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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e Oct 28. 2022

Chapter2.(5) 그들이 살았던 세상

5.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를 상상하고 믿기 시작하다. .

살아가면서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맞이할 때가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사건, 사고로 인해 크고 작은 어려움들에 처하기도 하고요, 반대로 복권에 당첨이 된다거나 아니면 생각보다 시험 성적이 좋게 나왔다던가 하는 기쁜 일들이 생기기도 하지요. 시간이 지나서 그때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을 떠올리면서 “재수가 없었어.” 또는 “운이 좋았어” 라고 되뇌이곤 합니다. 뿐만 아니라 어떤 사람들은 미래에 자신들에게 일어날 나쁜일 또는 좋은일들을 알아보려고 점술가를 찾아가 점을 보기도 합니다. 


라스코 동굴 내부에 남겨진 동물 벽화 일부 (CC0 image at 위키미디어 커먼스)

운(運)은 ‘이미 정해져 있어서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하늘의 뜻’ 입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하늘에서 이미 정해 놓은 것들은 사람의 뜻으로 좌지우지 할 수 없으니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인데요, 하늘의 뜻 이라...그렇다면 하늘에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인간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절대자가 정말로 있는 것일까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이에 대해서 각자 생각이 다를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조상들은 어땠을까요? 약 3만년 전의 프랑스 쇼베동굴과 약 1만 5천년 전 라스코 동굴 내부 깊숙한 곳에서는 마치 살아있는 모습의 황소, 매머드, 말, 염소, 사슴 등을 그린 벽화들과 함께 의례를 지낼 때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것들이 유물들이 발견되었는데요, 이를 통해 당시 동굴은 인간들이 다른 생명체의 죽음을 목격하고 그들의 아픔을 느끼면서도 생존을 위해 사냥을 해야하는 운명을 받아들이기 위해 누군가를 죽음에 이르게 한 행위를 반성하고 명복을 빌었던 장소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¹ 비록 이것만으로 당시 사람들이 절대자의 존재를 믿었는지를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또다른 세상이 있다.’ 라는 내세관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괴베클리테페 중 일부 모습 (CC 4.0 image by Kerimbesler at 위키미디어 커먼스)

이러한 믿음의 흔적이 보다 뚜렷하게 드러난 것은 약 1만 2천년 전 ~ 약 1만년 전 무렵, 그러니까 플라이스토세의 끝나갈 때 였습니다. 지금은 투르키예(Turkey)의 동남부에서 1960년대에 발견된 ‘배불뚝이 언덕’, 괴베클리 테페(Göbekli Tepe) 에서는 석회암 재질의 T자 모양의 기둥이 수백개 발견되었는데 그 높이가 최대 5.5m에 이르는 것도 있습니다.² 기둥들 표면에 초승달과 같은 문양과 황소, 멧돼지, 오리, 야생 당나귀, 뱀 등과 같은 동물들과 함께 주로 남성들의 모습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곳에서는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다수의 전문가는 이 곳이 인류집단의 일체감을 다지는 '특별한 공간'으로 보고 있는데요,  괴베클리 테페가 주변 보다 비교적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고, T자형의 거대한 돌기둥들은 여러 사람들의 힘을 필요로 했을 것이므로 이들을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수 있어야 했을 것입니다. 또한 각 기둥 표면의 동물과 기하학적 문양은 자연의 모든 생물, 무생물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애니미즘(Animism)이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Urfa 박물관에 재연되어 있는 네발리초리의 신전터 모습 (CC 4.0 image by Dosseman at 위키미디어 커먼스)

이러한 까닭에 괴베클리테페는 ‘수렵·채집인 집단들이 점차 한 곳에 정착하며 살면서 안위와 발전을 바라는 마음을 담아 절대적 존재를 향한 의례를 지낸 인류 최초의 신전’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에게 던져진 시사점들이 있습니다. 먼저 수렵채집이 농업으로 갑자기 '확' 바뀐 것은 아니라는 점 입니다. 이러한 전환은 생각보다 점진적으로 이루어졌던 것 같습니다. 이는 괴베클리 테페 인근에 약 1000년 정도 이후에 형성된 네발리 초리(Nevali Cori) 유적지에서 단적으로 드러납니다.³ 이 곳에서는 T자형 돌기둥 뿐만 아니라 집터, 농업과 매장의 흔적들이 발견되었는데요,  이는 어떤 집단이 초자연적인 믿음, 즉 신앙을 매개로 한 곳에 모여 정착하면서 농사를 짓게 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차탈회위크의 집터 중 일부 (CC3.0 image by Omar Hoffun at 위키미디어 커먼스)

집단 신앙과 정주농업의 복합적 특성은 좀 더 시기가 지난 약 9천년 전 ~ 8천년 전의 투르키예의 차탈회위크(Çatalhöyük)에서 보다 두드러집니다.  이 곳에서는 수 백명~수 천명 수준의 인류 집단이 모여 살았던 집터가 발견되는데요, 이 곳의 각 집들은 통로가 없이 마치 벌집처럼 붙어 있어 지붕으로 오갔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보다 놀라운 점은 각 집 내부에서 생활공간과 함께 바닥 밑에 무덤이 함께 있었으며 제례를 지냈던 공간과 동물 벽화들도 함께 발견된 것입니다. 이는 당시 사람들이 먼저 세상을 떠난 조상들을 틈틈이 떠올리며 그들을 기억하는 의식을 지냈음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인류가 눈에 보이지 않는 절대적 존재의 힘이 있다고 믿고 상징물을 만들고 의례를 지내기 시작한 것은 적어도 수만년 전부터 였습니다. 그런데 왜 인간은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를 믿었던 것일까요? 역설적으로 인간이 약한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지금보다 척박한 환경에서 당장 죽을지도 모르는 공포를 견디며 살아가야 했던 호모 사피엔스들에게 매 순간의 선택은 생사의 갈림길이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남았더라도 고통도 적지 않았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그들은 수많은 동료, 가족들과 동물들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을테니까요. 계속해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압박감과 나만 살아남는 것에 대한 죄책감은 세상을 떠난 이들을 추모하고, 나아가 보이지 않는 절대자를 향한 굳은 믿음을 키우게 했습니다. 




 

1. 배철현. (2017). 인간의 위대한 여정. 21세기 북스


2. Schmidt, K. (2010). Göbekli Tepe – the Stone Age Sanctuaries. New results of ongoing excavations with a special focus on sculptures and high reliefs. Documenta Praehistorica, 37. 239-256. https://doi.org/10.4312/dp.37.21 


3. Tobolczyk, M. (2016).  The World's Oldest Temples in Gobekli Tepe and Nevali Cori, Turkey in The Light of Studies in Ontogenesis of Architecutre, Procedia Engineering, 161. 1398-1404.  https://doi10.1016jproeng2016.08.600


4. Smith, P.D. (2012). City : A Guidebook for the Urban Age (2012), Bloomsbury Press. (도시의 탄생. P.D. 스미스 저, 엄성수 역. (2015). 옥당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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