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는 사람 가탁이 Jan 18. 2023

36년 줄다리기의 줄을 놓다

시원보다는 섭섭

재택근무 가능 기간을 며칠 앞둔 2021년 12월 마지막 주 어느 날, 1년여 동안 묵혀두었던 은회색 캐리어를 낡은 옷장에서 끄집어냈다. 철 지난 옷, 낯선 만큼 단골이 되지 못했던 영등포시장에서 산 옷을 캐리어에 구겨 넣으며 옷 위에 쌓여가는 이야기에 또 눈물이 고여왔다.


2020년 12월 마지막 주 어느 날,

의무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휴가를 보내야 했기에 그날 난 집에서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었다.

인사명령이 있었다 했다. 그것은 전혀 예고되지 않은 인사명령이었다. 마침 근무 중이던 선배로부터 인사명령을 알리는 전화가 왔다. 조직에서는 수개월 전부터 밑그림이 그려지고 명단이 추출되었을 테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한 거라고는 몇 해전 건강을 지키지 못해 1년여의 시간 동안 멈출 수밖에 없었다는 것 밖에 떠오르는 것이 없던 내겐 청천벽력보다 더한 인사명령이었다.

며칠 동안 설마설마하며 잠들지 못했다.

원인 모를 고통으로 온 새벽을 끙끙거렸다.

신생 부서에, 근무지역도 불분명한 터였다.

재택근무기간이 끝나기 전 날 저녁, 근무지역을 알리는 문자가 왔다. 그날은 금요일이었고, 전혀 이르지 않은 시간이었다. 가독력이 약한 건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내용이라 문자를 보낸 담당자와 통화를 시도했지만 연결될 리 만무했다.

'1월 ○일 9시까지 출근. ○○금융센터 4층'

○○금융센터라면 서울이라는 것 밖에 알 수 있는 게 없었다.

지역에서 같이 발령 난 선배와의 통화가 잦아졌다.(조기퇴직 신청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같은 부서 발령을 받은 선배였다.)

"설마 거기에서 근무하는 건 아니겠죠?"

" 에이 설마.. 하루 전달교육받고 내려오지 싶다. 혹시 모르니 2~3일 옷가지 챙겨가면 안 되겠나"

숙소에 대한 얘기도 전혀 없던 터였다. 통상 지점장들이 타지로 이동시에는 별도의 숙소, 오피스텔이나 아파트등이 제공되었지만, 이건 전혀 통상적인 상황이 아닌지라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래도 최소한 "숙소는 ○○합숙소로 정해졌습니다" 정도는 해줘야 하는 게 아닌가... 아무리 조직이 냉정하다지만 한 장의 문서로 '지점장'에서 '부장대우'로 강등되면서 모든 상황도 대우받지 못하게 되어버린 거다.

'최소한'이라는 단어조차 무색해졌다.

  

2021년 1월 출근 첫날,

하루 만에 덮고 잘 이불까지 챙겨 가야 하는 현실이 믿기지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황망함과 막막함으로 캐리어를 채우고, 억울함과 설명할 수 없는 감정으로 마음을 곱씹으며 집을 나섰다. ‘내가 잘못한 게 뭐지? 조직에 해를 끼친 게 도대체 뭐지?’ 답이 있긴 했다. 건강을 지키지 못한 큰 잘못이 있었다. 내 힘으로 어쩌지 못한 잘못이 있긴 했다.

새벽의 서울거리는 낯설기만 했다. 동행한 선배와 낯선 서울 길을 불안하게 헤매었다. 이른 시간 도착했지만 몇 번의 환승을 해야 하는 교통편이 익숙지 않아 이곳저곳 헤매다 결국 택시의 힘을 빌리고야 말았다.

그날, 불안한 퇴근길. 버스 창문 밖으로 내 맘처럼 뿌연 눈발이 날렸다.


담당부서장, 인사부장, 노조위원장, 관리자노조위원장.. 얼굴을 마주하고 답을 듣고 싶었으나 그럴만한 용기가 내겐 없었다. 만나주지도 않을게 뻔하다고 주변에서 얘기했으니까.. 차선책으로 메일을 보냈다. 그나마 일방적으로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회신을 보내온 이는 아무도 없었다.

며칠만 있으면 하다가, 3개월만 있으면 했다가, 상반기 인사이동 즉 7월 초에는 발령이 나겠지 했다. 설마설마하며 어느새 1년을 보냈다.

1년이란 시간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 것이 있었다. 서울에서 첫날의 눈과 마지막 날의 눈은 하얗게 될 수 없었고, 왕복 세 시간 동안 온갖 대중교통을 이용한 출퇴근 생활은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았고, 가야 할 곳은 있었으나 머무를 곳이 없었던 근무생활이 그랬다. 할 일은 주어졌으나 할 수 없는 일만 있었다. 서울과 경기에서 거주하며 주활동 지역인 동료들 역시 할 수 있는 게 전혀 없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참담하고 답답한 마음을 안고 사무실 주변 산등성이를 오르고 또 오르는 것뿐이었다.

월요일 새벽부터 금요일 저녁까지 낯설고 외로운 도시에서 이방인으로 살아야 했던 그 시간은 내가 끝내지 않고서는 끝나지 않을 시간이었다.


끝나지 않는 건 시간만이 아니었다.

끝나지 않는 시간 안에, 끝나지 않은 내 기도도 있었다.

용케도 잘 견뎌주던 불안이 추적관찰 중 의심스럽다는 소견이 나왔고, 병원을 옮긴 이유였던 '수술거부'로 인해 선택의 여지는  '방사선치료'만 남아있었다. 치료 후 보험정구를 위해 발급받은 진단서를 보고 알았다. 치료의 이유가 '재발'이었음을...


그림에도 불구하고 아직 기도한다.

제발, '재발'만은 아니었기를, 오진이었기를...


또 한 번의 잘못(건강을 지키지 못한)으로 인한 인사명령은 없었다.

더 이상 나락으로 밀어낼 필요가 없었던 것인지...


2021년 12월 마지막 주,

선택을 해야 했다.

살기 위해 선택을 해야 했다.


짧은 메일 한 통에 이름 세 글자로 답을 보내고, 천근만근의 무게철커덕 거리며 출력된 ‘사직서’에 행여 지워질까 볼펜으로 꾹꾹 눌러가며 이름을 적었다. 사내용 대봉투가 내 맘처럼 길을 잃고 헤맬까, 유성펜으로 받는 곳과 보내는 사람을 적어 업무직원 손에 정확히 넘겨주었다.

후우..

그제야 깊은숨이 쉬어졌고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살기 위해 난, 의도되고 포장으로 부풀려진 ‘자발적 종지부’를 찍고 정시에 마지막 퇴근을 했다.


예고에도 없던 눈이 내린 2021년 12월 마지막 주 어느 날 새벽,

드디어 은회색 캐리어를 다시 만질 수 있었고 끝내 포근해지지 않고 익숙해지지도 않던 서울 외곽의 합숙소를 탈출할 수 있었다.

아무도 손대어 등을 밀지 않았고 손 내밀어 당기지도 않았는데 1년 가까이 사용한 방 열쇠를 넘기며 난 내 안의 돌부리에 걸려 목부터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제야, 36년 줄다리기의 줄을 놓은 것이다.


'때론 눈으로 흘려내는 슬픔보다, 가슴에 묻어나는 슬픔이 더 아프더라'


가탁의 삶으로..

#마무리#인사명령#줄을 놓다#조기퇴직

이전 12화 또 하나의 아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