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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에르떼 Feb 19. 2024

추억의 책장을 넘기면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고 한다. 젊은 날의 추억은 나이가 들고 나서 펴볼 수 있는 추억의 책장이다. 그렇다면 지금 내 삶은 나중에 펴보았을 때 재밌었다고 즐거웠다고 웃으며 볼 수 있을까? 슬프게도 아닌 것 같다. 내 삶을 1인칭 주인공 시점이 아닌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보면 세상 단조롭기 그지없을 것 같다. 늘 같은 생활 패턴에 지겨워서 책을 덮을지도 모른다.


집과 회사와 헬스. 이 트라이앵글 속에서 생활을 하는 것도 좋지만 난 내게 좀 더 다양한 경험을 선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태껏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을 꺼린 이유는 낯설고 불편한 것도 있지만 상처받을까 봐 두려운 마음이 제일 컸다. 마음을 주고 서로 정을 나눈 뒤 멀어지게 되면 찾아오는 공허함과 허전함이 싫었다. 상처를 받고 스스로 치유하는 시간도 힘들어 점점 단념하게 된 것이다. 굳이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상처받지 말고 그냥 혼자 지내자.라는 마음이 크게 자리 잡았다. 그래. 난 겁쟁이였다. 미리 겁을 잔뜩 먹고 도망친 겁쟁이.




평소에도 나는 정이 많아서 짧게 만난 사람과도 정이 금방 든다. 직장에서 5개월 같이 일한 동료가 떠날 때도 왜 그리 눈물이 나던지… 이런 모습을 보면 나도 사람을 좋아하긴 하는 것 같다. 그런데 나는 항상 사람이 싫다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살고 싶어 했고 나의 바운더리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은 상처받기 싫어 나온 방어적인 행동이었다.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 성벽을 쌓고 문을 닫은 채 꼭꼭 숨어 있었다. 가끔 바깥세상이 궁금할 때면 성벽 너머로 빼꼼히 쳐다보곤 했지만 이내 무서워서 다시 나의 요새로 돌아오고 말았다. 하지만 계속 이렇게 살다간 내가 나이 들고 나서 펴볼 추억의 책장이 너무 노잼일 것 같다. 추억할 거리도 없이 단조의 악보를 연주하는 것처럼 슬프고 우울할까 봐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큰 결심을 했다. 내가 견고하게 쌓아둔 이 성벽을 넘어서 밖으로 나가보기로.




작년부터 독서모임에 나가볼까 생각은 했었지만 바로 행동으로 옮기기엔 쉽지 않았다. 머뭇거리게 되고 불편한 분위기가 싫어서 고민만 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드디어 실행에 옮겼다. 소모임 어플을 깔고 독서 모임에 가입한 것이다. 성벽의 문을 드디어 연 것이다! 이제 가입을 했으니 모임에 참석하여 문 밖으로 나가는 일만 남았다. 내 세상에서 다른 세상으로 새로운 모험을 떠나는 것이다.


그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경험을 쌓을 생각을 하니 약간은 떨리고 긴장되지만 설레기도 하다. 이번주 목요일, 첫 정모에 참석하기로 했다. 필사를 한다고 하는데 독서를 한 뒤 필사를 하는 건 처음이라 신기한 경험이 될 것 같다. 각자 필사를 한 후 낭독을 한다는데 잘하고 와야겠다. 새로운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나를 소개하며 책과 함께하는 그 시간이 기대가 된다. 그리고 드디어 용기를 내어 행동으로 옮긴 내 자신을 칭찬해주고 싶다. 이 경험들이 쌓여 먼 훗날 펼쳐볼 내 추억의 책장이 다채로워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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