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넷, 나는 4개 국어를 한다

사춘기부터 대학생활까지, 중국

by 라영

2013년 여름, 태어나서 처음 중국 땅에 발을 내디뎠다. 내가 살 던 지역은 동남부 지방인 데다가 중국 3대 불가마로 꼽힐 정도로 습하고 덥기로 유명한 지역이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숨이 턱 하고 막힐 정도의 더위였다. 고온 다습한 찜질방에 들어간 기분이었다. 그 여름은 역사적으로도 무더운 여름이었다고 한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당시 14살이었던 나는 늦깎이로 한글을 급하게 배운 탓에 여전히 한글도 완벽하게 사용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런 내가 덜컥 영어와 중국어만 써야 하는 국제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모든 교과 수업은 영어로 진행되었고, 중국어 수업도 중국어로 진행되었다. 영어와 중국어 둘 다 기본적인 인사조차 몰랐다. 막막했다. 9월 새 학기가 시작하기 전, 나의 심각한 영어 실력을 위해 같은 학기에 전학을 오는 유초등학생들과 함께 영어 알파벳 수업을 한 달 동안 듣게 되었다. 7살 아이부터 14살인 나까지 그 한 달 동안 평일마다 학교에 미리 등교하여 함께 알파벳을 배웠다. 정말 다행이었던 건 나보다 한 살은 많지만 같은 반이 될 남자아이도 있었다. 그 친구가 있어서 내가 그 자리에 있다는 게 덜 부끄러웠다. 한 달이 지나고, 새 학기가 되었다. 같이 수업을 듣던 남자아이는 나의 첫 남자친구가 되었다. 그 친구로 인해 내 연애관이 송두리째 바뀌고, 사랑을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온전히 할 수 있었을 만큼 깊은 상처로 남았다. 어린 나이에 시작한 연애는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어 감정적으로 위험하다는 걸 그땐 몰랐다. 어른들이 하지 말라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것도 이제야 깨닫는다.


영어를 잘 못했던 탓에 같은 반 친구들은 나와 같이 팀으로 과제나 수업을 하기 싫어했다. 내 앞에서 직접적으로 나와 함께 하기 싫다며 항의하는 친구가 많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스스로가 한심하고 절망적이었다. 버텨내야 했다. 한 학년 위 언니들에게 자주 불려 가서 괴롭힘을 당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이때를 생각하면 너무나 괴로운 시간들이라 그때의 내가 가엽기만 하다. 다행히 나는 영어와 중국어를 문제없이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중국 내에서 이름이 난 대학교에 입학하여 영어영문학원 학사학위로 졸업을 했다.


대학교 시절은 무탈하게 지나갔다. 3시간만 자고 도서관에서만 지내던 시절도 있었다. 사업동아리, 기획동아리, 태권도, 검도, 국제학생회, 기자단 등등 다양한 동아리 활동을 꾸준히 했다. 국제 학생회에서는 자원봉사부로 활동하고 부부장까지 맡으면서 꽤나 애정을 많이 쏟았었다. 한중 기자단으로 활동하면서 중국 교민들을 위한 민간지에 나의 기사가 실리기도 하고, 현재는 사라진 네이버 중국판 메인에 나의 기사가 메인으로 올라가기도 했다. 내가 다닌 대학교는 학사 졸업을 위해서도 졸업논문이 필수로 필요했다. 영어와 중국어로 졸업논문을 써야 하는 입장이 되니 부담감이 막중했다. 논문을 쓰는 내내 등 뒤에 4년 동안의 노력이 한순간에 사라질 것 만 같은 두려움이 따라다녔다. 1년 동안 졸업 논문을 쓰면서 새벽에 자주 울었고, 탈모도 생겼다. 다행히 아무런 문제 없이 교수님들의 격려를 받으며 순탄하게 졸업할 수 있었다. 여전히 중국에 가면 편안한 느낌이 든다. 가장 근래까지 있던 곳이라 더욱 그런 기분이 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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