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김구 선생과의 대화
**연회장에서 만찬**
도쿄의 밤이 깊어지자, 한국군 병사들은 드디어 자신들의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도쿄 대학 야스다 강당에 모였다.
그들은 잔을 부딪치고 서로의 손을 잡으며 오랜 싸움 속에서 얻은 승리의 기쁨을 함께 나누었다. 전쟁 중 자신의 무용담을 뽐내는 사람도 있었고, 안타깝게 잃은 동료들을 추모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 모든 것이 희생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순간이었다.
그때 누군가 큰 소리로 사람들을 주목시켰다.
“김구 주석님께서 입장하십니다!”
웅성거리던 공간이 일순간 조용해졌고, 모두가 한 곳을 응시했다.
잠시 후, 문이 열리며 김구 주석이 장내로 들어섰다. 그의 등장에 병사들은 숨을 고르며 그의 움직임에 집중하였다. 강당 안은 주석의 발걸음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만큼 고요했다.
그는 병사들 사이를 걸으며 눈빛을 교환했다. 긴 시간 함께 싸운 동료이자 동포들에게 보내는 따뜻한 미소가 그의 얼굴에 묻어 있었다.
“여러분, 긴 싸움이었습니다. 모두 고생 많았습니다.”
그의 목소리가 강당 안에 울려 퍼졌다. 사람들은 주변 동료들과 눈을 마주치며 서로를 격려했다.
“우리는 오랫동안 꿈에 그리던 일본의 중심지, 이곳 도쿄 땅에 섰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과 부산에서 같이 출발했지만, 아쉽게도 이곳까지 함께 오지 못한 우리 동료들의 희생이 아니었다면 절대 이곳에 설 수 없었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병사들은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던 시절부터 한일전쟁까지, 수많은 사건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특별한 감사 인사**
짧은 연설 후, 김구는 단상에서 내려와 사람들과 함께 담소를 나누었다. 그러다 저 멀리 대화 중인 형원과 진을 발견하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잘들 지냈나? 오랜만일세.”
김구가 두 사람을 향해 격식 있는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자네들 덕분에 우리가 이 땅에 이렇게 설 수 있었네. 대한민국 국민을 대표해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네.”
형원이 겸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선생님도 아시겠지만, 이번 정벌은 이 친구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진이 형원을 보며 멋쩍게 웃었다.
“아닙니다, 주석님. 이 모든 것은 주석님 덕에 이룰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김구는 두 사람의 겸손한 태도를 흐뭇하게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아닐세. 자네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이 일본 땅을 밟아볼 생각조차 못 했을 거네. 그대들의 결정과 노력으로 우리 대한제국의 새로운 미래가 열렸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건 최형원 정령의 투지와 열정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그나저나 주석님, 앞으로 일본은 어떻게 통치할 계획이십니까?”
“그게 참, 국회 내에서도 말이 많네. 자네 생각은 어떤가?”
“비록 일본이 우리를 잔인하게 착취하고 학살하였으나, 우리는 그들과 다르기 때문에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봅니다.”
“왜 그렇지?”
“우선, 그들은 우리를 식민지로 대우하고 그에 맞는 지배를 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를 포섭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그 결과, 이렇게 우리는 복수심이 불탔고, 결국은 지금과 같은 전쟁과 또 다른 침략이 벌어진 거 아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강압적인 지배 방식보다는 동등한 선에서 같은 나라로 자연스럽게 흡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형원이 황당한 듯 진에게 자신의 의견을 내비쳤다.
“그건 난 반대야. 저들을 우리와 동등하게 대하자고? 그럼 왜 굳이 목숨 바쳐 여기까지 온 거야? 일본 놈들이 우리에게 한 짓을 잊은 거야?”
“그들의 방식에는 분명 문제가 있었어. 그러니까 우리는 그러지 말자는 거잖아.”
“우리나라는 오랜 식민 지배와 이번 전쟁으로 인해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이야. 착취를 통해 우리나라 사람들의 배고픔을 해결해야 하는데, 그냥 착하게 가져가면 저들이 가만있겠어?”
“분명 경제적인 성장을 위해 우리가 빼앗긴 것들을 다시 되찾을 필요가 있어. 그렇지만 일본이 우리를 착취할 때와 지금은 상황이 달라. 당시에는 전 세계가 전쟁 상황이었고, 대규모 전쟁 물자가 필요했기 때문에 더 악착같았던 거야. 하지만 이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났잖아. 우리는 그렇게까지 착취하면서 일본을 다스릴 필요가 없어. 오히려 그들과 잘 융화해서 이들의 선진화된 기술력을 배우고 활용하는 게 더 효율적이야.”
진의 생각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 형원은 앞에 주석이 있는 걸 잊은 듯 언성이 높아졌다.
“저들과 융화를 하라고? 웃으며 사이좋게 지내란 거야? 저 놈들은 36년 넘게 우리를 욕보이고 내 가족과 형제들의 목숨을 빼앗아 간 놈들이야. 복수의 칼을 갈며 여기까지 온 형제들이 한가득인데, 그들이 과연 일본 놈들과 같은 밥상에서 하하 호호하면서 지내려 할까?”
“너도 알겠지만, 우리 부모님도 그들의 총칼에 숨을 거두셨어. 그리고 나도 여기까지 오면서 가족 같은 형제들이 피 흘리는 걸 하루가 멀다 하고 지켜봤고, 매일 밤 눈을 감으면 그들이 꿈에 나와. 그렇지만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 그리고 인도적인 차원에서 우리는 분노를 거둘 필요가 있어. 지금 전 세계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고.”
이때, 얼굴이 까무잡잡하고 말랐지만 몸이 다부져 보이는 한 사람이 다가와 그들의 말에 끼어들었다.
“우선 오늘은 두 분 다 그만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오늘까지는 어찌 되었든 승전을 만끽하고 좋은 이야기들만 나눕시다. 먼저 간 동료들을 애도도 하고요.”
“그래. 자네들의 의견은 잘 고민해 보겠네. 그나저나 자네는 언제 왔는가? 셋은 초면이지?”
“네. 처음 뵙겠습니다. 이관술이올시다.”
형원이 감탄하며 넙죽 인사를 올렸다.
“신출귀몰 위장술의 달인이신 이관술 선생님을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과찬이네. 다 목숨 부지하려다 보니 그런 별명이 붙었구만. 그런데 둘 다 낯이 익은데, 이름이?”
“저는 최형원입니다. 이 친구는 김진이고요.”
이관술은 이름을 듣더니 그제야 무언가가 떠올랐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호쾌하게 강당이 떠나가라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하하하하하!”
나머지 세 사람은 영문도 모른 채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무슨 일이신데 그렇게나 즐겁게 웃으십니까?”
“자네들은 기억 못 하겠지만, 자네들의 목숨을 내가 구한 적이 있다네. 하하하하! 이렇게 잘 자라주다니, 그리고 그 유명한 인물들이 자네들이었다니! 하하하! 내 자신이 너무나 자랑스럽구만! 고맙네, 고마워! 우리 같이 한잔하세!”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해하는 형원과 진에게 그는 어깨동무를 하며 말을 꺼냈다.
“자네들 혹시 아주 오래전에 대련에 간 적 있지 않나?”
그 말을 듣자마자 둘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서로의 얼굴과 이관술을 번갈아 바라봤다.
[독립운동가 인물사전]
이관술 (李觀述, 1902~1950?)
일제강점기 조선의 대표적인 사회주의 독립운동가이자 항일 투사. 경성트로이카를 조직해 독립운동을 전개했으며, 조선공산당 재건 운동에도 참여했다. 수배 중에는 구두닦이, 고물장수, 솥땜장이로 위장해 일제경찰의 눈을 속이기도 했다. 해방 후에는 좌우합작운동에 가담하여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노력했다. 한국전쟁 발발 이후 납북되었고, 이후 행방이 묘연하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정보시스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