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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 사람 가탁이 Feb 22. 2023

손으로 노래를 부른다고?

그놈에 대한 이야기

괜찮다고 생각하면 마음도 감정도 고요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한 숨 자고 나면 아무 일도 없던 일상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어난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 될 수 없는 것이었다.


부지점장이 쭈뼛거리며 물어왔다. 눈도 쳐다보지 않고 지점장실에 들어선 것도 들어서지 않은 것도 아닌 채..

"회장님께서 저녁식사 한 번 하시자는데요"

"어느 회장님께서요?" 저녁식사를 원하는 회장은 한 사람으로 예상이 되었으나 모른척하고 싶었다. 지난번 융숭한 식사대접에 보답하고 싶다는 초대의 말에 보답은 무슨.. 한숨 쉬듯 내뱉아버렸다. 마음이 말하고 있었다. '또 보고 싶지 않다.'


쩔 수 없이 두 번째 저녁식사 자리를 갖게 되었다. 우리는 을 중의 을이었고 그는 갑 중에서도 갑이었다.

이번에는 중국집 코스요리가 메뉴였다. 지나가듯이 가격을 쳐다보았더니 지극히 평범했다. 코스요리라고 정해진 게 이상하리만큼.. 하지만 문제는 음식이 아니었다.

그리 기름진 음식을 먹은 것이 아니었음에도 속이 울렁거리며 부대끼기 시작했다. 또 시작된 ○회장의 말, 더럽고 지저분한 말이 속을 헤집어놓기 시작했다.

'이 인간은 도대체 나를 뭘로 보고...' 욕지거리가 나오려는 걸 겨우 참고 끝난 식사시간을 빌미로 그 자리를 벗어나려는 찰나,

"음식이 기름져서 그런가 속이 좀 부대끼는데 어디 가서 소화 좀 시키지"

나와 마주하고 있던 전무님에게 슬쩍 곁눈질로 말을 던졌다.

던져진 말이 땅에 닿을까 무서웠는지 내 옆자리에 있던 ○부지점장이 한마디 했다.

"네 회장님! 저도 여쭤보려고 했습니다. 어디 가고 싶은데 있으십니까?"

식사장소에 오기 전 신신당부했었다. 2차는 없다, 있어서는 안 된다, 있어도 나는 안 간다라고..

어느새 뒷좌석에 모셔진(?) 나는 좌회장 우전무의 위치에서  옴짝달싹 못한 채 익숙하지 않은 밖의 풍경을 불안하게 쳐다보고만 있었다.


바닷가 좁은 도로 옆 2층이 목적지였다. 운전기사인 젊은 직원이 차를 최대한 입구 쪽에 가깝게 주차를 한 후, 날아가다시피 휠체어를 가지고 사라지더니 바람의 속도로 뒷문을 열고 뒷좌석 쪽으로 등을 깊숙이 밀어 넣었다. 익숙하다는 듯 ○회장은 그의 등에 업혔고 하반신의 기운은 1도 없어 무게중심이 아래로 쏠려있는 ○회장을 업고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1층에 있는데 가시지요" 쌀쌀한 기온에도 땀을 뻘뻘 흘리고 다리까지 후들거리는 젊은 직원의 뒷모습을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목에 날을 세우고 얘기해 버렸다. 

"안돼. 여기 연주자가 색소폰을 멋들어지게 분다고, 그의 색소폰 반주가 아니면 노래가 안된다고"

"반주 탓이 아니고 타고난 음질 탓은 아닐까요?"하마터면 입으로 내놓을 뻔했다.

2층에는 저녁임에도 낡은 빌로드천으로 된 커튼이 드리워져 있어서인지 실내는 공기조차 붉으스레 했다. 흐릿한 조명아래 각을 잡은 휠체어가 놓여있었고 서늘한 냉기에 두려움이 느껴졌다. 휠체어가 두렵다고 느낀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어색하고 불편한 분위기를 깨뜨리려는 듯 ○부지점장이 나를 뒤로한 위치에서 마이크를 잡았고 앉을자리조차 부족한 그 공간에서 난 이방인처럼 불안하게 서 있었다.

○지점장! 이리 와서 손 좀 잡아줘. 난 다른 사람 손을 잡지 않으면 노래가 안돼

노래를 부르지 않았으면 했던 ○회장의 노래를 들어야 했다. 두 곡을 연이어 부르고 나서는 마이크를 내게로 넘겼지만 서둘러 그 공간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만으로 온 신경을 곤두세우던 내게 마이크 따위가 눈에 들어올 리 만무했다.

굳어질 만큼 굳어져버린 나의 얼굴과 마음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전무님이 회장의 눈치를 살피며 자리를 옮길 것을 제안했다.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핑계로 다음 장소로 움직이지 않은 나는 서둘러 들어온 집에서 얼마 먹지 않은 저녁을 몽땅 게워냈다.


거래가 끊어져도 괜찮고, 아니 끊어지면 좋고, 그 포지션만큼 열 군데 스무 군데 안되면 백 군데라도 다닐 테니까 ○기업과의 거래는 ○부지점장 선에서 가능한 부분까지만 하시죠 나는 더 이상 ○기업 방문도, ○회장님 뵙는 일도 없을 테니까, 더러운 갑질은 어제까지만 받아주는 걸로

"괜찮겠습니까?""안 괜찮으면요? 지점장 대신 손 잡혀주렵니까? 축축한 땀에  한번 적셔보렵니까? 그런데 말입니다. ○회장은 남자 손은 거들떠보지도 않을 텐데, 괜찮겠습니까?"



아닌 건 아니다, 싫은 건 싫다고 말하지 못했던 어제의 내가 싫었다. 하지만 그토록 싫었던 어제의 내 어깨위 십여 명의 직원들이  있었기에 용기 없던 나였어도,  미워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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