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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e Oct 25. 2022

Chapter 2.(4) 그들이 살았던 세상

4. 규모의 확대와 집단 정체성의 형성


우리가 배고플 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데 무언가 먹고 배가 어느정도 채워지면 어떻습니까? 다른 무언가를 하고 싶어집니다. 인간의 욕망을 이론적으로 잘 정리한 것이 매슬로우의 5단계 욕구-위계 모형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는 수백만년에 걸쳐 우리 안에 쌓이고 쌓여 형성된 우리의 본성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는 생존이라는 목표를 이룬 호모 사피엔스들이 좀 더 안정적인 삶의 기반을 마련하고자 안간힘을 쓰는 과정에서 두드러집니다. 

북 그린란드 빙하  1만7천년 전 ~ 1만년 전 산소 동위원소(O-18) 변화. 추울땐 델타 O-18값이 하락, 따뜻할땐 상승한다. (CC0 image at 위키미디어 커먼스)

약 1만년 전 무렵 지구의 기후는 오늘날과 비슷해졌습니다. 이 때문에 이전처럼 극심한 추위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무렵부터 사람들은 점차 한 곳에 머무르며 함께 살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오래 전부터 고인류들은 무리를 이루어 서로 힘을 합쳐 살아갔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어느 한 곳에 거처를 둘 수 없었습니다. 수렵·채집을 하려면 빠르고 넓은 지역을 오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적은 수의 사람들이 움직이는 것이 유리합니다. 


물리적 사회 관계의 한계점을 150명으로 설정한 던바의 수 (CC4.0 image by JelenaMrkovic at 위키미디어 커먼스) 

전문가들은 이러한 인간 무리의 수를 25명~35명 정도이며 그 한계를 150명 내외로 봅니다. 왜 150명일까요? 영국의 인류학자 로빈 던바(Robin Dunbar)는 침팬지를 비롯한 사람들 각자 사회적 관계를 맺는 수가 대략 150개체 수준임을 알아냈습니다. 이것을 ‘던바의 수’라고도 부르는데요,¹  수렵·채집이 주를 이루었던 구석기 시대에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집단을 이루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이동을 자주, 그리고 멀리해야 하니 사람이 많을수록 불리하니까요. 하지만 사람들이 한 곳에 머무르게 되면서 이런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냥을 나갈 때에는 필요한 소수의 인원들만 이동하고 나머지는 거처에서 머무르며 각종 도구를 만들고 요리를 하며 구성원들을 보호하는 등의 역할을 나누어 맡았습니다.  


아부후레이라의 위치 (CC3.0 image by crete (originated from NatufianSpread.png) at 위키미디어 커먼스

특히 이러한 변화는 주로 비교적 건조하지만 주변에 강가에 자리를 잡고 살았던 인류 집단에게서 두드러졌습니다. 이러한 곳에서 곡물들이 잘 자랐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강가에서 물고기를 잡을 수 있었으므로 먹거리를 확보하는 데에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을 줄일 수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현재 시리아 지역의 유프라테스강 하류에 위치한 아부 후레이라(Tell Abu Hureyra)에서는 약 1만 1천 5백년 전 수백명의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것으로 보이는 집터와 야생 밀과 귀리를 길렀던 것으로 보이는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이처럼 온난 건조한 기후 속에서 살아가던 인류 집단들의 규모는 점차 늘어났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집단 안에서 서로를 구별했을까요? 앞서 살펴본 던바의 수에 따르면 1명이 물리적으로 사회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최대 수는 150명입니다. 이것이 맞다면 150명 이상은 물리적으로 누가 누구인지 구별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이미 해결책을 갖고 있었습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호모 사피엔스들은 머릿 속으로 상상한 것을 실제로 ‘그럴싸하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북아프리카 모로코 지역에서 발견된 약 8만 2천년 전의 조개껍질로 만든 장신구가 이를 뒷받침 합니다.² 또한 호모 사피엔스들은 동굴에 여러 벽화들을 통해 동물을 사냥하는 모습과 함께 그 과정에서 죽음에 이른 사람과 동물의 모습들을 담아냈습니다.³ 한편 독일에서 발견된 약 4만년 전 무렵 만들어진 사자인상은 사자의 얼굴에 배꼽이 두드러진 인간의 몸을 갖고 있는데 이것은 용감함과 풍요로움을 표현한 것 입니다. 이와 같은 다채로운 표현능력을 지닌 인류 집단들은 각자의 고유한 정체성을 담은 무늬, 표식 등을 옷이나 장신구에 부착하여 서로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게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상징, 즉 표지입니다. 이러한 표지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예술품, 언어, 기호, 문자 등으로 보다 다양해졌습니다. 



1 Moffett, M.W. (2019). Human Swarm : How Our Societies Arise, Thrive, and Fall. Basic books (인간 무리왜 무리지어 사는가마크 모펫 저김성훈 역. (2020). 김영사.)'


2 Bouzouggar, A., Barton, N., Vanhaeren, N., d’Errico, Francesco., Collcutt, S. (2007). 82,000-year-old shell beads from North Africa and implications for the origins of modern human behavior. PNAS, 104(24). https://www.pnas.org/doi/full/10.1073/pnas.0703877104


3 인도네시아 술라웨시 동굴의 벽화(약 BP 43,900년)에서는 들소를 둘러싼 창과 밧줄을 들고 있는  사람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또한 프랑스 쇼베동굴(약 BP 30,000년)과 라스코동굴(약 BP 15,500년)에 남겨진 다양한 동물(e.g. 코뿔소, 매머드, 황소 등)과 사람 벽화는 당시 인류가 사냥 행위로 인해 죽음에 이른 타자의 고통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을 짐작케 합니다.


4  Kind, C.-J., Ebinger-Rist. N., Wolf. S., Beutelspacher, T., Wehrberger, K. (2014). The Smile of the Lion Man. Recent Excavations in Stadel Cave (Baden-Württemberg, south-western Germany) and the Restoration of the Famous Upper Palaeolithic Figurine. Quartär, International Yearbook for Ice Age and Stone Age Research, 61, 120-145. 

https://doi.org/10.7485/QU61_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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