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까지만 해도 통근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했다.
출근길에는 분주한 아침 풍경을 베개 삼아 눈을 붙이고
퇴근길에는 집에 가서 놀 생각에 마음속으로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지만 겉으론 아주 차분히 조용히 앉아가던 그 시절.
유난히 길이 막히는 퇴근길이 있었다.
꽉 막힌 도로 위에서는 음악을 들어도 유튜브를 봐도 시간이 안 갈 때가 있다.
그럴 땐 자연스럽게 창 밖의 풍경으로 눈길이 간다.
통근버스에서 밑을 내려다보면 커다란 흑동고래 위에서 작은 물고기들을 내려다보는 기분이 든다.
정말 놀랍도록 밑의 풍경이 잘 보인다.
운전하면서 폰을 보는 사람이 참 많구나.
운전은 늘 조심하는 마음으로 해야 하는데 위험해 보이네.
팔을 밖으로 빼고 담배를 피우는 사람도 있네.
오늘 하루 타들어간 마음처럼 담배도 타들어가는 건가.
괜히 타인의 퇴근길 풍경에 내 멋대로 그 사람의 감정을 상상해보기도 한다.
흑동고래 위에 있는 게 편하고 좋았지만 나도 운전을 하고 싶었다.
나도 작은 물고기가 되어 이리저리 다니고 싶었다.
그리고 이제는 나도 작은 물고기가 되었다. 통근버스 위가 아닌 같은 눈높이에서 다른 물고기들과 함께 이리저리 다니고 있다.
운전을 하면 할수록 느끼는 건데 확실히 밤운전이 더 긴장된다. 초행길일수록 앞이 잘 안 보이고 특히 어두운 옷을 입은 사람이 지나가면 식겁한다. 그런데 또 밤의 도로는 그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다.
밤의 도로는 아침의 도로 모습과는 확연히 다르다.
밤이 되면 도로는 빨간 눈을 뜬다.
그리스로마신화의 외눈박이 괴물처럼 그 눈은 셀 수 없이 많다.
간간이 깜빡거리며 주위를 응시한다.
낮에는 눈을 감고 조용히 있다가 밤만 되면 존재를 드러내는 빨간 눈의 괴물.
빨간 조명으로 가득 찬 홍해 같은 밤의 도로.
나도 그 홍해 속으로 들어가 수많은 빨간 눈 중 하나가 되었다.
통근버스를 탈 때만큼 이런저런 생각에 잠길 시간이 줄어 아쉽지만 붉은 밤, 홍해를 가로지르며 밤공기를 만끽하는 시간이 생겨 이것 또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