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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Mar 15. 2024

나는 예민한 사람인가?

불안의 크기 만큼 기쁨도 함께



내가 예민하다는 증거. 


평생 스스로를 털털하고 둔한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왠만한 사람들과 무리 없이 잘 지내고, 딱히 호불호가 강하지도 않아서 사람들이 하자는대로 잘 따르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이토록 잘 지내던 내가 갑자기 돌변하곤 했다. 이유도 없이 괜시리 기분이 상해 꽁해 있기도 하고, 나도 모르게 사람들과 거리를 뒀다. 왜 그러냐고 묻는 질문에 답을 할 수 없었다.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니까. 



"얘는 밖에선 한 없이 상냥한데, 집에선 쌀쌀 맞기 그지 없어요."

나를 상냥하고 밝다며 칭찬하는 어른들에게 엄마가 늘 하는 말이다. 엄마의 말에 나도 크게 반박하진 못한다. 사실이니까. 밖에서 에너지를 전부 소진하고 돌아오면, 집에서 쓸 에너지가 없다. 이것 저것 캐묻는 엄마의 말이 그저 피곤하기만 하다. 그렇다고 맞받아칠 에너지도 없어서 그냥 쌀쌀 맞게 꽁해 있는다. 이런 내 모습에 엄마도 마음이 상해 돌아서는 일을 반복하며 살았다. 나는 원래 이런 애라고 생각했다. 밖에서의 내 모습은 전부 가면이라고, 집에서의 모습이 진짜 내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임신 막바지에 이른다. 임신 기간을 한 단어로 말해보라고 하면 나는 주저 없이 "불안"이라고 답할 것이다. 이토록 나의 불안을 가까이에서 마주한 적이 있었던가. 임신 초기에는 또 다시 양수가 터져서 아기를 잃을까봐 미친 듯이 불안했다. 겉으론 그렇지 않은 척 했지만, 나는 잠을 자지 못했다. 불안과 마주했다. 불안은 나를 망가뜨리기 위해 오는게 아니라, 나를 무척이나 사랑해서, 아기를 무척이나 사랑해서 온다는 걸 깨달았다. 불안을 더 이상 피하기만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그저 잘 왔다가 갈 수 있도록, 마음을 열기로 했다. 



불안은 정말 자주 왔다가 갔다. 어느날은 진득하게 오래 머물다 갔고, 어느날은 왔다 간지도 모르게. 이렇게 임신 후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두세달 쯤 전부터 자꾸만 배우자의 행동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낮과 밤이 바뀌어 버린 그의 패턴이, 운동을 하지 않는 그가, 건강하게 챙겨 먹지 않는 그가... 모든 것이 눈에 거슬렸다. 꿈꾸는 삶을 살기 위한 도전을 멈추고 평범하게 직장에 들어가 일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동시에 그건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었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배우자를 향한 분노가 올라오는 동시에, 이 분노가 무척이나 혼란스러웠다. 분노를 표출해봤자 서로의 마음만 상할 것을 알기에 몇 번이고 돌아섰다. 


다행히 분노를 가라 앉히고 마음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도 내 마음이 여전히 혼란스러웠기에, 내가 정말 원하는게 뭔지 몰랐기에 갈팡질팡한 마음을 전달할 수밖에 없었다. 내 이야기를 듣던 배우자는 다그치기 시작했다. 

"그래서 너가 원하는게 뭐야? 원하는 걸 확실하게 말을 해봐. 왜 자꾸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할 말을 늘어 놓는거야?"



'내가 원하는게 뭐지?'

정리 안된 말을 한참 늘어 놓고, 배우자의 다그침에 잠시 침묵하던 중에 머릿속 불이 반짝였다. 



'불안하다'

임신 후기, 육아 휴직을 앞두고 있다. 나의 공백을 메워 줄 사람도 있다. 일하는 곳의 사람들은 굉징히 친절하고 내가 다시 돌아 올 것이라고 생각도 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불안하다.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니, 이 일을 계속 하는 게 맞을까? 나는 어떻게 살아야할까? 수많은 불확실한 미래 앞에 나는 사실 엄청난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나의 불안을 배우자에게 투영했다. 그가 좀 더 안정적인 경제활동을 해 주어 나의 불안을 잠재워주기를 내심 바랐던 것이다. 명확한 깨달음이 온 순간 하염 없이 눈물만 흘렀다. 그리고 나의 불안을 가감없이 쏟아냈다. 



배우자는 특유의 T식 위로로 나의 말 하나하나에 응답했다. 나의 불안이 얼마나 형체가 없는지, 얼마나 무의미한지, 상황이 어떻게 흐르든 우린 얼마나 괜찮은지 하나하나 설명했다. 함께 산 세월이 나름 쌓이다보니, 이 사람이 진심을 다해 나를 위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모든 것을 쏟아내고 나니, 텅 빈 마음만 남았다. 쾌변보다 더 상쾌했다. 드디어 비워진 마음 속으로 따스한 바람이 솔솔 불어왔다. 



나의 예민함과 마주했다. 나는 털털한 사람이 아니다. 나는 둔하지 않다. 나는 굉장히 예민한 감각을 지닌 사람이다. 어릴 때부터 사람들의 감정이 쉽에 느껴졌다. 그렇기에 그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 나의 욕구를 누르고 타인이 원하는 것을 맞춰왔다. 사람들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을 때도, 이해되는 척 했다. 타인을 향해 에너지를 쓸 수록 당연히 내 안의 에너지는 고갈 될 수밖에 없었다. 밖에서 에너지를 다 쓰고 오면, 집에서 쓸 에너지는 없었다. 미안하지만 엄마까지 맞춰 줄 수는 없었다. 결국 엄마와는 자주 갈등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에게 나도 모르게 거리를 뒀던 건, 살기 위한 나만의 방법이었던거다. 



아기를 잃었던 감각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날의 공기, 온도, 감정 모든 감각이 생생한데 당연히 불안할 수밖에. 그 불안이 지나가고나니, 삶에 대한 불안이 찾아왔다. 직장에서는 이미 나를 대신할 사람이 있고, 나는 조금씩 일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주변의 모든 감각들이 선명하게 느껴지면서 나의 존재를 감각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 불안을 배우자에게서 찾고 있었으니 혼란스러울 수밖에.. 



감각이 예민한 사람이 처음 겪는 일을 겪고 있고, 전혀 예상되지 않는 일을 앞두고 있다. 불안한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임신기간 불안만 있었던 건 아니다. 불안의 크기 만큼 "기쁨"도 함께였다. 전혀 반대되는 두 개의 단어가 반복해서 나를 찾아왔다. 불안이 지나가고 난 자리에는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내가, 뱃속에서 꿈틀대는 아기가 그저 기뻤다. 삶이 내가 원하는 대로 통제되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는 분명 삶을 살아낼 수 있고, 통과할수록 조금씩 더 성장해 갈 테니까. 기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뜻대로 되어도, 뜻대로 되지 않아도 삶은 결국 우리를 사랑한다. 늘 같은 마음만 느끼고 살면 얼마나 좋으랴만은, 불안과 기쁨은 늘 왔다가 간다. 오히려 머물지 않아 다행이다. 수없이 많은 감정의 반복이 또 나에게 왔다가 가겠지만, 결국은 또 올테니, 결국은 갈테니 너무 겁먹지 않아도 된다. 아기의 이름을 생각할수록 '조이'라는 단어가 차오른다. 나는 불안한 만큼 무척이나 기뻤다. 아기가 있어서 무척이나 기쁘다. 





커다란 불안이 지나가고 나니, 주변의 불안한 상황 앞에서 오히려 차분해진다. 의료파업으로 다니는 병원에서 수술을 받지 못하게 될 수도 있고, 직장에서 기껐 뽑은 사람이 일주일 만에 말도 없이 잠적해버려 모든 것이 리셋되었다. 그러나 결국 이 모든 상황은 정리 될 것이다. 대학병원이 아닌 로컬 병원으로 옮기게 될 수도 있고, 육아 휴직을 조금 반납해야 할 수도 있지만 결국은 아기와 건강하게 만나 함께 성장해 갈 것이다.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한건 나올 준비를 하고 있는 아기니까. 우리가 씩씩하게 만나 함께 성장할 수만 있다면 다른 어떤 상황도 애써서 통제할 필요가 없지. 그러니 마음을 비우자. 텅 빈 마음으로 따스한 바람이 지나가는 걸 느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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