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다 중소기업 기획부서
제가 일하고 있는 회사와 업계에서 만나고 함께 일하는 이들 소개 두 번째! 오늘은 "방황하는 박대리"라는 제목으로 중소기업에서 3~6년 차, 마의 구간을 지나는 가칭 '박대리'에 대해 소개해 볼까 합니다.
※ 제가 요 몇 번에 걸쳐 소개해 드릴 직원들은 저희 회사 직원의 모습도 일부 있고, 제가 만나는 회사들에서 만난 직원들의 이야기들도 섞여 있는 가상의 인물입니다!! 부여하는 성들도 임의로 제가 부여한 성이라 보시고 편하게 읽어주시면 되겠습니다 ^^
지난번에는 밝은 표정으로 걱정과 기대로 제조분야 중소기업에 왔지만, 대다수를 이루는 나이 든 아저씨들의 여러 모습들에 치이고 미래에 대한 여러 걱정들로 "청년내일 채움공제" 2년을 채우고 떠나는 '막내 엔지니어'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https://brunch.co.kr/@9ae626636ef04c0/95
이번에는 여러 이유들로 남아서 그 고비를 넘겨 대리가 된 '박대리(가칭)'에 대한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대기업들이야 요즘은 직급 파괴로 사원 단계만 넘으면 바로 "매니저"로 부르기도 하고 IT기업이나 외국계 기업에서는 영어 닉네임을 부르기도 합니다만, 제조분야 중소기업에서 저희 회사도 그렇고 제가 만나본 회사들도 그렇고 여전히 예전부터 내려온 전통적인 직급체계를 따르는 회사들이 많은 거 같습니다.
직급 연한 같은 건 회사들마다 많이 다르겠습니다만, 상당수 만나봤던 회사들에서 4~5년 차 정도 되면 보통 대리(또는 선임) 진급을 시키고 연봉도 그해에는 좀 더 상승폭이 크게 주는 거 같았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규모가 큰 중소, 중견기업은 과장이나 수석 같은 다음 직급으로 올라갈 때 최소 3~5년 이상 보지만, 제조분야 중소기업들(제가 만나 본)의 경우는 대리부터는 완연히 주도적으로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이들과 그렇지 못한 이들과 격차가 두드러지게 보이기 때문에 똘똘한 젊은 인력을 잡기 위해 조기 진급을 시키는 경우들도 제법 다양하게 많은 거 같습니다.
그리고 본격적인 스카웃 대상이 되기도 하지요.
예전에 이 브런치 시리즈 말고 다른 글에서 한번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만, 우리나라는 IMF 이후 인력을 기업이 직접 양성해 기업의 비전에 맞는 우수한 인력을 만들어 가는 방식에서 외부에서 핵심인력과 소모인력을 사다 쓰는 기조가 점차 확산되더니, 2010년대에 들어서서는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우리나라 전반에 걸쳐 대세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런 폐해를 제가 예전에 고스란히 겪어 본 적이 있는데요, 이런 흐름입니다.
저는 신입사원을 채용해 긴 시간 돈과 시간을 들여 회사에 필요한 인력으로 길러내던 것을 당연시하던 시대에 사회생활을 시작하다 보니, 사회에 대한 준비나 지식이 부족했던 저도 그 2년여간의 회사의 투자를 통해 평생을 살아갈 기반을 갖출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가 대표를 했을 때 저도 중소기업이었지만 약간 이상적인 생각을 가지고 아직 부족하지만, "젊고 성품이 어느 정도 기본은 되어 있는 신입사원들을 채용해 잘 가르쳐서 함께 성장해 가보자"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기술자문으로 연결되어 있던 대학교수님 학과와 그 교수님께 소개받은 다른 대학, 저희와 관련된 학과 학생들을 지속적으로 인턴으로 받고, 그중 일부 학생들을 채용해 2년여 동안은 소위 깍두기로 저희 고객사들에서 경험을 쌓게 하면서 점차 쓸만한 직원으로 만들어 내는 과정을 가져갔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젊은 직원들이 외부 스타디들에 가서 공부하고 실력을 더 쌓는 것을 적극적으로 권장했었는데, 어느 날 그 스터디를 간 곳에서 유명 모 IT 기업 선임 엔지니어를 알게 됐고, 얼마 뒤 경력직 채용에 적극 권했던 모양입니다. 요즘도 시행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경력직 우수인재를 추천해 채용이 되면 보너스를 지급하는 게 유행이던 때였습니다.
열심히 공부시키고 실전에서 가르치고 하면서 잘 키워서 저희 고객사들에서도 대형 SI 과장들보다 저희 회사 대리들이 훨씬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한참 조직이 물이 올라가던 때였는데, 그 직원들 중 상대적으로 조금 떨어지던 막내 대리가 스타디에서 소개받고 유명 IT기업 경력직에 지원해 덜컥 붙어 버렸었습니다.
중소 IT회사들이 네이버나 카카오 같은 소위 잘 나가는 IT회사들과 처우나 환경이 같을 순 없다 보니, 8년 정도를 키웠던 적잖은 젊은 직원들 조직이 와해되고 무너지는 데는 2년이 채 안 걸렸었습니다.
그때 사실 너무 화가 나서 직원들을 스카우트해 간 대형 IT회사의 지인 임원에게 항의를 했었습니다.
그랬더니 당시 그 친구가 제게 이런 얘기를 해줬었습니다.
"우리도 첨에는 채용해 키워 가는 정책으로 멤버십을 쌓아 왔었는데, 국내 대기업들이 소프트웨어 부분을 강화하면서 소프트웨어 전담부서를 크게 키우고 경력직들을 뽑으니, 우리도 그렇게 키웠던 인력들, 특히 결혼 적령기의 젊은 직원들이 우수수 빠져나가다 보니 조직을 유지하고 추후에도 뺏길걸 감안해서 필요인력 대비 더 많은 인력을 외부에서 수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얘기도 덧붙여 줬었습니다 "지방 출신들의 경우, 상견례를 할 때 상대편 부모에게 삼성/LG 같은 대기업 근무와 네이버/카카오 같은 회사 중 아무래도 대기업 다니고 있다고 소개하는 게 더 자존심이 서지 않겠냐. 직원들의 이직에는 이런 부분이 큽니다"
그런 일련의 일을 겪고서는 그렇게 연결된 대학 학과에서 데려다 키우던 전략은 폐기하게 되었고, 저는 그 뒤로 회사가 무너지기 전까지 그런 방식의 신입사원 채용은 다시는 하지 않게 되었었습니다.
물론 이게 벌써 십여 년도 전 얘기이고 이제는 다른 부분도 있겠습니다만, 말씀드리고 싶은 큰 줄기는 사람을 키워 써도 되는 먹이사슬의 맨 위에 회사들이 사람을 키워내기보다는 밖에서 수혈해 쓰는 방식으로 전환하자, 그 밑에 중견 회사는 빼앗기는 걸 보충하기 위해 더 작은 회사들에서 또 빼앗아 가는 악순환이 밑으로 갈수록 공동화 현상을 만들어 가게 된 것이지요.
그때 이런 생각을 했었고, 주변사람들에게도 여러 번 얘기했던 거 같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시장이 당장의 필요만 채우려 내일이 없이 돌아가면 10년이 채 안 돼, 중소기업부터 인적 경쟁력이 망가질 것이고, 그 여파는 결국 대기업을 포함해 나라 전체 경쟁력에 악영향을 끼치게 될 거다"라고요
그리고 요즘 IT서비스 분야, 특히 제가 있었던 금융분야 IT분야는 이미 그렇게 돼버린 거 같습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혈압이 다시 오를 거 같기도 하고 조용히 제조분야에서나 충실하렵니다 ^^;)
다시 돌아와서
중소기업은 여러 가지로 부족한 것이 많습니다.
특히 젊은 직원들에게는 연봉이 적은 부분도 불만이겠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함과 배우고 성장하기에 제한적인 환경도 많이 부족하기에 한 직장에 오래 있었던 직원도, 직장을 1~2번 옮긴 직원도 "여기 계속 있는 게 맞을까?", "옮겨야 하나?", "어디로 가지?" 이런 고민들이 더 깊어져 가고 가장 심한 게 대리와 과장 연령대인 거 같습니다.
나름 대리나 과장급 정도 되면 한 사람의 완연한 전문인력으로 자기 몫을 충분히 할 수 있고, 실제로도 그렇기에 주변에서 연봉을 몇백에서 천만원 이상 더 주겠다는 소리들을 자주 듣게 됩니다. 그 정도 차이가 나면 당연히 엉덩이가 들썩 거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중소기업에서는 그것을 막을 수는 없기도 합니다만, 그렇게 결원이 된 자리를 신입을 다시 채용해 긴 시간을 채워갈 회사는 없겠지요. 그러면 다른 회사에서 또 비슷한 직원을 구하거나, 외주로 돌리거나 하게 되는 거 같습니다.
제가 보기엔 이게 참 중소기업 시장의 악순환인 셈이어서... 씁쓸합니다.
또한, 제가 몇 년간 살펴보니 이렇게 방황하다 이직한 직원들 중에서도 이직한 회사의 기술이나 사업이 괜찮은 경우는 거기서 또 배우고 좋은 기술자로 잘 성장할 것입니다. 그런 경우는 그나마 괜찮은데, 좀 더 좋은 페이만을 보고 이동한 경우에 상당수는 급한 업무들을 채울 인력으로 뽑은 것이기에 성장보다는 정신없이 소모되는 역할로 연차가 늘어가게 되어서... 몇 년이 지나고 나면... 회사는 여러 회사를 옮겨 다녔는데, 뭔가 일은 많이 했는데, 실력은 그닥인 애매한 기술자가 되어 버리는 게 참 안타까웠습니다.
정답은 없겠지만, 확실하게 기술적 성장을 가져갈 수 있는 기회라면야 모르지만 아직 젊고 한참 더 배울게 남았을 때는 너무 조급하게 여기저기 이직하는 것보다는 충분히 실력도, 경력도 무르익는 것이 더 좋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신입사원이나 아직 어린 주니어들이야 제 아들 같아서 차라도 사주면서 말려 보겠지만, 대리 과장정도 되는 친구들을 제가 뭐라고 말리기도 그래서... 들어주고 밥이나 사주면서 격려해 주지만, 그들이 이렇게 결정할 수밖에 없는 시대가 참 아쉽습니다 ^^;;;
"너무 조급하지 말고 남들과도 비교하지 말고 자신의 길을 가면 좋겠습니다"
고민 많은 중소기업의 박대리, 박과장들에게 힘내라고 위로와 격려를 전해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