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끼손톱만 한 잎부터 손바닥만 한 잎까지 다양각색의 잎들이 반겨주는 계절,
푸릇푸릇한 논밭의 벼들이 눈부신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계절,
하늘은 높고 말도 살찌고 나도 살이 찌는 그 계절, 가을이 왔다.
가을이 되면 내 강아지 깜순이와 함께하는 산책길은 더 즐거워진다.
여름에는 더운 공기로 인해 혀를 땅바닥에 닿을 것처럼 늘어뜨리고 아직 열기가 남아있는 아스팔트를 터벅터벅 걸어간다.
날은 더워도 어떻게든 산책을 하고 말겠다는 그녀의 굳건한 의지에 나도 따라서 결연해진다.
하지만 늦은 오후가 되어도 한낮의 열기를 품고 있는 후끈한 공기는 깜순이의 굳건한 의지를 약해지게 한다. 몇 걸음 가다가 그늘이 나오면 갑자기 털썩 주저앉아 버린다. 하긴 반팔 반바지를 입은 나도 이렇게 더운데 털로 덮여있는 너는 얼마나 덥겠니.
저 멀리서 불어오는 잔잔한 여름 바람에 잠시 휴식을 취하는 깜순이 옆에서 나는 유튜브 숏츠를 보며 시간을 보낸다. 쉬고 있는 깜순이의 모습을 곁눈질하며 30초 남짓의 숏폼을 여러 개 넘기다 보면 깜순이가 꾸물꾸물 출발할 준비를 한다. 그럼 나도 함께 일어서서 또다시 길을 걷는다. 그렇게 휴식과 다시 걷기의 반복인 여름 산책도 즐겁지만 가을의 산책은 여름의 산책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신난다.
우선 주위 풍경이 참으로 예쁘다. 붉은 물감, 노란 물감에 물들여 빨랫줄에 널어놓은 듯한 잎들을 보다 보면 저절로 힐링이 된다. 습도가 가득한 끈적한 바람이 아니라 사근사근 불어오는 가을바람의 촉감 또한 참 좋다. 풀숲에는 독을 잔뜩 품은 뱀이 숨어 있어 여름에 비해 긴장도가 배로 올라가긴 하지만 그것만으론 이 가을의 매력을 거부할 수 없다.
무엇보다 가을에는 깜순이의 발걸음이 다르다. 여름의 산책길은 흐느적흐느적 더운 열기를 뚫고 나가는 느낌이라면 가을의 산책길은 악보 위를 걷는 듯 가볍고 흥겹다. 심지어 바쁘다.
호떡 뒤집개마냥 바쁘게 뒤집히는 내 강아지의 앞발. 뒷발은 앞발을 따라가느라 바쁘다. 나는 바빠진 깜순이의 발걸음에 맞춰 더 바빠진다. 바스락 거리는 낙엽을 헤치고 간다. 종종 우리가 지나는 길에 바람이 예쁜 낙엽을 선물해 준다. 바람을 타고 하늘하늘 내려오는 낙엽을 보면 참 따스한 행복감을 느낀다.
우수수 떨어진 낙엽을 밟고 가는 건 파도를 밟고 지나가는 느낌이다.
끝없이 펼쳐진 낙엽의 파도 위를 서핑하듯 미끄러져 걸어가는 나와 깜순이.
바쁘게 걸어가는 깜순이의 모습을 보면 내 얼굴엔 웃음꽃이 활짝 핀다.
기분이 좋을수록 꼬리를 위로 꼿꼿하게 세우고 걷는 우리 깜순이. 길을 가다가도 공중에 코를 대고 킁킁 거리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내 강아지.
하는 행동마다 사랑스러움이 뚝뚝 흐른다. 이토록 사랑스러운 생명체가 또 있을까. 벌써 네가 없는 내 생활은 상상하기도 힘든데 너의 시간은 나보다 몇 배는 빨리 가는구나. 너의 가을 발걸음처럼 그렇게 바쁘게 가는구나. 지금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너와 시간을 보내고 싶어. 사랑스러운 내 강아지. 내 모든 마음을 다해 널 사랑해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