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이미 중병이 났습니다. 그동안 인간의 편리를 위해 지하 깊숙한 곳에서 광물을 박박 긁어내고, 개발을 위해 파괴를 일삼아 왔으니 탈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겠지요. 이제 기후 위기는 인류가 직면한 가장 큰 당면과제가 되었습니다.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가 관건입니다. 겨울은 겨울대로, 여름은 여름대로 불안하기만 합니다. 예측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극한의 더위로 기진해 있던 차에 《정음시조》 2025년 7호에 발표된 류미야 시인의 「고산식물」이라는 작품에 눈길이 닿습니다. 고산지대는 날이 맑았다가도 갑자기 비나 눈이 내리기 일쑤입니다. 반대로 기상이 좋지 않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맑아지기도 합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렇게 얼굴이 바뀝니다. 「고산식물」은 이처럼 급변하는 날씨와 척박한 터전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시인은 이 시편을 통해 자신을, 혹은 인간을 고산식물에 비유하며 진지하게 돌아보도록 합니다.
‘가파른 데 숨은 건 외로 된 탓입니다/ 말 못 할 심사는 혓바늘로 돋아/ 잎잎이 가시 같으니 입을 다물 밖에요//’ 첫째 수에서 시인은 고립된 오지에서 가시로 돋은 말을 속으로 삭이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고는 둘째 수에서 ‘시푸른 성질머리로 하늘을 올려보면/ 저물고 깨진 마음 반짝반짝 닦는 별/ 그 뉘도 모를 한숨이 바람으로 붑니다//’라고 노래합니다. 마음속 쓴 뿌리를 내장한 채로 하늘을 보면 맑은 별이 상처 난 마음을 닦아주고 성찰의 바람이 와서 씻어줍니다. 마지막 수에서는 그런 과정을 통해 사슴이 노닐고 철 따라 꽃이 피는 기쁨으로 승화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성찰과 수양의 과정을 통한 성장인 것입니다. ‘전설 속 흰 사슴이 남몰래 목을 축이고/ 여름날 바람꽃과 상고대 겨울 설화雪花,/ 철마다 꽃밭인 것은 나만 아는 기쁨입니다//’ 예측할 수 없는 기상이변과 변화무쌍한 고산의 일기가 그렇듯이 우리의 삶은 언제나 내·외부적 영향 속에서 부침을 겪습니다. 류미야 시인의 「고산식물」을 새겨보면 비록 그런 환경일지라도 철마다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입니다.(김진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