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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 사람 가탁이 Feb 06. 2023

마음의 장애는 어떻게 치료할까

그에 대한 이야기

그는 나를 잘 모시라고 해준 사람이다,

학교후배인 ○부지점장에게 "겉은 영락없는 여자지만 속은 아니다."라고 조언(?)을 해주며 잘 모시라고 했던,


더 늦기 전에 그의 얘기를 해야겠다. 기억할 수 있을 때 꺼내놓지 않으면 너무 깊숙이 가라앉아 버려 나를 더 병들게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살아온 세월만큼 사람의 내면을 볼 줄 알고 진심을 읽을 줄 아는 분이라고 생각했다. 처음 부임인사차 방문했을 때와 두 번째 회사의 자금요청차 방문했을 때 사무실 직원들의 불편하고 불안한 표정과 가라앉은 공장의 분위기가 초임 지점장인 나조차도 내키지 않았다. 그는 그 기업의 대표이사, 아니 회장이었다.


사람을 상대하고, (물론 법인, 중소기업도 있지만 결국 대표도 사람이다.) 새로운 인연을 문어발식으로 만들어가고, 만들어진 인연은 억지스럽게라도 돈독하게 해야 하는 게 금융기관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본업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금융기관은  '고객'이 전부인 곳이다.

삼십 년 이상을 몸담고 해 온 일이었지만 낯선 사람을 만나는 순간은 늘 두렵고 긴장된다. 그도 그랬다.

꼭 가야 하는 '거래처'라고 했다. 우리 지점을 거래하는 기업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오는 기업이라고 했다. 방문 전 서류로 먼저 만난 기업은 고개가 갸웃거려질 정도였지만, 거래처 인사를 시켜주지 않던 ○부지점장이 웬일로 그곳은 방문일정을 잡았다.  회장님 뵙기 힘들다며..


갈색 가죽소파와 으리으리한 고가구들이 가구전시장을 방불케 하는 그의 사무실로 들어가면서 이상하게 숨이 막혔지만 심호흡 몇 번 하고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인사를 했다. 방문 첫날 몇 달간 풀리지 않던 숙제를 받았고 며칠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해결이 되었다며 감사의 표시로 저녁을 먹자는 요청이 왔다.


꼭, 저녁 이어야 한다는 요청이 내키지 않았지만 나는 조직의 일원이며 독립체산제인 한 조직을 이끌어 가는 사람이 아니던가..


상식적으로 감사의 표시는, 감사한 쪽에서 감사한 만큼 비용을 지출함으로써 드러내는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비용이 문제가 아니었다.

식사비용은 처음부터 우리 경비로 지출할 생각이었지만 흡사 '임원회식' 분위기를 방불케 하는 참석인원과 취한 기색이 전혀 없음에도 웃음으로 받아치거나 못 들은 척 무시해 버리기에도 더러운 말들이, 해진 옷보다 더 낡고 구멍 난 말들이, 음식물쓰레기보다 더한 악취를 풍기는 말들이 회장의 입에서 쏟아지기 시작하고 나서는 일분일초가 힘들고 피곤하기만 했다. 어지간한 분위기는 깨뜨리거나 어색한 게 싫어 맞춰나가는 나로서도 늦은 시간까지 폭력에 가까운 언어에 시달리다 보니 집에 와서는 거실에 널브러져 버렸다. 손끝하나 까딱할 수 없을 만큼 마음이 너덜너덜해졌다.  육체적인 노동보다 정신적인 노동, 언어도 엄청난 강도의 폭력으로 휘둘러질 수 있음을 새삼 느끼게  날이었다.


그는 양쪽다리가 불편한 사람이었다. 휠체어를 타면서도 기운이 살아있는 모습에 나의 선입견(장애를 가진 사람에 대한)이 부끄러웠었다. 몸이 불편해도 마음은 건강할 거라고, 말이 험한 것은 자신도 모르는 약함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는 형식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 저녁식사 자리를 갖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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