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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 사람 가탁이 Mar 17. 2023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태어나 처음 글쓰기를 배웁니다

다시, 또 이어진 철로를 보며 서 있습니다. 희망을 품고, 다시 살 수 있다는 긍정의 마음을 품고 서 있던 자리입니다. 

서울 가는 게 싫었습니다. 아니 서울이 싫었습니다.

제게는 서울이 싫어진 이유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힌트를 드리자면 저라는 사람이  까칠한 면도 있지만, 그렇다고 이유도 없이 막 싫어하는 사람은 아니랍니다.



가장 큰 이유이자 첫 번째 이유


"여기 보입니까?" 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하고 1년 6개월이 지났을까요? 처음 수술을 받았던 S대학교병원 집도의가 평소 보여주지도 상세한 설명도 해주지 않던 CT화면을 살짝  돌려주며 말하더군요 "희미하게 뭐가 보이는데, 지난번 수술부위 바로 아래쪽에. 수술해 버리죠" 아주 무심히, 일상이라는 듯(암전문 의사이니 당연한 일상이겠으나) 말을 던져주었습니다. 이건 또 무슨..."선생님! 한 번 보고 어떻게, 다음에 한 번 더, 자세히 보시고도 같은 의견이시면, 그때..." 백지가 되어버린 머리로 무슨 말인지, 단어인지를 나열하며 사정하다시피 했습니다 "시간 번다고 달라지지 않을 텐데요"


2개월인지 3개월인지 후에 CT촬영을 했습니다 내용은 전과 같거나... 가 아닌 전보다 조금 더 진행이 되고 있다고 했습니다. 가슴 졸이던 2개월의 시간이 무의미해졌습니다. "수술날짜 잡고 가시죠" 더 이상 미룰 수도, 반박도 할 수 없게 간호사의 안내에 이끌려 모든 일정이 잡혀버렸습니다. 예약안내문에 빨갛고 큰 동그라미 몇 개가 그려지며 또 낭떠러지 끝으로 밀렸습니다.


'수술할 수 있을 때가 행복한 때'라는 웃픈 얘기가 암환우들 사이에 농담처럼 돌아다닙니다. 하지만 수술도 해 본 사람만이 죽음과 삶 사이에서 떨어야 하는 극도의 공포를 알 것입니다. 쇳덩이가 부딪히며 내는 둔탁한 소리, 입술이 파랗게 변할 만큼 차가운 실내공기, 두려움에 몸이 움츠리다 쪼그라들 때 즈음 전해지는 마취제의 온기로 아득해지는 현실,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 감히 장담할 수 없던 현실... 또다시 그 공포를 느끼고 싶지 않았습니다. 답답한 당사자가 우물을 파 보기로 하고 귀동냥 눈동냥 손가락동냥으로 '양성자치료'에 대해 알게 되었고 무턱대고 서울 S병원 콜센터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진료예약을 하고, S대학교병원 수술은 취소를 해버렸습니다. 국내 최고의 의료진으로 꾸려져 있다는 병원의 검사결과를 외면해 버린 것입니다.


눈도 마주쳐주고 CT촬영 화면을 보여주며 상세하게 설명 해 주며, 주어진 최소한의 진료시간에는 제 몸상태와 마음상태에 집중해 주는  의사를 만났습니다. 만난 지 1년이 되기도 전, CT화면을 상세히 설명하며 치료를 해야겠다고 조심스레 접근하긴 했지만요.

양성자치료가 아닌 방사선치료를 했습니다. 하지만 수술보다 두려움은 덜 했습니다. 눈을 뜨고,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정확한 위치에 제대로 방사선을 쏘는지 볼 수 있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다섯을 세기도 전에 깊은 잠의 나락으로 떨어져 몇 시간 만에 "환자분 정신 차리세요" 가벼운 두들김으로 정신을 차리지 않아서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게, 그 짧은 순간에,  네엣... 다서어...하는 동안 살아온 일생이 지나가더란 말이지요. 주마등처럼 이란 딱 그 표현대로!


두 번째 이유

제 글, 암 경험자로 살아가다 매거진 내 '36년 줄다리기의 줄을 놓다'에 아팠던 그날들을 적어 보았습니다.



아직도 3개월마다 2번씩 서울을 가야 합니다. 친절한 선생님이지만 자주 보고 싶지 않다고 얘기했는데 안된다고 해서 말이지요. 갈 때마다 열차를 기다리며 늘 서있는 자리가 아니어도 긴장감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머리는 긴장을 놓았다고 하는데, 몸과 마음은 아니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제 그러지 않을 것 같습니다.
여행 가는 듯한 마음이 조금씩 생기고 있습니다. 병원 정기검진이 서울 여행의 빌미가 될 것 같습니다. 서울이라는, 두렵고 낯선 도시가 조금은 편하고 익숙해질 것 같습니다.
같은 하늘아래 글쓰기 동기들이 있고 매회마다 열정과 끈기와 줌수업에 대한 어설픔이 있었던 편성준작가님이 있으니까요.
오늘도 CT를 참하게 찍고 가는 길입니다. 이러다 영상 기사님이 예쁜 제 폐사진에 홀딱 반하는 건 아닐까요.
열차역 주변의 공기와 사람과 그 모든 것들이 볼 때마다 다른 모습이었음을 오늘 알아버렸습니다.

이젠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서울이 싫지 않습니다.



KTX 철로, 눈부심의 시작
암 병동으로 가는 입구, 귀여운 베니의 모습과 응원메세지에 울컥...

#글쓰기#암수술#마음#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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