공을 김원일 선수가 밀어 넣어 경기장 분위기를 뒤집어 놓는다. 그 시간 문수구장은 누구에게는 처절함을, 누구에게는 전율이 쏟아지는 환희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나는 전자에 속했다. 나는 E석 중앙 2층에서 경기를 보고 있었는데 그대로 얼어버렸다. 반면 포항팬들의 아드레날린 분비는 극에 달아 흥분의 도가니로 바뀌었다.
그때 포항 팬들이 캔, 페트병 등 위험도구들을 문수구장 안으로 던지기 시작했다. 내가 포항팬들에게 멸칭(멸칭명 : 고철놈)을 부르고 그들을 향해 긍정의 신호를 보내지 못하는 이유는 이 당시 문제의 행동들 때문이다. 기쁜 순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구장 안으로 위험한 물건을 던지는 행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지금도 용서할 수 없다. 경기장에서 자신의 역할에 최대한 집중하고 있는 선수들에게 크나큰 위협이 되는 요소들이다. 기쁨의 표현을 물건 투척을 통해 표현한 것은 훌리건의 문화가 진정한 유럽축구 문화라며 착각한 몰상식한 팬심으로부터 기인했다. 소수의 몇몇이 그렇게 했지만 이들의 행동이 전파되는 속도는 상당했고, S석에 있던 포항팬들은 동화되어 같은 행동을 하며 문수구장 S석 부근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들의 행동으로 인해 상당한 경찰 인력들이 급하게 투입되었다. 투입된 경찰인력에도 불구하고 통제하지 못한 그들이었지만 결국 조롱받고 놀림받은 울산홈팬들은 그로기 상태로 그 볼썽사나운 광경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날 울산현대의 홈구장인 문수에서 포항은 우승을 확정하게 되고, 울산팬들의 자존심은 또 너덜너덜 해지게 된다. 그날로 인해 가뜩이나 사이가 좋지 않던 울산과 포항 팬들의 거리는 더 멀어지고 서로를 더더욱 으르렁 거리며 강력한 라이벌리가 견고해져 갔다. 나 또한 포항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이 가득했고, 나는 다시 축구장을 떠나갔다.
그렇게 2014년이 되었고, 아내를 처음 만났다. 우리 둘만의 시간을 행복하게 보내며 2015년 결혼을 했다. 결혼을 하기 전 두 번 정도 축구장을 함께 갔었지만 단발성으로 갔을 뿐 지속적으로 방문하지 않게 된다. 그만큼 애정이나 간절함도 많이 덮어진 채 축구는 조금씩 멀어져 갔다.
그렇게 아이가 태어나고 바쁜 일상을 겨우겨우 살아가며 버티며 살아온 2022년 3월, 갑자기 축구장에 가자고 내가 제안했다. 나의 아내 또한 축구를 좋아하며 98년 프로축구의 르네상스 시대에 오빠부대의 한 사람이었다. 난 오빠부대를 응원한다. 그들 또한 그렇게 축구를 입문하게 되며 자연스럽게 축구를 알아가고 좋아하게 된다. 아이가 여섯 살이 되었고 그 나이면 축구를 보러 가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마침 3월 FC서울과의 경기가 문수에서 하게 되었고, 아내가 좋아하는 기성용 선수를 얘기하며 FC서울과의 경기를 보러 가자고 제안했다. 기성용의 잘생긴 얼굴을 보기 위해 승낙한 내 아내와 2022년 축구 여정은 시작이 되었다.
축구를 보지 않던 시간 울산은 거듭된 준우승을 겪었고, 준우승만 열 번, 반별 10개, 탕수육 쿠폰 발행 등 여전한 조롱을 당하고 있었다. 예전의 팽팽한 마음은 사라졌기에 연연해하지 않았고, 가족들과 함께 축구장을 다니며 응원하는 게 하나의 꿈이었던 나에겐 그저 좋은 시간이었다. 그렇게 첫 경기를 승리와 함께 아내는 새로운 잘생긴 선수(설영우)를 맞이하게 되고 우린 거의 모든 경기를 홈, 원정 가릴 것 없이 가게 되었고, 22년 시즌은 우리 가족들과 함께 별을 맞이한 시즌이 된다.
언젠가는 축구 여행기로 다른 글을 옮길 예정으로 22년 축구 일정은 여기에서 언급하지 않는다. 여기의 주된 이야기는 강철전사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22년 다시 축구를 보게 되었지만 포항에 대한 감정은 여전했다. 3월 첫 경기를 승리로 장식해 짜릿한 기분을 맞이 했지만, 7월 2일 원정에서 패배, 9월 11일 문수에서 93분에 극장골 얻어맞고 역전 패배, 파이널라운드 동점골 헌납의 무승부 등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극복되지 않는 그들을 향한 응어리가 뭉쳐져 있다. 여전히 올 시즌에서 패배했을 때 그들의 놀림과 조롱은 기분이 매우 나빴다. 내 아내도 처음 느껴봤던 감정이라고 했었다. 앞서 얘기했듯이 부러움과 시기 질투가 그들에게 지고 싶지 않았고, 경기 패배 시 맞이 하는 그들의 조롱이 극도로 싫었던 것 같다. 그리고 늘 중요한 순간에 포항에게 발목을 잡히던 울산이었다. 3가지의 이야기로만 설명되기에는 그들과의 역사의 시간은 꽤 길며 벽은 매우 높다.
하지만 이 상황이 싫지는 않다. 프로스포츠에서 라이벌 구도는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유럽리그는 이미 백 년이 넘는 더비 역사를 지닌 팀들도 꽤 존재한다. 그렇게 축구문화는 계승되고 더비의 이슈는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수입 창출 수단이 된다. 예전과는 달라졌지만 지금은 구단에서도 라이벌 구도를 적극 유도하고 있다. 최근 포항 공식 인스타 계정에 20220911이라는 숫자를 적어 극장골 현장을 담았다. 우리가 언급하기 싫어하는 20131201이라는 숫자와 더불어 함께 엮은 것이다. 정말 이들과의 관계는 끊어낼 수 없다. 애증이라는 진부한 표현이긴 하지만 가장 어울리는 관계이다.
늘 발목 잡히고, 조롱받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울산이 포항을 잘 이겨야 한다. 그래야 우리도 놀리면서 더 강력한 라이벌 구도가 형성되고 정착될 것이다. 선수들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포항에 소속된 선수 중 울산에서 좋은 활약을 한 선수도 있다. 그리고 그들에게 프로축구팀은 직장이기에 이직을 할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포항스틸러스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 팀을 응원하고 우리를 조롱하고 놀렸던 강철전사를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는 절대 서로가 친해질 수 없는 사이다. 동맹을 거절한다. 연합을 거절한다. 내년 시즌 울산이 포항을 이기는 시간을 기다린다. 지금 드는 생각은 내년 시즌에 포항 홈인 스틸야드에서 승리하고 한 시간 동안 카니발을 하며 즐기는 것이다. 강철전사를 놀릴 생각에 아주 들뜨고 있다. 정말 단순하다. 어떻게 보면 작은 것 하나인데, 크게 의미를 부여하며 기뻐하고 슬퍼하고 분노한다.
그런데 강철전사를 좋아하지 않는 마음 또한 내가 이루고 싶은 것을 제시하기에 삶의 활력소가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이런 문화들이 단순히 좋다 나쁘다로 구분하는 이분법적인 잣대는 불필요한 것 같다. 앞서 그들의 행동이 미웠지만 그 행동들로 인해 꿈과 희망을 품고 삶의 목표와 활력을 제공해 주니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닌 것이다. 적당한 선을 지키며 서로를 으르렁 되는 모습도 재미있지 않나? 내년에 포항에게 지면 또 기분 나빠할 것이다. 하지만 승리하는 상상을 하며 기분 좋아지는 것 또한 배시시 미소가 번진다.
얼른 축구장 가고 싶다. 내년 시즌 울산이 우승 안 해도 되니까 포항에게만은 전승했으면 좋겠다. 강철전사에게 큰소리로 놀리고 싶으니까! 세월이 지나도 많은 시간이 흘러도 나는 여전히 강철전사를 좋아하지 않는다.
강철전사 여러분 너무 미워하지 마세요! 우리 내년 시즌도 이렇게 으르렁대며 재미있게 즐겨 봅시다.
(싫어하는 게 아니라 좋아하지 않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