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성냥팔이 소녀는 진짜 따듯함이 뭔지 끝내 알 수 없었다

by 레들민

나비


그녀는 나비를 좋아했다. 연분홍 나비 머리핀, 노랑나비 원피스, 작은 마당 안에 날아든 하얀 나비들에 대한 따듯한 기억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지병으로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오르게 했다.

어머니는 나비처럼 희고 약했다. 그래서 그녀의 손을 잡고 함께 놀아줄 동생을 낳아주지 못했다. 허약한 어머니는 하나뿐인 어린 딸을 살뜰하게 챙기지 못했고 어린 딸은 병든 어머니를 세상에 붙잡아 둘 수 없었다. 애증으로 뭉쳐지는 단단한 모녀의 끈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그들은 벌써 한두 걸음쯤 떨어져 서로를 서먹하게 바라보아야 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거리, 어머니와 딸의 거리, 아버지와 딸의 거리는 물리적이거나 가시적인 범위를 훨씬 벗어나 있었다.

집안의 공기는 항상 차가웠다. 여름도 겨울도 추웠다. 몇 년쯤 병상에 누워있던 어머니는 어느 날 모두가 집을 비운 사이 하얀 나비가 되어 그녀의 곁을 홀연히 떠났다.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어머니는 하얀 나비가 되었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녀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아버지는 재혼을 했다. 새어머니는 차가웠다. 그녀가 어머니라고 부르면 마치 얼음물에라도 닿은 것처럼 부르르 떨었다. 새어머니는 그녀에게서 어머니라는 소리가 나오지 않게 끝없이 노력하는 것 같았다. 그녀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을 반드시 해주었고 그녀의 어떤 요구사항도 거절하지 않았다. 그리고 일상에 필요한 말 이외는 아무 말도 걸지 않았다. 간섭도 잔소리도 없었다.

새어머니는 이복동생 둘을 낳았다. 남동생 여동생 그리고 아버지 그리고 새어머니는 보기에도 따듯하고 화목한 한가족이 되었다. 그녀는 그들 사이에 있는 암묵적인 그늘이었다.

그녀는 항상 혼자 밥을 먹었다. 새어머니는 가족들의 식사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그녀의 식사를 미리 챙겨 먹게 했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을 식사를 마친 그녀는 항상 방으로 들어가 없는 사람처럼 조용히 지냈다. 사람의 온기라고는 없는 그녀의 방 밖은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문만 열어도 그 훈훈한 온기가 방 안으로 밀려들어오며 절대 고독 같은 오한이 느껴질 정도였다.

새어머니에게 가졌던 기대는 접은 지 오래되었지만 그녀는 울지 않았다.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았다. 죽은 어머니를 탓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녀의 각성은 오직 혼자 스스로 일어서야 한다는 것에서 출발하게 되었다.


그녀는 학업에 매달렸다. 성적이 오르고 학교에서 인정을 받으면 최소한 아버지의 얼굴에는 약간의 대견함이 묻어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학업에 열중한 이유는 그따위 쓰다 남은 허접한 애정을 구걸하려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독립을 위한 전초전이었다. 중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그녀는 이미 삶의 계획표를 완성했다. 무조건 교육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의 초등교사가 되어 모두가 부러워하는 결혼을 하고 똑똑한 아이들을 낳아 새어머니가 이룬 것처럼 혹은 그 이상의 완벽한 가족을 만드는 것이었다.

목표가 정해지자 그녀의 삶은 순식간에 바빠졌다. 학교, 독서실, 집이 전부였던 사춘기를 지나 그녀의 계획대로 이름난 교육대학에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당연히 기숙사생활을 시작하며 과외 아르바이트를 쉬지 않았다. 아버지는 생활비나 교육비의 명목으로 매달 얼마간의 돈을 보내주었지만 그녀는 아버지의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그대로 쌓이도록 놓아두었다.


계획대로 서울 어느 초등학교의 교사가 되어 능력을 인정받았다. 젊고 영리하고 직업이 탄탄한 결혼 적령기 여성에게 맞선 자리가 줄을 이었다. 그중 한 남자가 맘에 들었다. 그는 꽤 튼실한 중소 건설업체를 운영하며 30대 중반을 넘긴 노총각이었지만 나이보다 어려 보이는 준수한 외모와 건장한 체구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망설이지 않고 그와 결혼했다. 그리고 그녀와 남편을 닮은 아들과 딸을 낳았다.

성실한 남편이 벌어오는 수입이 충분했기에 그녀는 자신의 수입의 절반 이상을 연금으로 적립하며 풍요로운 노년을 계획했다. 과소비를 모르던 그녀에게 쓰지 않은 돈이 차곡차곡 쌓이자 여기저기 적잖이 투자를 하게 되었다. 그녀가 집을 사면 집 값이 최고가를 찍었고, 그 집을 팔아 땅을 사면 그 일대가 개발로 천정부지의 가격 폭등이 일어났다. 그런 행운을 바란 것이 아니었지만 결혼 후 그녀에게는 놀랍도록 금전운이 따랐다. 그렇게 사두기만 하면 불어나는 그녀의 자산은 비슷한 연배의 어떤 여성에게도 뒤지지 않을 정도였다.

아이들의 교육도 남달랐다. 좋은 학습지, 좋은 학원, 좋은 선생, 좋은 학교를 섭렵했다. 계획표를 만들어 철저하게 관리하며 아이들을 독려한 덕분에 두 아이들은 국내 최고의 명문대를 졸업하고 유학까지 다녀온 엘리트가 되어 고액 연봉을 받는 연구원이 되었다. 아이들은 그녀의 계획보다 일찍 경제적으로 독립했고, 독립을 한 아이들은 일에만 몰두하며 결혼을 바라지 않았다. 특히 어머니의 향후 계획 같은 것은 듣고 싶어 하지 않았다. 아주 특별한 일이 아니면 집으로 오는 일도 거의 없었다.


어느새 시간이 흘러 그녀는 정년퇴직을 하기에 이르렀다. 일곱 살이 많았던 남편은 그녀가 퇴직하기 몇 해전 이미 사업을 접은 상태였다. 그는 평소 선호하던 지방으로 내려가 따듯한 햇살이 드는 마당을 품은 작은 집을 지었다. 남편은 그녀가 은퇴를 하고 그에게 오기를 기다렸던 것 같았다. 그러나 도시 생활에 익숙한 그녀는 지방으로 내려가기를 한사코 거부했다. 남편은 오래지 않아 다른 여성을 만났고 결국 은퇴한 아내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그녀는 남편의 이혼요구가 부당하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다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웠다. 남편은 그녀에게 자신이 가진 재산의 절반을 주었고, 그녀가 가진 재산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라도 그는 이혼을 갈망했다. 비혼인 자녀들은 부모들의 일에 어떤 관여도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고심 끝에 그녀는 어쩌면 결혼에서 이루고 싶었던 목적은 다 완성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환갑을 넘어 칠순을 바라보는 남편을 보내주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막상 이혼을 하고 나니 그녀는 그 옛날 방 안에 고립된 것처럼 새삼 서러운 한기가 느껴졌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젠 방문을 열어도 한기가 밀려온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대로 온 집안을 채우는 그늘이 되어 굳어갈 것만 같아 두려웠다. 그러나 그 추운 집 말고는 어디에도 그녀가 갈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어느 날 극한의 한기에 몰린 그녀는 무작정 현관을 문을 열고 뛰쳐나가 처음 보이는 교회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처음에 그들은 따듯한 바람 같았다. 친근하게 안부를 물어오며 따듯한 한 끼를 나누거나, 차를 마시며 삶을 채우는 믿음과 사랑에 대해서 끝없이 소통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녀는 마치 알고도 얼음물을 끼얹는 것처럼 소통의 온기를 식혀버리곤 했다. 그녀는 그녀가 이룬 것, 그녀가 가진 것, 그녀가 앞으로 가지게 될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자랑하고 또 자랑했다. 저절로 불어나는 자산에 두둑한 연금이 부러울 순 있어도 아무도 끝없이 부러워만 하진 않는다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 돈이 많다는 자랑질을 들어주는 대가로 비싼 밥을 사거나 고급 선물을 나누어주어도 속으론 아무도 감사하지 않았다. 뒤에서 그녀가 흘린 말들을 되새기며 촘촘히 험담하던 그들은 점점 그녀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예배를 마치면 먹을 것을 찾아 흩어지는 개미들처럼 산산이 흩어졌다가 어느 지점에선가는 끼리끼리 모여들었다. 그래서 교회의 무리에서조차 자신이 배제당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그녀는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밀어내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던 그녀는 우울증에 시달리다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우울증에 필요한 약과 불면증에 필요한 약을 처방해 주며 우울증 약을 복용하면 불면증이 나타날 수 있다고 했고, 불면이 계속되면 우울증이 심해질 수 있다며 어느 증상이라도 심해지면 바로 병원으로 오라고 말했다.


약을 먹어야 살 수 있는 날들이었다. 약을 먹으면 아이들도 그립지 않았다. 약을 먹으면 어머니도 생각나지 않았다. 약을 먹음으로써 아버지와 새어머니와 이복동생들과 남편에 대한 원망을 잊었다. 약이 있어야 그 지독한 한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거실에 앉은 그녀는 자신이 가진 자산의 명세를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두 채의 아파트와 전원주택필지 그리고 400%에 가까운 수익을 내는 중인 주식이 있었다. 수억의 현금이 쌓인 통장도 있었다. 초라한 자신을 감싸던 명품과 금부치도 있었다. 보험증서도 있었다.

한순간 뿌듯했다. 그녀는 누가보아도 잘 알아볼 수 있도록 일목요연하게 자료들을 정리해서 펼쳐놓았다. 그것들은 그녀가 지상으로 내려와 이룬 눈부신 업적이었기에 누가 와서 보더라도 경의와 감탄을 먼저 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제발 그래주기를 바랐다.

그것들 위로 놓인 한 통의 편지에는 그것들의 소유를 분명히 해두는 유서가 들어있었다. 어느 것은 누구에게 어느 것을 어디로... 사실 그녀에게는 큰 의미가 없지만 명확하게 정리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러나 누구에게 어떤 말로 마지막 인사를 전할지는 제대로 쓰지 못했다. 그것은 그녀에게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5월의 새벽. 거실 창을 열고 맞는 고층의 바람은 그다지 차지 않았다. 상쾌하고 부드러웠다. 좋은 날이었다. 아마도 연인들은 활짝 핀 꽃을 찾아 나갈 것이고, 어느 아버지는 놀이터에서 아이의 그네를 밀어주거나 어느 어머니는 김밥을 돌돌 말아 아이의 소풍가방에 한 줄 미소와 함께 넣어 줄 것 같은 그런 좋은 날.


그녀는 그렇게 나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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