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모든 유년기, 일본
첫 돌이 지난 무렵 일본에 정착한 아버지를 따라 일본에서 살게 되었다. 어른이 되어서까지 내가 이민을 갔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아마도 두 돌 때부터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일본의 평범한 가정의 아이들과 같이 자랐다.
일본어는 나에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내 기억이 존재하는 가장 처음의 기억 속에서도 나는 일본어와 한국어를 둘 다 구별하여 이해하는 이중언어자를 구사했었다. 유아교육과를 졸업하고, 전직 유치원 선생님이었던 어머니는 내가 만 3살 무렵 유치원을 보내셨다. 말도 안 되는 일이라 느낄 수 있지만, 일본은 4월 학기제도를 시행하고 있어, 한 겨울에 태어난 나는 한 살 위의 아이들과 같이 분류되어 외국인이 단 한 명도 없던 유치원에 다니게 되었다. 어머니가 기억하시기에 유치원을 처음 보낸 6개월 동안 나는 어린아이답지 않게 말을 한마디도 안 하고 함구하고 있어 걱정이셨다했다.
유치원에 입학 전 집안에서는 일본어를 아예 사용하지 않았던 터라 어린 아기가 아예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곳에서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을 많이 하셨지만, 그래도 딸을 믿으셨던 것 같다. 신기하게도 정확히 6개월 뒤, 일본어로 유치원의 같은 반 친구들과 웃고 떠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날 이후, 일본어를 사용할 때 나는 내가 스스로 밝히지 않는 이상 내가 외국인이란 사실을 아무도 모른다.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여전히 네이티브 일본어를 구사한다. 일본을 떠난 뒤, 크게 일본어를 사용할 일이 없지만 성인이 된 이후 나의 최대 강점 중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어느새 이 장점은 나에게 큰 기회를 잡게 해주는 열쇠가 되었다.
일본 내에서도 이사가 잦았다. 1~2년에 한 번 이사를 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친구들과 깊은 관계를 맺기보단 얕고 넓은 관계를 갖는 게 익숙해졌다. 매 번 새로운 지역에 갈 때마다 빠르게 적응했다. 어린 나이였지만 주변 모든 환경이 주기적으로 완전히 변화하는데 익숙해져 혼자 잘 노는 아이로 자랐고, 친구들과도 완만하게 잘 지냈다. 반복적인 환경 변화로 남들보다 빠르게 성장해 버렸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매 번 일본을 방문할 때마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나의 대부분의 어린 시절의 추억을 간직한 곳, 아무도 몰라도 괜찮다. 내 생이 끝나는 날까지 내가 일본을 기억하고, 일본이 날 기억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