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일'

시간이 흐른다는 것

by 레들민

나이 오십 중반의 세 친구가 모였다. 미혼이던 시절 문밖에만 나서면 자석처럼 들러붙어 어울려 놀던 절친들이었다. 하나 둘 결혼을 하고 아이들이 태어나면서부터 먹고살기 바빠 하나는 제주에 하나는 서울에 하나는 청주에 정착을 했다. 그런 까닭에 도저히 함께 모여 예전 같은 시간을 보낼 수가 없었다. 벼르고 벼르다 얼추 23년 만에 가져보는 반가운 만남이었다.

시간은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흰머리, 주름살, 나잇살, 줄어든 키, 줄어든 음주량, 고혈압, 당뇨, 관절염 그리고 아직은 경제적 독립이 어려운 아이들이 곁을 지키고 있었다. 수다는 주로 아이들, 돈, 건강, 운동, 자기계발 같은 것에 집중되었다. 한때는 전화 통화만으로도 남편과 시가의 흉을 몇 시간씩 봤지만 셋 중 둘이 이혼을 하고 나니 남편이나 시가에 대해 할 말이 별로 없었다. 지나버린 고통을 곱씹으며 보내기에 남은 시간은 너무 아깝고 빠르게 흐르고 있었다.

한 친구는 별거를 반복하다 최근에 법적인 이혼을 마무리 지었지만 고등학교 졸업을 하지 않은 막내 탓에 남편과 아직 완전하게 살림을 나누지 못하고 있었고, 한 친구는 오랜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둘째 아들의 입대에 맞춰 모든 권리를 포기하는 대신 이혼만 하기로 합의하고 헤어졌다. 한 친구는 성실한 남편과 좋은 직장을 구해 경제적으로 독립한 두 딸, 올해 대학을 입학한 막내아들을 두고 사는 상황이었다.

세 친구는 거침없던 예전 기억을 떠올리며 호프집의 문을 열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주부로 살았던 세 사람에게 시끄럽고 어두운 호프집은 왠지 편하지 않았다. 누가 썼는지 모르는 컵에 입을 대고 먹는 행위도 비위생적으로 느껴졌고 온갖 튀김요리만 있는 안주도 못마땅했다. 결정적으로 한 친구가 바닥을 기어 다니는 바퀴벌레를 보고 기겁을 했다.

셋은 거리로 나왔다. 11월의 찬 바람을 맞으며 정신도 차릴 겸 서울의 어느 거리를 깔깔거리며 잠시 걸었다. 길은 어디에나 있고 세 사람을 위한 자리는 가게마다 비어 있지만 벌레를 보고 놀란 친구가 술집으로는 다시 들어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러다 전자 담배를 피우는 한 친구가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가 담배를 고르는 동안 둘은 가게를 한 바퀴 돌았다. 벌레를 보고 놀란 친구가 어차피 모텔로 들어가서 1박을 해야 하니 이대로 편의점에서 먹을 것을 사들고 모텔을 가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다.

아주 좋은 생각이라며 나머지 두 친구가 맞장구를 쳤고, 셋은 바구니를 들고 이것저것 주섬주섬 담았다. 세 사람의 손에는 큰 사이즈의 편의점 봉투가 하나씩 무겁게 들렸다. 방도 잡기 전에 편의점부터 털어온 것 같다며 시끄럽게 떠드는 사이 이혼을 하지 않은 친구 앞에 산뜻해 보이는 모텔의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예전부터 세 친구의 장점은 누구 한 사람이 방향을 잡으면 토를 달지 않고 나머지 두 사람이 따르는 것이었다.

모텔은 그저 그랬다. 겉만 치장하고 내실은 부실한 평범한 모텔이었다. 불평은 있었지만 비난은 하지 않았다. 누구라도 그 정도는 속을 수 있는 상황이었고 무엇보다 손에 쥔 편의점 비닐봉지가 손가락을 아프게 하고 있었다. 벌레만 없다면 괜찮다는 친구는 화장실과 침구를 샅샅이 훑었고, 담배를 산 친구는 주머니를 뒤져 허겁지겁 담배부터 빨았다. 과하게 많은 술과 과하게 많은 과자들, 마른안주, 소시지 같은 것들이 좁은 협탁 위에 놓이며 차례로 손을 씻고 둘은 의자에 하나는 침대에 앉았다.

의자에 앉아서도 담배를 빨아대던 친구가 무안했는지 슬그머니 일어서서 화장대 앞에 놓인 뻔한 어메니티를 뒤적거렸다. 생선가시 같은 칫솔 하나를 빼서 자기 앞에 놓더니 다시 뭔가 하나를 꺼내 이혼을 하지 않은 친구에게 휙 던졌다.

"예따, 이건 너나 써라. 우린 더 이상 필요 없으니까."

콘돔이었다.

"나? 에구, 야 나 장사 안 한 지 오래됐어."

이혼을 하지 않은 친구가 아쉬운 듯 콘돔을 만지작거렸다.

"뭔 소리야, 우린 자유야. 이딴 거 필요 없지!"

이혼을 한 친구가 말했다.


아, 맞다. 다들 이젠 생리 안 하지.

동시에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그들은 갑자기 모텔이 떠나가라고 실컷 웃어제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