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록]1946년, 한국이 일본을 점령했다

3화 - 첫 만남

by 팬터피

**약 15년 전**

**4월 29일. 대련의 한 연회장 앞**


궁전 같은 저택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몰려오고 있다. 대부분 일본인들이며, 군인, 경찰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다수이다. 이관술은 구두닦이로 위장해 입구에서 일본인들의 구두를 닦아주고 있다.


이곳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중국인 간부의 옷을 입고 있던 형원은 저만치 사람들이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차가운 바람이 그의 얼굴을 스쳤다. 그는 마지막일지도 모를 담배를 깊게 들이마셨다. 이 긴장감 속에서조차 담배의 단맛이 느껴졌다.


“혹시 먹을 게 있다면 조금만 나눠주세요.”


이 추위에 얇은 천 쪼가리만 걸친, 남매로 보이는 어린아이들이 담배 피우는 형원을 보고 구걸을 하였다. 형원은 안주머니에서 지폐 몇 장을 꺼내 그의 손에 쥐어주었다.


“나도 조선사람이다. 그나저나 이게 내가 가진 전부구나. 미안하다.”


두 아이는 처음에는 형원의 조선말에 놀라더니, 받은 돈을 확인하고는 기쁨과 감사함에 연신 격한 인사를 하며 뒷걸음질 치다가 뛰어갔다.


아이들이 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담배를 끈 그는 주머니에서 위조된 중국인 신분증과 초대장을 다시 한번 확인한 후 차분히 연회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초대장과 신분증 제시 부탁드립니다.”


“여깄 습니다. 고생이 많으십니다.”


출입을 통제하는 군인이 초대자 명단을 한참 살피더니 이름이 없는지 몇 번을 다시 살펴


다.


“명부에 장강 님 성함이 없습니다. 혹시 어디서 오셨습니까?”


“뤼순 감옥의 다이케 경무국장님의 초대로 왔습니다.”


“혹시 뤼순 감옥에서 근무 중이십니까?”


“아닙니다. 저는···”


형원이 대답하려는 찰나에 구두닦이로 위장한 이관술이 황급히 반가운 척하며 뛰어왔다.


“아이고~ 사장님. 오늘도 구두 닦으셔야지요~”


이관술이 부산스럽게 뛰어오다가 근처에 있는 의자에 걸려 넘어졌다. 넘어지며 들고 있던 구두통을 놓쳤고, 명단이 있던 탁상에 구두 닦는 걸레 등이 섞였다.


짜증이 난 군인은 이관술을 발로 찼다.


“너 때문에 난장판이 되었구나. 여기가 시장거리였으면 넌 이미 내 총에 맞아 차가운 땅바닥에 누워있었을 게다. 중요한 날이니 정신없이 굴지 말고 썩 꺼져라.”


“죄송합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조심할 테니 살려만 주십쇼.”


두려움에 어쩔 줄 몰라하는 이관술을 뒤로하고 경비는 흐트러진 자리를 정리하며 형원에게 귀찮다는 듯 들어가라 손짓했다.


그는 안도의 한숨을 지으며 대문을 지나 실내로 들어서자, 넓은 강당이 보였다. 정면에는 크게 ‘사이코마코토 총독님의 대련 방문을 환영합니다.’라고 적혀 있었고, 실내는 맛있는 음식들과 술, 그리고 파티를 즐기는 일본인들의 즐거운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우리 동포들은 너희들에게 모든 걸 다 빼앗겨 굶어 죽고 있는데, 너희들은 여기서 이렇게 풍족하게 즐기고 있구나. 그래, 마음껏 웃고 떠들어라. 오늘이 너희의 마지막 날이 될 테니까.’


샴페인을 한 모금 넘기며 그는 속으로 분노하였다.


잠시 후, 마침내 사이코마코토 일본 총독이 그 웅장한 단상 위에 나타났다.


“우리는 지금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조선은 스스로 무너진 병들고 나약한 나라였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우리 발밑에 둘 수 있었지만, 그들은 너무 어리석기 때문에 계도해야 할 점이 너무 많다. 이런 상황에서 소련과 중국은 여기 관동군이 관리하고 있는 이 만주땅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이곳 대련은 중국과 육지와 해상으로 연결되어 있기에 전략적 요충지이다.”


형원은 총독의 개떡 같은 연설을 들으면서 화를 참았다. 그는 오늘 어느 때보다 차분하려 노력했다.


그는 천천히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아무도 자신에게 관심이 없는 것을 확인한 뒤, 구두끈을 묶는 척 자세를 낮췄다. 그는 살며시 오른쪽 구두 굽 쪽으로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 안에 숨겨둔 폭탄을 꺼내 물고 있던 담배 불에 심지를 붙였다. 불꽃이 점차 심지를 타고 들어갔다.


형원은 몇 달 동안 수도 없이 연습했던 계산된 손놀림으로 폭탄을 총독의 발밑으로 던졌다.


쾅!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무대가 부서지고, 사람들은 공포에 휩싸여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연기가 자욱했고, 수십 명의 사람들이 고통에 울부짖었다.


형원은 총독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숨어서 연기가 사라지기를 지켜봤다. 서서히 사라지는 연기. 어느 정도 그 장막이 걷히자 절뚝거리는 총독을 호위하는 무리들이 보였다.


“젠장.”


형원은 총독을 향해 총을 쐈다. 그러나 각이 나오지 않아 그가 쏜 총알들은 총독을 호위하던 병사들에게만 미쳤다.


“저쪽이다! 쏴라!”


그 외침과 동시에 수십 명의 일본군과 경찰이 그를 향해 사격을 시작했다. 형원은 재빠르게 복도를 향해 내달렸다. 총소리가 귓가를 스쳐갔다.


탕! 탕!


뒤쫓아오는 발소리와 총격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며 그의 심장 소리와 섞였다. 형원은 더 빠르게 뛰었다. 숨을 몰아쉬며 어두운 골목으로 뛰어들었지만, 다시 나타난 일본군들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이대로 포위당할 순 없어.’


그는 자리에 멈춰 서서 몸을 낮추며 총을 꺼냈다. 저 멀리 다가오는 일본군을 향해 정확히 조준한 후 방아쇠를 당겼다.


탕!


일본군이 쓰러지자, 형원은 그 틈을 타 좁은 골목을 벗어나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몸을 던졌다.


그러나 일본군은 물러서지 않았다. 수십 명이 그를 둘러싸며 총을 쏘아댔다. 형원은 계속해서 쫓기며 시선을 휘둘렀지만 도망칠 길이 보이지 않았다.


'이제 끝이구나. 아버지, 어머니, 누나... 천국에서 조만간 뵈어요.'


그는 자신의 머리에 총구를 겨눴다.


그때 어디선가 ‘탕! 탕!’ 하고 또 다른 총성이 들렸다. 군인 몇 명이 쓰러졌고, 멀리서 누군가 형원을 향해 소리쳤다.


“어서, 이쪽이야!”


형원은 고개를 돌렸다. 자신을 향해 손짓하는 남자가 저 멀리 어둠 속에서 보였다.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형원은 그 남자 쪽으로 방향을 틀었고, 그와 함께 총격을 피하며 응전했다.


그 사내는 형원에게 빠르게 다가가며 말했다.


“우선 이쪽으로 나가자!”


두 사람은 단숨에 달려 나갔다.


일본군은 끈질기게 뒤쫓아왔다. 골목과 계단, 복잡한 좁은 길을 지나면서도 총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총알이 형원의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갔고, 형원은 진을 향해 소리쳤다.


“아무래도 벗어나기 쉽지 않겠어. 혹시 모르니 죽기 전에 이름이나 알려줘.”


그는 씩 웃으며 대답했다.


“내 이름은 진이야. 너처럼 일본 놈들에게 한이 깊은 사람이지.”


숨 막히는 추격전과 총격전. 그러나 퇴로가 보이지 않았고, 두 명이서 이 많은 일본군의 눈을 피하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꽝!”


그때였다. 조금 먼 도로에서 큰 폭발음이 들렸다. 그리고 누군가 외쳤다.


“총독님이 피신 중 또 테러를 당하셨다. 저놈들은 미끼다. 전대원은 광장 앞쪽으로 이동하라.”


혼란에 빠진 일본군은 일부만 남은 채 빠르게 광장 쪽으로 뛰어갔다. 그러나 광장에 도착했을 때 그들 앞에 있었던 건 공터에서 쓰레기통으로 보이는 물체가 폭발한 흔적뿐이었다. 총독이나 피해를 입은 사람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이는 이관술이 두 어린 친구들을 돕기 위한 계략이었다. 폭탄 하나를 몰래 던지고 거짓 메시지를 통해 일본군에 혼란을 준 것이다. 그런 이후 그는 유유히 사라졌다.


그 덕에 가까스로 추격을 피해 골목을 벗어난 두 사람은 주변 창고 안으로 몸을 숨겼다. 진이 형원을 바라보며 손을 내밀었다.


“혹시 더 큰 싸움을 준비해 볼 생각 있어? 독립군에 합류해서 말이야.”


형원은 진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숨을 골랐다. 그리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의 손을 잡았다.


“좋아. 오랫동안 꿈꿨던 바야.”




[독립운동가 인물사전]


윤봉길 (尹奉吉, 1908~1932)


대한민국 의열단 출신 독립운동가로, 1932년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폭탄을 던져 일본군 고위 장성들을 처단한 의거를 실행했다. 이 사건으로 한국 독립운동이 국제적으로 주목받게 되었으며, 장제스는 "중국의 100만 대군도 하지 못한 일을 조선 청년 한 명이 해냈다"라고 극찬했다. 체포된 후 일본에서 사형당했다.


*출처: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공훈록,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철호 『한국광복군 연구』(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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