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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리모 Mar 16. 2024

모델처럼 당당하게,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나는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가

TV에서 시니어모델 컨데스트를 방영하고 있다. 그레이 헤어에 턱수염까지 반백인 시니어들이 런웨이를 걷는다. 지상파 채널에서 주말 프라임 시간대에 시니어모델 콘테스트라니...나이 듦에 대해 사회가 너그러워진 것인지, 아니면 더 혐오하게 된 건지, 아무튼 세상이 많이 변했다.


최종 발표를 앞두고 2명의 여자 후보와 3명의 남자 후보가 무대에 섰다. 최종 우승자는 50대 초반의 여성 후보자였다. 군살 없는 몸매에 가슴까지 내려오는 굽실거리는 검은 머리카락, 진한 이목구비를 가진 건강하고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시니어 모델이란 그저 지루하고 우울한 중/노년기의 일탈 같은 것일 뿐, 지적이면서 고상한 노인으로 늙어가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해 왔는데, 이런 소신과 달리 나는 프로그램이 끝날 때까지 TV 화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완벽하게 관리된 모델들의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내 얼굴의 주름, 접힌 뱃살, 삐꺽 대는 관절들이 머릿속으로 스캔되었다. 나와 비슷한 연배인 그들이 그 자리에 서기까지 얼마나 노력을 했을까 생각하니 존경심이 느껴졌고, 최종 우승자가 "시니어 모델은 건강해야 할 수 있는 일이고, 죽을 때까지 건강하기 위하여 도전하는 것이다"라는 뻔한 말도 감동스럽게 느껴졌다.


나는 내가 '살찌는 체질'임을 평생 믿어왔다. 나이 들수록 복부비만이 사망위험을 낮출 수 있다는 기사를 여기저기에 퍼 나르면서 위안을 삼기도 했다. 하지만 세월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얼굴과 조금씩 큰 숫자로 자리를 옮겨가는 체중계의 저울을 볼 때마다 어쩔 수 없이 한숨이 새어 나온다. 당신 모습 보기 싫다고 한사코 사진 찍기를 마다하시는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 내가 꼭 그렇다.


하. 지. 만. 

외적인 화려함과 아름다움은 언젠가는 사라지고 말 것! 인생 황혼기를 앞두고 여전히 허망한 물거품 같은 것에 사로잡혀있을 수는 없지만, 내면이든 외면이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


'주름진 얼굴과 늘어난 뱃살, 느려진 걸음걸이도, 내가 사랑해야 할 나의 모습임을 받아들여야지.

다만, 조금 더 건강하고 아름다운 늙어 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것이 진정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고 신이 내게 주신 것을 소중히 지키는 방법임을 기억하자.'

일단, 내일은 아름답고 멋지게 늙어가는 나를 상상하며, 런웨이를 걷는 모델처럼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한번 걸어봐야겠다.


도전 1일이다. 파이팅!


(2022년 어느 날에 씀)


아이리스 아펠(1921년 8월 29일~2024. 3.1). 모델. "나는 세계에서 가장 나이 많은 10대" (사진 출처: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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