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3 토)
* 삼부르 삼일째
모처럼 잠을 잘 잤다. 밖에만 나오면 은근 잠을 설치는 터라 사실 걱정이 되었었다. 무엇보다 마음이 평안했던 것 같다. 김미정 선교사의 손길로 예쁜 모기장까지 치고 이불이랑 베개랑 아늑하고 폭신했다. 우리는 빌립보서 2장 12~18절 말씀을 나누고, 조식으로 햇반과 누룽지를 먹었다. 우리에게 맛있는 거 하나라도 더 해 주려는 김미정 선교사의 정성이 오늘 아침에도 발휘되었다. 그녀는 손이 무척 빠르고 맛을 잘 낸다. 청경채 볶음과 시금치나물을 무쳐서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식사를 나눴다.
언제 왔는지 심바와 루시가 거실 창에 얼굴을 박고 있다. 그녀가 두 달 전에 데리고 와서 기르고 있는 개다. 털이 유난히 반짝이는 녀석들은 엄마를 졸졸 따라다니듯 그녀의 움직임만 쫓는다. 거실 문이 열려도 고개는 들여 밀지만 절대로 안으로 들어오지는 않는다. 덩치는 크지만 너무 귀여운 아이들이다. 미혼인 선교사에게 정말 든든한 친구 같다.
<선교사의 집> 센터예요~
오전에 잠깐 <선교사의 집> 센터를 둘러보았다. 이곳에 온 지 4년 정도 되었다는 김미정 선교사. 10년 동안이나 폐허였던 건물을 구입해서 이렇게 쓸모 있는 공간으로 리모델링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정말 팔방미인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다재다능했고 열정적이다. 센터에는 컴퓨터와 미싱, 제빵 교실이 있다. 그녀의 꿈은 이곳에서 학생들 수업을 진행해서 나오는 수입금으로, 목회자 생활비와 더 많은 신학생들 등록금을 지원하는 것이다. 이미 2023년부터 3명의 신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고 하니, 그녀의 꿈이 이 센터를 통해서 더 결실이 맺어지기를 기도했다. 2년 동안 기다린 센터 정식 승인 절자가 얼마전에 끝났으며, 2026년 1월에 오픈할 예정이다. 어떻게 미혼인 그녀가 케냐 오지까지 와서 선교를 하게 되었을까. 그녀가 이 땅에 올 수밖에 없었던 사명과 부르심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날래포 교회예요~
오늘은 그녀가 사역하고 있는 6개 교회(날래포, 이야모, 수구타, 은쿠토토, 레데로, 키시마)중 하나인, 날래포교회를 방문하기 위해 9시 30분에 이동을 시작했다. 구불구불한 흙길을 한참 가니 멀리 건조한 초원지대에 건물이 보인다. 날래포라고 적힌 교회 간판이 뚜렷하다. 토요일에는 각 지역의 교회를 섬기는 여성 사역자들이 모이는 날이라고 했다. 이렇게 모인 여성 사역자들은 매주 힘들고 어려운 여성들의 집을 방문하여 위로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은 우리가 이들과 함께 마마무사의 집을 방문한다.
날래포 교회는 어떻게 세워졌나요?
처음에 나무밑에서 드리는 교회였는데 5명에서 150명으로 성도들이 늘었다. 그래서 교회를 짓기로 하고 기도를 시작했다. 김미정 선교사는 이들에게 자립심을 길러주기 위해 "너희들이 기도해라 그리고 기도하면서 헌금도 하자"라고 말했다고 한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 도와주면 이들은 언제까지나 남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선교사의 말을 들으며 참 지혜롭다는 생각을 했다. 나 또한 아프리카 르완다에 살면서 공감하는 부분이 많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파송교회의 도움과 헌금을 보내주신 후원자들의 도움이 있어 2022년 5월에 지금의 날래포 교회가 세워졌다.
매주 토요일은 여성사역자들이 모이는 날이에요~
토요일 오늘은 각 교회 마마(아줌마를 통칭하는 말)들이 이곳 어려움에 처한 마마를 방문하고 병원 방문도 하며 서로 케어하는 날이다. 우리가 예배당에 들어섰을 때는 자리가 많이 비어 있었다. 다들 걸어서 오기 때문에 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 타임이 있다는 것. 일행을 반갑게 맞이했던 여성은 교회의 전도사라고 했다.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하는 여성 사역자들은 저마다 지역 교회에서 직분을 맡은 사람들이다. 어느 정도 모이자 예배를 드린다. 일어나서 찬양을 부르고 한 사람 한 사람 나와서 사역보고를 한다.
"우리 안에도 어려움이 있지만 이 사역을 계속하자"라고 권면하였고, 야고보서 1장 2절의 은혜를 나누며 "시험을 이기면 더 강해진다. 하나님이 일하신다"라며 고백을 했다. 그러면서 방문객들을 향하여 이런 감사의 말을 전했다. "나는 매일 염소를 모는데, 여러분은 하나님 말씀을 따라간다"라며 성경 책을 들어 보였다.
마마무사 이야기
마마무사, 그녀는 13살에 70대 노인에게 시집을 갔어요~!!!
교회 뒤편 허름한 창고에서 살고 있는 마마무사(~~ 의 엄마라는 뜻). 그녀는 날래포 교회 교인이다. 교회 대문을 열어준 그녀는 가장 눈에 띄는 복장을 하고 있었다. 후에 알고 보니 우리가 방문한다고 예를 갖춰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13살 때 71살 노인과 결혼해서 아이 세명을 나았다. 남자는 네 명의 여자를 둘 수 있는데 그녀는 둘째 부인이다. 지체장애아인 큰 아이를 위해서 온 가족이 값싼 도립병원이 있는 날래포 지역으로 이주를 하게 되었는데 불행히도 남편이 갑작스럽게 죽었다. 이런 경우 공동체 사회인 아프리카에서는 대부분 친. 인척이 돌봐주는데 마마무사는 그런 도움을 전혀 받지 못했단다.
그녀는 이 마을에서 유일하게 땅이 없어요~
날래포에 사는 사람들이 땅을 배분하는 시기가 6년 전에 있었는데, 반드시 등록 절차를 거쳐야만 자신의 땅을 배분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녀가 이 마을에 온 것은 등록이 다 끝난 뒤라 한 푼의 땅도 분배받지 못한 것이다. 그때 교회도 약간의 땅을 배분받았고 날래포 교회가 세워졌으며 교회의 도움으로 창고를 개조해서 그녀가 살게 되었다. 교인들이 돈을 모아 집을 마련해 주려 했지만 잘 안되었다. 마을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땅이 없는 마마무사의 꿈은 남동생과 자녀들과 함께 염소도 키우며 살아갈 수 있는 땅을 마련하는 것이다. 예배 때마다 눈물로 기도하던 그녀는 그래도 믿고 있었다. 여러 문제로 기도도 잘 안되지만 하나님이 힘을 주신다고...
우리에게 마마무사의 어려움을 알려 주던 40대 중반의 글라디스 여전도사는 그녀를 앞으로 나오게 했다. 그리고 일행은 그녀를 위해 기도하기 위해 빙 둘러섰다. 기도가 시작되자 마마무사가 얼른 무릎을 꿇었다. 통곡을 하면서 기도를 했다. 절실함이 묻어 나왔다. 우리는 축복송으로 마마무사를 위로했다. 그리고 각자 안아주며 위로의 시간을 가졌다. 글라디스 전도사는 "우리는 다 다르지만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다"라며 자신도 남편 없이 여섯 자녀를 길렀다며 하나님이 과부의 남편이라고 말했다. 일행 중 박민부 목사님 김주경 사모 부부가 후원을 약속했다.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감사를 표하던 마마무사~!!! 그녀의 행복한 얼굴을 그려본다.
수구타 도서관이에요~
수구타 도서관은 토요일에는 도서관으로, 주일에는 교회 예배당으로 쓰인다. 우리가 방문한다고 두 곳의 교회 교인들이 모여 있었다. 큰 나무 밑에 아이부터 어른까지 빙 둘러앉아서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이들을 위해 축복송을 불러주었으며 빵과 음료를 나눠주었다. 축구공 하나가 귀한 이 땅에서 우리가 가지고 간 공이 얼마나 큰 즐거움을 주고 있는지를 보았다. 붉은 흙길을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함빡 웃는 아이들의 모습이 얼마나 행복해 보이는지를 말이다. 우승 팀에게는 티셔츠를 선물로 주었다.^^
우리도 선물을 받았는데 이들이 손수 만들었다는 머리띠와 팔찌, 목걸이다. 나는 화려하고 파란 목걸이를 선물로 받았다. 삼부르 전통의상에 걸맞은 비즈 공예로 만든 작품이었다.
아이들 속에서 유독 동생을 챙기는 형의 모습이 아름다워서 한 컷 찍었다. 동생을 업고 있던 아이였는데 어린 동생에게 우유를 먹여주고 빵을 먹이는 저 모습.!!! 요즘 보기 드문 모습인 것 같았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큰 아이의 얼굴 모습에서 한동안 눈길이 멈췄다. 보기만 해도 동생을 생각하는 따뜻함이 우러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어렵고 힘든 나라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모르는 그들만이 갖고 있는 가족 간의 끈끈한 유대가 느껴졌다.
나는 축구를 하지 못하는 어린아이들과 함께 색깔 찾는 게임을 했다. 생각보다 아이들이 너무 흥미롭게 따라왔다.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갖가지 다양한 색깔들을 찾아가며 눈을 맞추고 깔깔대며 한 덩어리가 되어 놀았다. 마치 내 운동화에 달라붙었던 질퍽질퍽한 진흙처럼 한동안 우리는 한 덩어리가 되었었다. 돌아올 때 차량까지 따라왔던 아이들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함께 사진을 찍으며 너무 아쉬워하던 모습이었다.
키시마 호수예요~
삼부르족의 남성과 여성할례를 행했던 곳이다. 삼부르족은 소수민족으로 가축을 주로 키우고 사는데 거의 16세 정도부터 30세까지 할례를 행한다. 그래야만 전사가 될 수 있다고 한다.
다시, <선교사의 집>으로~
정전이 되었어요~!
저녁에는 정전이 되어 촛불을 켜고 밥을 먹었다. 진짜 아프리카를 경험하고 있는 것 같았다. 갑자기 쏟아지던 비도 경험하고, 길에서 얼룩말도 보고, 낙타도 보고...^^
그러나 어쩌지!~!
김미정 선교사가 백숙을 해주겠다며 해동시켜 놓은 닭은, 다시 냉동실로 넣어 둘 수밖에...^^
"별 보러 나가보세요~~"라는 선교사님의 말에 얼른 어둠 속으로 나갔다. 삼부르의 밤하늘은 어떨까!!! 쏟아지는 별을 한 아름 안고 오려고 했는데 구름이 먼저와서 얄궂게 별을 덮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