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넷, 나는 4개 국어를 한다

내가 태어난 곳, 한국

by 라영

이 책의 제목을 <스물넷 4개 국어를 하고 정신과에 간다> 꽤나 위선적인 제목으로 지은 이유는 단지 내 능력을 자랑하려는 것이 아닌, 다양한 언어와 문화를 성인기 이전에 타의적으로 체득하는 과정 또한 우여곡절이 많다는 점을 알리고 싶었다. 또, 나와 비슷한 삶을 살고 있는 전 세계의 재외국민 혹은 멀티로컬 친구들에게 전달되기 바라며 개인의 능력과 정신 질환은 큰 상관관계가 없으리만큼 누구나 앓을 수 있는 감기와 같은 질병이라는 걸 주변 사람에게나마 전달하고 싶었다. 나비의 작은 날갯짓 하나로도 큰 헤일이 만들어질 후 있다는 사실처럼 작고 미미하지만 그럼에도 나의 날갯짓을 한번 해보고 싶었다.


세기가 바뀌는 날, 한국 전역에서 지구가 멸망하리라 어수선하던 2000년, 나는 한국에서 태어났다. 태어나기에 조용했지만 예민하고 잘 울던 아이는 또래보다 말을 빨리 시작했다. 양가 집안의 첫째 손주이자 어렵게 생긴 아이였기에 많은 양가 가족과 친척 그리고 지인 분들에게 많은 축하를 받았다. 오로지 기족들을 위해서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일본에 기초일본어책 한 권을 들고, 걷다 발톱이 빠지는 날을 겪으며 일본에서 터를 잡으신 아버지를 따라 일본으로 이민을 갔다. 일본에서 지내던 다양한 에피소드들은 다음 장에서 이야기하겠다. 초등학교 3~4학년 무렵 일본에서 한국으로 다시 거주지를 옮겼고, 처음으로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한글을 또래보다 늦은 나이에 배웠다. 다행히 나라에서 재외국민 자녀들을 위한 특별반 제도를 시행하던 학교가 국내에 몇 군데 있었다. 왕복 두 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버스를 타고 등하교했다. 아침엔 대부분 고모가 데려다주셨지만, 하교는 혼자 혹은 나와 같이 멀리서 등하교를 하는 재외국민 특별반 친구들과 같이 하교를 하곤 했다.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나는 한글을 잘 읽지 못해, 오로지 음성안내만을 의지하여 내려야 할 정류장 직전에 버스 정자 버튼을 눌렀다. 혹여나 놓칠세라 매 순간 긴장을 하며 음성 안내를 들었고, 어리지만 답답한 마음에 같이 수업을 듣는 특별반 학생들보다 빠르게 한글을 익히게 되었다. 재외국민 귀국 학생들을 모아둔 특별반은 ‘귀국반’이라고 불렸다. 저학년은 ‘온누리반’ 그리고 고학년은 ‘한마루반’으로 불렸으며, 나는 온누리반과 한마루반을 지나 졸업을 했다. 다양한 나라에서 온 학생들이 많았다. 일본, 중국, 미국, 캐나다, 뉴질랜드 등등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했다. 그리고 같은 나라에서 귀국한 또래 친구들이랑만 거의 친해지는 건 당연지사였다. 귀국반의 수업은 한글을 배우고, 한국 문화를 배운다. 당연히 국어, 수학, 사회 등등 다양한 수업도 같이 한다. 특이한 점은 일반 한국 학생들이 있는 반을 우리는 ‘협력반’이라 불렀다. 하루에 1-2시간 정도 배정된 협력반에 가서 한국어가 크게 필요하지 않은 체육이나 도덕 등의 예체능 수업을 같이 들으며 한국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 시간을 보낸다.


협력반에 갈 때마다, 나는 꽤나 눈에 띄는 학생이었다. 매 학년 각 반에 배정되는 귀국반 학생을 보는 협력반 아이들의 신기한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그럼에도 항상 나의 행동 모든 걸 아이들이 지켜보고, 외부인으로 대했던 기억은 정말로 처음으로 외부인이 된 듯한 기분이 들게 했다. 일본 내에서도 잦은 이사로 어린 나이에도 또래 친구들에게 큰 정을 붙이지 않았다. 나의 이 장점이자 단점이 이런 소외감에서 약간은 해방시켜 주었다. 아주 약간은 말이다.


어느 날, 도덕시간이었다. 협력반에서 도덕 수업을 들었다. 도덕선생님은 꼭 하루에 서너 명 학생을 지정하여 도덕 책을 낭독하게 시키셨다. 귀국반 학생의 존재는 전교의 모든 사람이 알고 있기에 되도록 귀국반 학생들에게 무리한 요구는 하지 않는 것이 암암리의 규칙 같은 것이었다. 그날, 도덕 선생님은 한글을 배운 지 얼마 안 된 나를 지목하셨다. 나는 한 글자 한 글자 더듬거리면서 글을 읽기 시작했다. 너무나 수치스러웠다. 4학년 또래 친구들에게 전혀 어렵지 않을 일이 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 무서운 일이었다. 그날 이후, 도서관에 자주 들렸다. 틈만 나면 도서관에 가서 만화책을 봤다. 나는 얕고 넓은 친구관계를 맺는 편이라 친구들은 많았지만, 내성적인 성격 탓에 깊게 친구를 사귀지 않아 혼자 노는 걸 더 선호했다. 그 당시 초등학생이던 나에게 <과학동아>, <Why 시리즈> 유일하게 깊은 관계의 친구였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 중학교에 입학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같은 이유로 또다시 중국으로 이민을 가게 되었다.


한국은 많은 사랑을 받은 만큼 많은 상처를 받은 곳이었다. 같은 한국인이지만, 재외국민이었다는 이유로 내 인생에서 처음 겪은 차별은 아직도 마음속에서 푸른색 멍으로 고스란히 남아있는 듯하다. 그럼에도 나는 한국을 사랑한다. 모든 나의 가족들이 있는 곳이자, 나와 나의 부모님의 돌아갈 자리가 되어주는 이곳, 내 대부분의 친구들과 지인들이 거주하는 이곳은 나를 사회적인 인간으로 살아가게 해 준다. 어린 나이에 또래보다 사뭇 특이한 배경을 갖고 있기에 자원봉사, 대외활동, 아르바이트, 취업까지 모든 곳에서 기회의 땅이 되어주었다. 난 코리안드림(Korean Dream)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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