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차이가 이런 거였구나!
" Desbille가 자꾸 우리 집에 오겠다네 당신한테 줄 게 있대."
"아니 줄 게 있으면 당신한테 주면 되지. 굳이 왜 자꾸 오겠다는 거야. 그 사람 참 눈치도 없지. 내가 한국에 그냥 갔다 온 것도 아니고 큰일을 두 번이나 치르고 왔잖아. 나 지금 힘들어. 다음에 오라 그러지~~"
한국에서 돌아온 지 일주일도 채 안된 시점에서, 남편이 내게 건넨 말에 은근히 짜증이 났다. 사실, 나는 그 말이 그리 달갑지가 않았다. 왜냐하면 긴 시간의 비행으로 너무 지쳐 있었고 무엇보다 아직은 누구를 초대할 만큼 마음을 추스르지 못했다.
둘째 딸의 결혼식이 있었던 지난 한 달은 너무 큰 아픔과 기쁨이 있었던 때였다. 정말 생각지도 못하게 사랑하는 엄마를 하늘로 보내야 했다. 백혈병이 혈액암이라는 것도, 그것이 그렇게 무서운 병이라는 것도 그때 알았다. 급성 백혈병으로 병원에 입원한 지 한 달도 채 못되어 일어난 일은 너무 충격이 컸다. 그래도 엄마와 마지막을 함께 하며 병간호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나에게 커다란 축복이었다. 나는 늘 엄마의 곁을 지키는 딸이었고 버팀목이었으므로...
딸의 혼사를 앞두고 혹여나 어려운 일이 생기면 어쩌나하고 정말 많은 기도를 했다. 엄마는 사경을 헤매면서도 딸의 맘을 헤아리셨던 것인지, 결혼식 2주 전에 주님 품에 안기셨다. 그땐, 장례의 모든 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슬픔보다 감사가 앞섰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엄마의 슬픔을 슬퍼할 겨를 도 없이 딸아이의 혼사를 준비해야만 했다. 마음을 단단히 먹으려고,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참 많이 애썼다. 엄마가 함께 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금방 눈물이 쏟아질까 봐 그런 생각조차도 하지 못했다. 스스로 슬픈 마음을 다독였다. 그렇게 모든 일을 다 치르고 다시 이곳에 돌아오니 텅 빈 공허함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데스빌레가 또 사무실로 찾아왔다는 남편 말을 듣고 더 이상 늦출 수 없어 그를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남편과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그는 옆동네 야미람보에서 혼자 지내는 에티오피아 사람이다. 우리는 그와 벌써 서너 차례 식사를 했다. 지난번에는 그가 우리 부부를 초대해서 에티오피아 전통 음식인 인게라를 대접했는데 나는 그 특유의 향 때문에 거의 먹지를 못했다. 식성이 좋은 남편은 맛도 잘 모른다면서 그 많은 것을 어찌 다 비웠을까! 둘둘 말린 것을 펼치면 생각보다 훨씬 큰 인게라가 된다.
치킨 수프 괜찮아요!!! 물론 미리 물어서 준비를 했지만 또 한 번 말을 건넸다. 나는 귀한 손님이 올 때 거의 백숙을 끓인다. 타지에서 생활할 때 기운을 북돋워주는데 이만한 음식이 있을까 싶어서다. 찹쌀 넣고 푹 고면 대문 밖까지 구수한 냄새가 풍긴다고 했다. 딱히 대접할 것도 마땅치 않고 솜씨도 없는 내가 이거 하나만큼은 정성으로 끓여 낼 수 있으니까~~!
벌써 몇 번째 맞이하는 손님인지 모르겠다. 백숙만 끓이기를 대여섯 차례 된다. 이런 날엔 우리 집 고양이들도 신이 난다. 반찬이래야 배추김치, 물김치, 오이무침, 버섯 전, 토마토에 고다치즈 곁들인 것, 이게 전부다. 그에게 한국 음식을 대접하는 것은 처음이고 에티오피아 정교를 믿는 그가 음식을 가리는 것들이 있어 은근 신경이 쓰이긴 했다.
그가 음식을 먹는 방법은 이렇다. 커다란 접시에 밥을 덜어 놓은 후 반찬을 그 위에 가져놓고 손으로 둘둘 돌리면서 먹는 방식이다. 그들 음식인 인게라도 이렇게 먹는다. 숟가락도 있고 포크도 있긴 하지만 에티오피아 방식은 일단 손이 먼저다. 닭 다리 살을 뜯어서 밥 위에 올려놓더니 고기와 밥을 손으로 주물러서는 입에 가져간다. 어찌 보면 참 지저분해 보이고 저걸 어떻게 다 먹을까? 하는 걱정도 된다. 그래도 생각보다 한국 음식을 잘 먹는다. 적당히 잘 익은 배추 물김치에 고개를 끄덕끄덕하더니 백숙 국물이 구수하다면서 쭈욱 들이켠다. 는다는 백숙이 구수하다면서 국물을 쭈욱 들이켠다.
그가 식사 기도를 하는 것과 닭 다리를 뜯어먹는 모습, 그리고 차려 놓은 음식들을 동영상에 담아 달란다. 그의 가족들에게 보내줄 거라는 것이다. 데스빌레는 얘기하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그래서 식사 시간이 꽤 길어지기도 하지만 그의 유머러스한 행동과 말 때문에 자주 폭소가 터진다. 가족들과 떨어져서 지내는 생활이 힘들 수도 있겠지만 낙천적인 그의 성격 때문에 잘 지낼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다.
식사를 마치고 그가 작은 액자를 내게 건넸다. 액자를 사이에 두고 데스빌레와 우리는 사진을 찍었다. 포장지에 테이프를 어찌나 많이 발랐던지 벗겨내는데 한참 걸렸다. 선물포장을 해 놓은지 한 달이 지나서인지 끈적끈적한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꼼꼼하다는 생각을 하며 벗겨보니 르완다 전통 양식과 함께 말씀이 적힌 액자다.
Good Bless Your Family!!! 남편이 한국에 가기 전에 주려고 미리 준비했었는데 상을 당하면서 일찍 출발하는 바람에 전해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우리 가족의 일에 관심을 가져주는 외국인의 심성에 순간 마음이 울컥했다.
어둑해질 무렵 데스빌레를 배웅했다. 넓은 도로 끝, 캄캄한 르완다 현지인 마을 좁은 골목을 지나갔다. 내가 이쪽 길이 더 빠를 거라고 추천을 했는데 낮에 보는 것과 밤에 보는 것의 온도 차이가 이렇게나 심할까 싶다. 슬쩍 고개를 돌려 들여다보니 좁은 가게에 여인들이 수북이 안아 술을 마시고 있다. 어둑한 담벼락 밑에는 남자 몇이 술을 마시며 우리에게 손 인사를 건넨다.
훅 하고 부는 바람처럼 우리 일행은 급히 골목을 빠져나왔다. 딱히 할 것이 없는 르완다의 밤은 참 빨리 온다. 큰 키에 약간 어정쩡한 그의 실루엣이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간다. 이곳에서 좋은 친구 하나를 얻었다. 생각해 보면 참 따뜻한 성품을 가진 사람이다. 다시 우리를 초대하겠다는 데스빌레! 그땐 그가 대접하는 인겔라 한 접시를 비울 수 있을까!!!
확실히 문화적 정서에서 오는 생각의 차이가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려움을 겪고 돌아온 사람에게 충분히 시간을 주고 쉬게 하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하는 반면, 에티오피아에서는 빨리 직접 찾아가 얼굴을 보여주고 위로하는 것이 가장 큰 예의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의 깊은 마음을 헤아리지 못해서 미안했다. 서로 다른 생각들이 자칫 오해를 불러올 뻔했다. 그의 방문이 내게 큰 위로가 되었지만 빨리 초대하지 못한 것에 그가 서운함을 느낀 것은 맞았다. 미안, 데스빌레. 내가 몸이 좀 안 좋았어. 마음이 많이 아팠거든~~!!!
서로의 정서를 이해하고 존중해 준다면 우리는 더 친밀한 우정을 쌓을 수 있을 것이다. 타지에 와서 믿음으로 만난 좋은 인연이다.^^
그 나라의 정서를 이해하고 존중해 주는 것이 서로를 친밀하게 알아가는 방법이었다. 데스빌레의 마음처럼 그가 남긴 선물이 내게 평안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