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 아차산
bgm. New Plant by The Volunteers
나는 강아지의 산책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서울 한복판에서 도심 산책을 할 수밖에 없는 우리 집 강아지 우주에게는 양질의 산책을 해주려고 한다. 양적으로는 더 자주, 오래 산책시키고자 하고, 질적으로는 목줄을 풀어줄 수 있는 반려견 놀이터, 선선한 산책로, 넓은 잔디밭을 찾아가려고 한다.
오늘의 아차산 등산은 본가 근처이기도 하지만, 반려견 동반이 가능해서 선택하게 되었다. 한 여름의 더위를 피해 아침 5시 30분 출발해서 해맞이 공원까지 왕복 2시간 정도 걸렸다.
강아지를 케어하느라 등산 내내 정신이 없었음에도, 우주를 보며 "근거 없는 자신감"에 대해 생각했다.
한 통역장교 선배와 "귀엽다"라고 느끼는 인지적 자극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자신보다 어떤 부분에 있어서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이라고 둘 다 격렬히 동의했던 것이 떠오른다. 이를테면 강아지들의 skill set은 사람들이 두 손 두 발을 이용해서 가능하게 하는 skill set의 범위보다 현저히 작다. 일례로 사람들은 '언어'를 구사하지만 강아지들은 짖고, 낑낑대는 '음성'을 표출한다. 강아지들의 짖는 소리, 낑낑대는 소리에 인간의 상상력을 더해 확대해석 하다 보면 귀여운 포인트들을 강제주입하게 되는 것이다. 또 키가 작거나 왜소한 사람의 모습이 '귀엽다'라는 표현으로 일대일 대응이 될 때가 있는데, 이것 역시 자신보다 몸의 상하 길이가 '부족함'에서 기인하는 현상일 수 있다.
본론으로 돌아가, '근거 없는 자신감'에 대하여,
근거 있는 자신감은 연약하다고 했었던가.
자신감에 근거를 가지면 금방 깨질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수학자 허준이 씨가 유퀴즈 인터뷰 중 하신 이야기인데, 꽤나 인상적인 말이었다.
허준이 교수님의 모교인 서울대 특강에서는 “근거 있는 자신감은 언제라도 없어질 수 있지만 근거 없는 자신감은 유연성을 부여할 수 있다”며 “인생 조언을 드릴 정도로 (스스로) 훌륭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행복하고 의미 있게 사는 주변 사람들을 보면 근거 없는 자신감이 강하다는 걸 느꼈다"라고 얘기하셨다.
이과 전공자로서 '근거의 부재가 유연성을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말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 모든 유연한 상황들에 대하여 micro-근거들을 나열하는 것이 이공계의 특성이다. 한국계 수학자 중 최초 필즈상 수상자이신 허준이 교수님이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가지라고 한 것은 분명 많은 사람들 머릿속에 의아함을 자아냈을 수 있다. 나 역시 그랬고, 여전히 그렇다.
허 교수님은 그날 서울대 강연 이후 기자들과 만나서도 “운 좋은 사람도 살면서 세 번은 반드시 힘든 과정에 놓인다”며 “근거 없는 자신감이 목표를 변경하도록 돕기도 하고 기존 목표를 향해 더 나아갈 수 있도록 하면서 인생을 끝까지 잘 살아낼 수 있게 하는 큰 힘이 되더라”라고 하셨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 '나 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큰 힘이 될 수 있다고?
근거 없는 자신감이 타인의 그럴싸한 근거로 꺾이는 순간에도, 나는 내 '근거 없음'의 상태를 embrace 할 수 있을까?
누군가에게 칭찬을 받는 것이 end-state인 삶보다는, 나 자신을 만족시키고,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그 다른 어떤 선택지보다 의미 있는 일이라는 것을 근거 없이 확신할 수 있는 상태에서 그 일에 나의 시간을 전적으로 쏟는 것이 중요하겠다. 이를테면 브런치 연재도 내가 '올리고 싶은' 글만 올리기보다는 '올려야 하는' 글과의 밸런스를 적절히 조절해야 하는 것이다.
어쩌면 부모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경험하기 전까진 그 상태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
세상의 시선이 아무리 부정적으로 내 자식을 평가하던 내 아이를 100% 사랑의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게 아직은 잘 이해가 안 되기 때문이다. 타이르는 것과 사랑은 공존의 관계에 있을 수 있을 수 있을까. 반면에 사랑하면 무조건적으로 다 이해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연애에서도 사랑의 척도는 어려운 문제인데, 부모 관계에서는 얼마나 더할까. 아니면 오히려 나 자신을 근거 없이 사랑하는 일은 가장 쉬운 일일수도 있다.
우리 강아지는 간식 앞에서는 애교를 부릴지언정, 그 외 주인댁의 마음에 들기 위한 행동을 자발적으로 하지 않는다. 어쩌면 근거 없는 자신감이라는 건 그런 걸까. 본인이 근거 없이 귀여운걸 정녕 알고 있는 것인가.
결론을 짓기 어려운 것 같다. 사실 등산 100번 하는 것도 체력의 근거를 만드는 건데?
근거 없는 자신감이라, 100번의 등산을 하고 나면 알게 되려나.
허준이 교수님 말씀처럼 내 속의 근거 없는 자신감이 목표를 변경하도록 돕기도 하고, 기존 목표를 향해 더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모습을 마주해 나가면서 깨달을 수 있겠거니 여지를 두는 것이 최선일 듯 싶다. 이상 첫 반려견 동반 등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