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급자와의 인간관계
하급자와의 인간관계는 앞서 말한 인간관계와 약간 중첩될 것이다. 일단, 하급자의 대상을 상급자와 동료를 뺀 나머지로 한정할 것이다. 그들은 당신의 직속 부하일 수도 있고, 계급이 아래이거나 계급은 같지만 임관 연도가 아래인 인원들일 것이다.
군대 격언 중에 처음엔 이해가 안 되다가 나중에야 이해되는 말이 있다.
'진급은 부하(하급자)가 시켜주는 것이다.'
이 말을 초급간부들에게 하면 '모든 근무평정, 지휘 추천을 다 상급자가 해주는데 어떻게 부하가 시켜준다고 하냐?'고 의문을 갖는 이가 많다. 원론적으로 보면 상급자에게 모든 권한이 있는 게 사실이지만, 단순히 상급자에게 잘 보여서는 높은 점수를 받기 힘들 것이다. 근무평정, 지휘 추천이 결정되는 부분의 상당수가 바로 부하(하급자)가 담당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당신이 하급자들과 근무하다 보면 그들을 무시하고 당신이 더 많은 것을 챙기려 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당신이 계급이 높고, 계급은 같지만 선배이기 때문에 그렇게 해도 된다는 생각을 갖는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하는 부류가 정말 많다. 특히 초급간부들 세계에서는 더 많다고 본다. 그런데, 여기에서부터 당신의 자질과 인성, 임무수행능력이 결정될 것이다. 평판이 작동하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상급자는 항상 당신을 평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하급자에게도 평가를 받는다. 당신이 상급자로서 보여주는 각종 언행은 하급자들에게 철저하게 민낯을 드러낼 것이다. 당신이 하급자로서 상급자를 대할 때는 어렵기 때문에 겸손하고 충성스러운 자세를 보태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하급자를 대할 때는 어렵지 않아서 무장해제를 한 상태로 막 대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하급자는 당신이 상급자라서 당신을 대하는 게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잔뜩 웅크리고 당신을 응대한다. 스스로 '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마음의 상처를 받는 경우가 많다. 당신이 농담을 해도 그들은 진담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을 것이고, 당신이 아무 생각 없이 던진 언행에 그들은 힘들어 한다. 특히, 당신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을 때 그들은 실망하고 때로는 분노한다.
반대로 당신이 그들을 진정으로 아끼고, 하나라도 더 도와주고 알려주고 싶은 마음으로 접근하면 그들은 한없이 당신을 따를 것이다. 후배라면 자신들을 잘 이끌어 주는 선배로서, 신분이 다른 하급자라면 자신들을 이해하고 도와주는 멋있고 고마운 지휘자로서 당신을 평가할 것이다.
하급자들은 당신을 평가한 결과를 많은 동료들과 이야기할 것이다. '0소대장은 자기 것만 챙겨. 후배들한테 당직 근무도 강요하고....' '0부소대장은 훈련 준비할 때 아무것도 안 해. 다 분대장들에게만 시켜' 등 여러 이야기가 오갈 것이다. 여기서 나온 내용들은 여과 없이 당신에게 근무평정이나 지휘추천을 주는 주임원사, 중대장, 대대장의 귀에 들어간다. 많은 초급간부들 중 몇몇 우수한 인원을 선택해서 점수를 줘야 하는 상황에서 다양한 경로로 수집되는 초급간부들의 평판은 절대적인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따라서 하급자는 당신이 절대적으로 공을 들여야 하는 대상이다. 상급자에게는 당연히 공을 들일 것이다. 하지만 하급자는 당신이 더욱 노력해야 한다. 왜냐하면 당신도 동물이기 때문이다. 동물은 자신이 서열에서 높다면 그것을 누리려는 본능을 갖고 있을 것이다. 동물원에 있는 야수들도 그런데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오죽하겠는가? 하지만 인간은 이성으로 본능을 제어하고 더 높은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존재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 진정한 리더십이 나오는 것이다.
나는 당신에게 앞서 말했던 다양한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라고 말해주고 싶은 관계는 바로 하급자와의 인간관계이다. 그만큼 어려울 것이다. 인간의 본능에 역행하는 행동을 하는데 어찌 쉬울 수 있겠는가? 그래서 많은 간부들이 하급자와의 관계에서 문제가 생겨 일찍 군복을 벗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다.
하급자들과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한 몇 가지 방법을 소개할 테니 실천해 보길 바란다. 이미 많이 들어본 말들이겠지만, 실천하기 매우 힘든 말들이기도 하다.
경청과 공감 : 그들이 힘들어할 때 귀 기울여 듣고 진심으로 공감하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때로는 조언보다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될 것이다.
권한 위임 및 지원 : 임무를 맡길 때는 명확한 지침을 주고, 필요한 자원과 충분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들이 성공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당신 역할이다.
성장 기회 제공 : 실수를 했을 때 무조건 질책하기보다는, 왜 그런 실수가 발생했는지 함께 분석하고 개선 방안을 찾게 해야 할 것이다. 이는 그들이 배우고 성장하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존중과 배려 : 사적인 자리에서든 공적인 자리에서든 항상 하급자들을 존중하는 언행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특히, 명령이 아닌 부탁하는 방식으로 소통하는 법을 익히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솔선수범 :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반드시 당신이 먼저 솔선수범해서 해야 할 것이다. 말로만 지시하고 자신은 뒤로 빠지는 모습을 보이면 신뢰를 잃기 쉬울 것이다.
하급자와의 관계에서 당신은 '멋진 선배, 멋진 지휘자, 멋진 상관, 멋진 초급간부'라는 평판을 얻길 바란다. 이러한 노력은 분명 당신의 진급과 장기 복무 선발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더 나아가, 이는 개인의 성공뿐만 아니라 강력하고 똘똘 뭉친 부대를 만드는 데 꼭 필요한 기반이 될 것임을 확신한다.
PS: 앞서 말한 5가지 유형의 인간관계 말고 다른 특수한 관계도 있다. 군사경찰대나 안보지원부대 등 우리가 기관이라고 부르는 부대 소속 담당관들과의 관계가 특수한 관계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여러 가지 정보를 얻으려 노력할 것이다. 부대 정보, 개인 정보 등등일 것이다. 물론 최근에는 이런 정보 획득 기능을 많이 줄여나가면서 본래의 기능에 충실하려 노력하는 모습을 많이 보이고 있다.
이들과의 관계는 예전에 내가 모셨던 지휘관이 해준 말로 대신할 수 있을 것 같다.
'기관은 난로와 같다. 적당히 가까이 지내면 얼어붙은 나의 몸을 따뜻하게 해줘서 임무수행이 가능하게 해준다. 하지만 너무 가깝게 다가서면 화상을 입는다. 그렇다고 또 너무 멀리 떨어지면 너무 추워서 임무수행이 제한된다. 난로는 그대로 있는 것이고 다만 당신 스스로가 멀리 또는 아주 가깝게, 적당히를 조절할 수 있다. 즉, 그들과의 관계는 당신 스스로가 조절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