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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 lin Sep 22. 2024

클럽, 혼자 가도 재밌나요?

집에 있기를 거부하는 여자 2

집에 있기를 거부하는 여자의 두 번째 행선지는 클럽이었다. 한국도 아닌 미국에서 그것도 혼자 간다고 하면 다들 미쳤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소리를 들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만큼 내 의지는 확고했다. 한 마디로 죽어도 집에 있기는 싫다는 뜻이다.


어른스러운 나이트라이프를 꿈꾸며 온 미국이었지만 클럽은커녕 흔한 라운지 바 하나 없는 산타바바라에 갇혀 제대로 놀지 못한 탓에 불만이 쌓였다. 더군다나 나보다 훨씬 어린 10대 후반 친구들과 어울리다 보니 유흥이라고는 기숙사에서 5km 이상 떨어진 하우스파티에 참여하는 게 가는 게 전부였다. 일단 그곳을 벗어나 로스앤젤레스 근처로 온 것만 해도 큰 발전이지만 문제는 같이 갈 친구가 한 명도 없었다.


같이 사는 룸메이트들과는 딱히 말도 섞지 않을뿐더러 노는 데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기에 결국 남은 선택지는 혼자 가는 것뿐이었다. 신기하게 외국에 오면 한국에서는 없던 자신감이 솟아났다. 일단 내가 사는 곳이 아니기에 나를 아는 사람도 없었고 이방인이라는 신분에서 나오는 자유로움이 있었다.


침대에 누워 구글맵을 켰다. 택시로 30분 내에 있는 클럽을 검색했다. 조건은 세 가지였다. 외진 곳에 있지 않아야 하며 후기가 많고 규모가 어느 정도 있어야 한다. 그렇게 결정한 곳은 로스앤젤레스 애너하임 부근의 한 라운지. 외관도 번쩍거리고 최근 후기도 꾸준히 업데이트되고 있는 걸로 보아 나름 내 조건에 부합하다고 판단했다. 


그다음엔 근처 호텔을 알아보았다. 클럽 한 번 가는 데 무슨 호텔까지 예약하냐고 할 수 있겠지만 여기는 미국이다. 한국처럼 언제나 클럽 앞에 나를 집으로 데려다줄 택시가 대기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고 만약 술까지 취한다면 어떤 불상사가 발생할지 모른다. 그렇게 클럽에서 걸어서 15분 내외 거리에 있는 호텔에 1박을 예약했다.



아침을 먹고 나갈 준비를 했다. 목사님 내외에게는 놀러 가느라 내일 돌아올 예정이라고 말씀드렸다. 워낙 여기저기 자주 쏘다니니 이제는 그러려니 하셨다.


애너하임은 디즈니랜드가 있는 곳으로 유명해 유동인구가 많아 길거리도 쾌적하고 깔끔했다. 근처 쇼핑몰을 한 바퀴 돌다 boba gump에서 첫 혼밥에 도전했다. 커피숍이나 패스트푸드점에서는 몇 번 혼밥을 해봤지만 이런 음식점에서는 경험이 전무했다. 당당하게 table for one을 외치는 게 어색하진 않을까 걱정했지만 여긴 미국 아닌가?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는다.


식사를 마친 후 한국에 꼭 가져가고 싶은 기념품 중 하나인 818 테킬라를 사고자 근처 리큐어 스토어로 향했다. 블랑코와 레포사도 한 병씩을 구매했다. 한국에는 정식 수입 되지 않은 상태라 기념품으로서의 가치가 상당했다. 


호텔로 복귀한 후 잠깐 눈을 붙이고 일어났다. 애써 흥이라도 돋우고자 블랑코 샷 한 잔을 들이켠 뒤 음악을 켜고 나갈 준비를 시작했다. 어떠한 그림이 펼쳐질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기에 마냥 신난다고 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전혀 두렵지는 않았다. 내겐 인생 첫 어드벤처이기에 도전의 의미가 더 컸다. 매일 가던 곳이었다면 '오늘은 재미있을까?, 음악은 잘 틀까?,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을까?' 갖가지 걱정이 앞섰겠지만 오늘만큼은 기대감이 더 컸다.




11시를 살짝 넘긴 시각 호텔을 나섰다. 가는 길에 브이로그 삼아 셀프 동영상을 찍었다. 긴장반 설렘반의 감정을 그대로 담고 싶기도 했고 혹시 이 영상이 마지막일 수도 있지 않을까란 생각에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었다. 물론 아무 탈없이 무사히 돌아간다면 다행이지만.


클럽 앞에는 일렬로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나름 당당하게(?) 맨 끝 사람 뒤에 선 뒤 이리저리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다들 손에 ID를 들고 있기에 나도 가방 속에 있는 여권을 미리 꺼내놓았다. 혹시 나처럼 외국인이나 혼자 온 사람이 있지 않을까 했지만 겉만 봐서는 티가 나지 않았다.


모든 클럽답게 입장 전 게스트 체크를 했다. 한 어플을 통해 미리 게스트 신청을 해놓은 나는 명단에 이름을 확인하고 밴딩을 한 뒤 입장했다. 내부는 생각보다 훨씬 넓었다. DJ와의 거리도 상당했으며 무엇보다 스테이지가 넓었다. 마음에 점은 바로 힙합존이 따로 분리되어 있다는 것이다. 일렉보다는 힙합을 즐겨 듣는 나에게는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문으로 분리되어 있어 음악이 뒤섞이지 않을뿐더러 마치 펍처럼 하나의 독립된 공간 같았다. 거기다 외부 테라스까지 갖추고 있어 대화를 나누는 데도 손색이 없었다. 나는 즉시 화장실로 향했다. 국내 술집에서는 보기 힘든 백화점 화장실을 연상시키는 디자인에 상당히 쾌적했다. 칸 수도 많았고 대형 벽거울에 화장대까지 갖추고 있어 잠시 쉬어 가기에도 제격이었다.


사람들이 어느 정도 차고 시끌벅적해지자 메인 바로 자리를 옮겼다. 잔잔히 터지는 음악을 들으며 사람 구경을 시작했다. 사실 혼자 오면 사람 구경 말곤 할 게 없다. 의외였던 점은 아시아인 비율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이 동네가 그런 곳인지 아니면 아시안들에게 입소문이 많이 난 건지는 모르겠지만 거의 3분의 1 가량이 아시아인이어서 외로움이 덜했다. 다들 해외에 나오면 그렇게 아시아인이 반가울 수가 없다고 하는데, 그 말이 이제야 와닿기 시작했다.


두리번거리던 중 옆에 서 있던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애쉬 빛 푸른 눈동자가 조명에 비쳐 반짝였다. 그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미소를 보이며 인사를 건넸다. 한 잔 사겠다며 마시고 싶은 것을 물었다. 안 그래도 누가 말이나 좀 걸어줬으면 했는데 잘됐다 싶어 흔쾌히 수락했다.


"Umm gin tonic would be great."


우리는 바에 몸을 기댄 채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사실 음악 소리 때문에 거의 귀에 가까이 대고 소리쳐야 할 정도였다. 내가 자리를 옮기는 게 어떻겠냐며 옆에 있는 힙존을 가리키자 그가 OK 사인을 건넸다.


이곳에 와봤냐고 묻자 그는 마지막으로 클럽에 온 게 언제인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오랜만이라 했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단정한 이미지에 차분한 말투 때문에 어느 정도 신뢰는 갔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가 오렌지 카운티에 거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찌 이런 우연이 있는지 나도 그쪽에 산다며 반가워했다.


“그럼 너는 대학생? 여기 사는 거야?”


"대학생도 아니고 여기 잠깐 머물다 가는 관광객. 심지어 미국 자체가 처음이야."


현지인이 아닌 것도 모자라 미국은 처음이라 하자 적이 없다고 하니 놀라는 눈치였다. 만나기 힘든 사람을 만났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는 자칭 서핑 마니아라고 한다. 집에 다량의 서퍼보드도 보유하고 있으며 틈이 날 때마다 근처로 서핑을 나간다고 했다. 온통 해변으로 둘러싸인 OC는 서퍼족들에게 천국 같은 곳이기에 충분히 공감이 갔다.


“Trestles beach 알아?”

“아니 한 번도 못 들어 봤어.”


본인이 자주 방문하는 곳이라 하는데 다른 유명 비치에 비해 사람도 덜하고 조용한 편이라 애정하는 곳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조심스럽게 내게 데이트 신청을 건넸다.


“원한다면 서핑 도전해 봐도 되고 싫으면 그냥 누워서 쉬다 와도 되고 정말 아름다운 곳이거든 너도 좋아할 거야.”


이곳에서 만나는 모든 새로운 인연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이런 작은 인연하나가 어떤 길로 이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또 그들을 통해 새로운 약속이 생기길 기대할 수도 있고 혼자라면 절대 가보지 못할 곳을 방문할 기회도 생긴다. 뚜벅이인 입장에선 일단 무엇이든 환영이다.


어느 정도 취기도 오르고 음악 비트도 빨라지자 자연스럽게 몸이 스테이지로 향했다. 그는 딱히 춤추는 것에는 관심이 없는지 내 뒤에 머물다 귀에 대고 속삭였다.


“난 슬슬 갈까 하는데 넌?”


"난 좀 더 있다 가고 싶은데?"


“그래, 오늘 만나서 반가웠고 연락할게.”


“Hi.”


한 10분 정도 지났을까, 아까부터 옆에서 나를 계속 쳐다보고 있는 듯한 남자가 내게 말을 걸었다. 그는 내 귀에 대고 저쪽에 테이블이 있는데 한잔 하지 않겠냐며 조심스레 의사를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내 손을 잡고 그의 자리로 이끌었다.


테이블에는 거의 10명 남짓한 남녀가 모여 있었는데 모두 아시안이었다. 다들 어느 나라 혈통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지만 일단 같은 아시안으로서 내가 아무런 위화감 없이 속할 수 있다는 사실에 왠지 모를 마음의 편안함이 찾아왔다. 


“Where are you from?”


“South Korea.”


“Oh wow, she’s from there too.”


그의 친구가 내 앞에 앉아 있는 여자를 가리켰다. 반가움에 악수를 건넸다. 혹시 한국말을 수 있냐 묻자 그녀가 곧바로 한국말로 대답했다.


“조금요, 아주 유창하진 않지만.”


클럽에서 한국어 구사가 가능한 미국인을 만나다니, 내 모국어를 알아듣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는 사실이 이렇게 반가운 일일 줄은 몰랐다.  


"Cheers"


모두 손에 쥐고 있던 잔을 허공에 뻗은 뒤 환영의 건배를 나누었다. 벌써부터 흥이 오르기 시작했다.


"I'm Jay. Nice to meet you"


나를 데려온 그의 이름은 제이(Jay), 대만계 미국인이다. 자신의 생일파티차 모든 친구가 한 자리에 모였다고 한다. 내 직업을 묻자 그냥 관광객이라 하니 못 믿는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관광객이 이런 곳을 혼자 온다는 생각은 추호도 못할 것이다. 내 영어발음에서 느껴지지 않냐고 묻자 잘 모르겠다고 한다.


현지인들과 대화를 하면서 느낀 게 영어 때문에 전혀 주눅 들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외국인이 "안녕하세요." 딱 한 마디만 내뱉어도 잘한다고 칭찬하듯 정말 기본적인 실력만 구사해도 웬만한 일상생활이 가능하며 친구도 사귈 수 있다. 그 누구도 발음이나 어휘력을 지적하지 않는다.


이쯤 되면 위장술의 달인이지 않을까란 생각에 어깨가 으쓱해졌다. 보이지 않는 아시안들끼리의 유대감, 격한 환영 인사, 여기저기 들려오는 모국어에 살판났다 싶은 나는 마치 이곳에 한국인양 고삐를 풀기 시작했다. 지독한 숙취는 내일의 내가 알아서 감당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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