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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Mar 22. 2024

불안은 쉽지만, 기쁨은 기적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월든'을 통해 하는 말


"나는 우리가 지금 믿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안심하고 믿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자신에 대한 지나친 염려를 포기하는 만큼 정말로 다른 데 관심을 쏟을 수 있다. 자연은 인간의 강점만 아니라 약점과도 잘 어울린다. 어떤 것에 대해 끊임없이 느끼는 불안과 긴장은 치유 불능의 질병이나 마찬가지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의 중요성을 과장하는 버릇이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아직 이루지 못한 일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가 병에 걸리기라도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우리는 늘 주위를 경계하며 산다. 그런 가운데 되도록 종교적 믿음에 수동적으로 기대어 살지 않으려고 애쓴다. 하지만 낮에는 눈을 부릅 뜨고 경계하다가도 밤이 되면 별수 없이 기도문을 중얼거리며 불확실한 것에 스스로를 맡겨 버린다. 


우리는 철저하고 진지하게 현재의 삶을 숭배하고 변화의 가능성을 부인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면서 이것이 유일한 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의 중심점에서 방사 모양으로 뻗어 나가는 반지름을 그릴 방법은 무수하다. 주의 깊게 바라보면 모든 변화는 기적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기적은 우리 주변에서 매순간 일어난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 19-20)"









현실은 불안정하다. 연일 물가가 치솟는다. 물가의 속도만큼 급여의 속도가 따라잡질 못한다. 통장이 예년보다 빠르게 비어간다. 크게 사치하는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이러다 텅장으로 살게 될까 불안하다. 


미래도 불확실하다. 여기저기 예산이 전부 삭감되고 있다. 지금 일하고 있는 청소년 대안교육 분야, 마을공동체 분야도 완전 삭감이다. 청소년 관련 일을 하는 여성가족부마저 없애려고 하니, 예산 삭감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지금 일을 계속 할 수 있을까? 


임신 32주 검진 때, 아기가 주수에 비해 너무 크다는 진단을 받았다. 단것 지나치게 많이 먹은 탓이다. 아기가 저혈당에 걸릴 수도 있다는 말에 식단조절을 시작했다. 그리고 2주 뒤, '양수과다증' 진단을 받았다. 당뇨 때문일 수 있어 임신성당뇨 재검을 받았다. 임신 후기, 정말 쉽지 않다. 불안이 쑥 찾아온다. 


어제는 담당교수에게 결국 직접 물었다. "저, 수술 받을 수 있나요?" 

담당교수가 답했다. "수술은..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교수의 말엔 확신이 느껴지지 않았다. 굉장히 치져있었고, 기분이 좋지 않아보였다.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을 대신해 교수들이 돌아가며 당직을 서고 있다고 했다. 교수는 주 2-3회 당직에 수술, 외래 진료를 모두 감당하고 있었다. 교수에게 질문을 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더 불편해졌다.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요소들은 찾기 쉽다. 여기저기 산재해 있고,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심지어는 없는 불안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래서일까, 소로는 말한다. "우리는 자신에 대해 지나치게 염려한다"고. 


'지나친 염려'라는 단어가 뒤통수를 치고 간다. 그래, 우리는 지금 지나치게 염려하고 있구나. 불안정한 현실과 불확실한 미래는 오늘 만의 일이 아니다. 모든 역사가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미래였다. 그러나 우린 하루하루를 지금, 이 순간에 딛으며 그냥 살아왔다. 우리의 불안은 단 하나도 우리의 현실을 바꿔주지 못한다. 현실을 바꾸는 건 불안을 딛고 지금 해야 할 일을 꾸역 꾸역 해낼 때다. 


어쩌면, 그의 말대로 우리는 '자신에 대한 지나친 염려'를 포기하는 만큼 그 에너지를 더 좋은 곳에 사용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불안의 크기 만큼 지금 나에게 집중하는 것. 용기가 없어 도전해보지 못한 일에 도전해보는 것. 어쩌면 여기에 쏟아야 할 에너지가 지금 다른 곳에 낭비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도대체 뭐가 그렇게 불안한거야? 완벽해지고 싶은거야? 상황이 내 뜻대로 흘러가야 마음이 안정되는거야? 아니 그런건 없어. 자연은 인간의 강점만이 아니라, 약점과도 잘 어울린다고 한다. 직장에서 창문으로 까치 부부가 한달 동안 전신주에 집을 짓는 걸 지켜봤다. 첫 주에는 쌓은 가지보다 떨어뜨린 가지가 훨씬 많았다. 전신주 아래로 까치 부부가 떨어뜨린 가지가 여기저기 흩어져있었다. 심지어는 집의 토대도 비뚤어졌다. 까치가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갈 줄 알았다. 그러나 까치 부부는 계속 가지를 물고왔다. 주변에 나무도 없는 삭막한 동네인데, 어디서 그렇게 가지들을 물고왔는지. 비뚤어진 집을 허물지 않고 그 위에 계속해서 집을 지었다. 2-3주차가 되니 그럴듯하게 높아졌다. 집을 다 지었다고 생각했다. 며칠 관찰을 못하다가 엊그제 까치 부부의 집을 보는데, 전신주의 빈 공간을 다 덮을 만큼 집이 풍성하게 솟아 있었다. 깜짝 놀라 한참을 들여다봤다. 그리곤 이내 마음이 아파왔다. KT아저씨가 오면 집이 다 헐릴텐데, 까치 부부가 얼마나 망연자실할지 생각하니 슬펐다. 



지나친 염려다. 까치 부부가 가지를 무수히 떨어뜨리며 실패했을 때, 실패에 집중했다면 집을 짓지 못했을거다. 끊임없이 떨어뜨리고, 무너지고, 넘어지지만 까치부부는 그저 지금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했을 뿐이다. 까치 부부는 겨우겨우 완성한 집이 무너질 것에 대한 염려를 하지 않을거다. 그냥 가지를 물고와 집을 완성하고, 알을 낳는 일에 집중하겠지. 혹 정말 어느날 밖에 다녀왔더니 집이 무너져있어도, 망연자실하고만 있진 않겠지. 다시 가지를 물고와 집을 지을테지. '자연은 인간의 강점이 아니라, 약점과도 잘 어울린다.' 어쩌면 완벽은 우리와 가장 먼 말이 아닐까. 끊임없이 실패하고, 넘어지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 아닐까.


'끊임없이 느끼는 불안과 긴장은 치유 불능의 질병'이라는 말이 옳다. 어쩌면 이건 만성 질환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함께 살아가지 못할 건 아니다. 만성 질환을 가진 환자들이 약을 먹으며, 함께 살아갈 나름의 방법을 찾듯이, 불안과 긴장도 어쩌면 우리가 조절하며 살아갈 수 있는 질환일지도 모른다. 365일 불안과 긴장으로 살진 않으니까. 불안의 크기만큼 기쁨도 함께 찾아오니까. 




'주의 깊게 바라보면 모든 변화는 기적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기적은 우리 주변에서 무수히 일어난다'고 소로는 말한다. 불안과 긴장의 틈새로 들어오는 작은 기쁨이 있다. 불안과 긴장은 크고 화려해서 눈에 잘 띄지만, 작은 기쁨은 세밀한 바람과 같아서 집중해서 보아야한다. 그래서 기적이다. 쉽게 찾아지면 그게 무슨 기적이겠어? 쉬운 불안과 긴장에 집중하지 말고, 자세를 낮추어 세밀한 기쁨을 찾자. 그리고 그 기쁨에 낭비되고 있던 에너지를 주자. 상상이상으로 커질거다. 더 용기를 갖고, 시도해보지 못한 일을 하고, 좀 더 당당해질거다. 그리고 이건 찾기 어렵지 않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무수히 일어나고 있으니, 그저 우리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았던 불안과 거리를 두고, 틈새로 불어오는 세밀한 기쁨에 주의를 기울이면 된다. 새벽 공기의 상쾌함, 따스한 봄날의 햇살, 까치부부의 집짓기 프로젝트, 맛있는 점심, 타인에게 보내는 잠깐의 미소, 마음을 두드리는 책, 커피 한잔의 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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