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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 Oct 10. 2022

06. 혼자만의 시간

자유와 방임 사이






 부모님이 서울에서 2시간 거리로 귀촌을 하셨다. 동생은 기숙사에 살고 있었고 나는 넷이 살던 그 넓은 집에 혼자 남았다. 엄마, 아빠의 가구가 빠지고 나니 집 안의 모든 소리가 공허하게 울렸다. 엄마와 통화를 할 때면 메아리처럼 내 목소리가 돌아오는 느낌에 내가 혼자 있다는 게 절실하게 느껴졌다.


 곧 로스쿨 합격 발표가 났고, 나도 그 집을 두고 학교 앞 자취방으로 이사를 했다. 동생과 같이 살 집이었지만 동생은 학교를 왔다 갔다 했기에 거의 혼자 사는 것과 다름없었다. 살면서 처음 누리는 자유이자 방임이었다. 나만의 공간이 생긴 것이 처음에는 좋았다. 집 구석구석을 내 스타일로 꾸미고 가구를 사고 친구들을 초대했다. 입학 후에는 동기들이 생겼다. 오랜만에 만나는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관계에 나는 많이도 들떠있었다.


 통금도 없었고, 집에서 나를 기다리는 부모님도 없었다. 밤새 술을 마시고 쪽잠을 자다가 학교 수업을 겨우 나갔다. 거의 대학교 새내기 때나 할 법한 생활이었다. 나에겐 그 때가 처음 누리는 새내기 생활이었다.




 그리고 그즈음 3년을 만난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일방적으로 통보 받은 이별이었다. 대학교 CC로 만나 1년 반의 군대를 모두 버틴 끝에 그 친구가 학교를 복학하던 시기였다. 나는 나대로, 그 친구는 그 친구대로 바빴다. 그리고 나도 그도 정신적으로 아팠다. 거리도 멀어졌고, 걔는 나를 나는 걔를 신경 써줄 여유가 없었다. 어찌 보면 그 이별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 인연이 포기가 되지 않았다. 성인이 되어 만난 첫 애인이었고, 내 모든 처음을 함께 한 친구였다. 앞으로의 모든 미래를 함께 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그 모든 시간을 부정하는 듯 그 친구는 나를 더 이상 만날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전화 한 통으로 3년의 시간이 과거가 되었다. 울고 불며 매달려 보기도 하고 화를 내보기도 했다. 하지만 걔의 선택은 번복되지 않을 것 같아 보였다. 포기되지 않았지만 잊고 살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나는 더욱 외로워졌다. 혼자 있는 시간이 못 견디게 괴로웠다. 사람이 고팠다. 지금 돌이켜 보면 후회되는 시간이었다. 좋아하는 감정이 아니라 외로움을 견디기 위한 수단으로 사람을 만났다. 이제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지난 사람들. 평소였으면 연도 맺지 않았을 법 한 사람들과 연인이 되었다가, 헤어지기를 반복했다. 항상 내가 차이는 쪽이었다. 자연스럽게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


 하지만 그때엔 나도 살기 위해서 그랬던 것 같다. 알량한 자기위로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 옆에 누구라도 두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았다. 일상을 나누고 체온을 나눌 ‘사람’이 필요했다. 친구들과의 술자리는 그때뿐이었으나 내가 만났던 연인은 오랜 시간 내 옆에 있어주었으니, 당연히 연인이 되면 그런 관계가 되는 줄만 알았던 것이다. 물론 그건 나의 어리석은 착각이었다. 누군가와 ‘연인’이 된다고 해서 그 사람이 언제나 내 옆에 있어주지 않는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다.




 바쁘게 노느라 잊고 있었던 병증이 다시 스물스물 나를 집어 삼킨 건 어찌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열람실에 앉아 있다가 사무치는 외로움에 별안간 눈물을 흘렸다. 집에 혼자 있으면 엉엉 우는 일이 잦았다. 이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정신과 약을 끊은 대가로 부정적인 감정은 더 짙고 깊어졌다.


 나는 그때마다 내 첫 남자친구를 찾았다. 걔는 처음엔 매몰차게 나를 거절하다가 내가 우는 걸 핸드폰 너머로 듣고 전화를 끊지 않아주었다. 그렇게 전화로나마 익숙한 사람에게 기대고 나면 마음이 좀 나았다. 그렇게 한 달에 두어 번은 그 친구와 통화를 했다. 그때뿐이긴 했으나 걔가 주는 안정감이 좋았다. 사실은 우리가 함께한 시간이 준 안정감이었을 뿐인데 말이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헤어진 지 반년 후에 찾아온 그 친구의 다시 만나자는 말에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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