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길
**대련 수상 경찰서**
총독이 테러를 당했다는 소문은 대련뿐만 아니라 한국까지 삽시간에 퍼졌다. 그 덕에 일본 헌병대는 이 테러의 주범을 꼭 체포해서 응징해야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그 조센징들은 어딨는지 찾았느냐?”
큰 걸음 소리를 내며 사무실에 들어온 서장이 신경질적으로 소리치자 시끌벅적하던 내부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그러자 부하 직원 하나가 급하게 달려와 우물쭈물 말했다.
“아직까지 별다른 소식은···”
그러자 서장은 그의 정강이를 구둣발로 세게 찼다.
“그럼 뭐 하고 있어! 너희들도 다 나가서 찾아! 병상에서도 총독님이 그놈들 손가락이라도 썰어 오라고 하셨으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꼭 찾아내라!”
**대련 외곽**
삼엄한 경계 때문에 진과 형원은 대련을 빠져나오기조차 힘든 상황이었다. 일본군의 감시망은 며칠이 지나도 여전히 촘촘했다.
“잡아라! 저 놈들이 총독님께 폭탄을 던진 놈들이다!”
“놓치지 마라!”
탕! 탕!
“여기서 찢어져야겠어. 아까 말했던 거기서 만나자!”
“그래, 이따 보자. 몸 조심하고!”
그렇게 진이 빠르게 뛰어가자 형원은 그와 반대 방향인 시장 내부로 뛰어갔다. 경찰들은 이를 보고 병력을 반으로 나눠 둘을 쫓았다.
시장은 꽤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형원은 경찰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시장에 걸려 있는 옷가지와 수건, 모자 등을 활용하여 아까와 다른 느낌으로 차림새를 고쳤다.
“꼼꼼히 잘 찾아라! 놈이 이쪽으로 이동했다!”
시장을 뒤집어 헤집어 가며 총을 든 관동군과 경찰들이 시장을 꼼꼼히 살폈다. 그들은 사람들 하나하나 얼굴까지 확인해 가며 형원을 찾기 위해 포위망을 좁혀왔다.
그들이 서서히 근처까지 다가오고 있다. 뛰어야 하나? 아니면 먼저 주먹을 날릴까? 그러면 그 짧은 시간에 또 다른 적의 총을 피할 수 있을까? 이제 바로 앞이다··· 이제는 선택을 해야 한다.
“어딜 도망치려 하느냐.”
그때, 누군가 뒤에서 그의 어깨를 낚아채며 힘으로 그를 제압했다. 워낙 순식간이고 힘이 좋아 평소 재빠른 그였지만, 대응조차 할 수 없었다. 큰 좌절이 느껴졌다.
“농땡이 그만 부리고 정문 앞 식당에 이것 좀 가져다주거라!”
그를 뒤에서 낚아챈 중국 상인은 그의 어깨에 옥수수 한 자루를 턱 하니 올렸다. 큰 소리가 나자 그 모습을 경찰들이 빤히 훑어봤다. 그러나 누가 봐도 이 시장에서 일하는 잡부 같았기에 그들의 눈은 다시 다른 쪽으로 향했다.
이곳의 중국인들도 자신의 도시에 멋대로 들어와 주인 행세를 하고 다니는 일본인들을 싫어했다. 그랬기에 그 상인은 형원의 위험한 상황을 감지하고 도왔던 것이다.
그는 그곳의 다른 잡부와 다를 바 없이 큰 짐을 들고 시장을 유유히 빠져나와 약속한 장소로 갔다. 그곳은 바로 작은 강의 다리 밑이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진도 곧 그곳에 도착했다.
***************
둘은 강변의 다리 밑에 숨어서 거리가 어두워지길 기다렸다. 그러다가 형원이 물었다.
“어디로 갈 생각이야?”
“아무래도 간도 쪽?”
“음··· 간도···”
형원은 간도라는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왜?? 안 내켜?”
“아니, 가자. 근데 여기서 거리가 꽤 될 텐데?”
“그치. 근데 배나 기차로는 경비가 너무 삼엄해서···..”
“걸어가려면 긴 여행이 되겠구나···”
“낮에 둘이 같이 다니면 그들의 눈에 띄기 쉬우니 하루씩 목적지를 정하고 따로 움직이자. 그리고 밤이 되면 만나는 식으로.”
“그러지 말고···.. 저건 어때?”
형원의 손끝이 가리킨 곳은 바로 인력거였다. 그들은 귀티 나는 옷 하나를 구해 번갈아 가며 손님을 태우고 이동하는 것처럼 다니며 시내를 벗어났다.
그들은 밤새 걸었다. 중간중간 옥수수숲 같은 곳에 숨어가며 일본군의 끈질기고 치밀한 추격망을 피해 한 걸음 한 걸음 목적지를 향해 나아갔다.
“근데 말야, 간도로 가는 거 혹시 불편해?”
“아니. 왜?”
“음... 처음에 물어볼 때 망설이는 것 같길래.”
인력거를 끌고 있던 형원의 표정이 또 어두워졌지만 진은 뒤에 있어서 이를 볼 수 없었다. 끔찍한 기억이 떠올랐다. 형원의 눈앞에는 불타는 집과 누나의 비명 소리가 다시금 맴돌았다. 그는 두 손을 꽉 쥐었다.
“실은··· 거기에 어릴 때 잠깐 살았었어.”
“아···. 그럼 지금은 어디··· 엇.. 엇..?”
진은 아무 생각 없이 대답을 하던 중 갑자기 무엇인가가 떠올라 다급히 말을 멈췄다. 우리 어릴 때, 10년 전쯤···. 1920년대 전후쯤의··· 간도라면···. 그 끔찍한 사건이 있던···
“······. 네가 생각하는 거 맞아···. 그때 이후로 그곳에 처음 가는 거야..”
“·········..”
둘 사이 꽤 오랫동안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둘은 인적이 드문 곳을 찾아가 자리를 바꾸기 위해 주위를 살피며 옷을 갈아입었다.
“나 어릴 때 우리 가족은 아버지가 일본에 노역으로 강제 징용되셔서 같이 끌려갔어.”
“개새끼들. 근데 어떻게 나온 거야?”
“거기가 관동이었어.”
그 말 한마디에 아까부터 억지로 참고 있던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 평생 지울 수 없는 지옥 같았던 그때의 상황이 또다시 떠올랐다. 동시에 상대방도 자신과 비슷한 나이 때에 각기 다른 공간에서 비슷한 일을 당했다는 사실이 너무나 격하게 공감되어 오랜만에 주르륵 눈물이 흘렀다.
이를 바라보며 진도 울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인력거에서 내려 처량히 울고 있는 형원을 안아주었다.
“고생 진짜 많았다. 우리 같은 아픔이 이제는 사라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보자.”
**대련 수상 경찰서**
“병신 같은 놈들!!! 다 잡은 걸 눈앞에서 놓쳐!! 그리고도 너희가 대일본제국의 경찰이냐!! 이 멍청이들아!!”
서장은 대련 경찰을 총동원하고도 겨우 조선 놈들 두 명 못 잡아 바치는 경찰들이 한심했다. 총독이 자기 관할 내에서 관리 소홀로 테러당한 것도 경을 칠 노릇인데, 이걸 해결 못 하면 예전 같았으면 거의 자결을 해야 할 판이다.
“이런 말씀 죄송하지만, 지금쯤이면 대련은 빠져나갔다고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거냐? 만약 그랬다면 어디로 갔는지, 대책은 뭔지를 말해야 할 거 아니냐!”
“이 정도의 테러를 일으킨 거면 독립군 놈들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대련의 조센징 정보원 놈들에게 확인한 결과 이쪽에서는 전혀 내용조차 모르는 일이라 합니다. 외부 지역 독립군의 소행이라는 거죠.”
벽에 붙어 있는 지도를 가리키며 그는 설명을 이어갔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발견된 장소를 보면 동쪽 방향으로 이동할 계획인 듯 보입니다. 이걸로 보아 상해 쪽이 아닌 간도 쪽 놈들 소행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그래서! 어쩌자는 것이냐! 이쪽으로 갈 것 같습니다. 이렇게 총독님께 보고할까?”
“그 근처 각 도시의 경찰들에게 미리 연통을 해서 잡으면 큰 포상이 있을 테니 적극적으로 찾으라고 지시하겠습니다.”
“알았다. 보상은 넉넉히 준비해 둘 테니 빨리 연락해 놔라.”
**통화시 고문실**
“김좌진이 이번에 이쪽 통화시에 방문할 거란 걸 알고 있다. 날짜랑 시간만 알려준다면 네 계집년과 너의 목숨은 건들지 않겠다.”
일본군에 제거 0순위, 백야장군이 나타날 거란 정보에 그들은 이번에는 기필코 그를 잡겠다며 거품을 물고 독립군이라 의심되는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들이고 있었다.
“전···.. 진짜··· 아무것도 모릅니다··· 전···.. 독립운동을 한 적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도··· 저랑.. 아무 관련 없는 사람입니다···.”
“누굴 바보로 아는 거냐?? 너에 대한 정보는 우리가 다 들었다. 아직 살만한 모양인데, 이제 발톱도 하나뿐 안 남았다. 그다음은 손가락이다.”
“악!!!!!!!! 으악!!!!!! 살려주세요!!! 전 진짜 모릅니다!!!!”
이때 밖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탕! 탕!
“잡아라! 침입자다!”
탕! 탕! 탕!
안에 있던 경찰은 밖의 소란스러움에 놀라 다급히 총을 들고 밖으로 뛰어갔다. 고문실 안에는 둘만 남겨졌다.
“오라버니, 괜찮아요?”
“으···.. 으··· 응··· 난···. 괜찮······ 아.. 나···. 때.. 문에··· 미··· 안..”
“아니야, 난 괜찮아요. 근데 밖에 무슨 일이지?”
“········· 우리 동지···. 누가.. 왔나······”
“단장님이나 선생님이신가?”
그때 총소리가 사라지고 밖이 조용해졌다. 그리고 약 1분쯤 지난 뒤, 고문실 문이 조용히 열렸다.
“고생 많으셨어요. 이제 끝났어요. 빨리 같이 나가시죠.”
그는 현우와 독립군 활동을 함께하는 달수였다. 그는 왼쪽 팔에 총을 맞은 듯 피범벅이 되어 있었고, 그 부분을 외투로 막고 있었다.
달수가 고문실로 들어왔을 때, 현우는 안도보다 그가 당한 부상에 걱정이 앞섰다.
“위험하게···. 뭘··· 이렇··· 게.. 오셨어요..”
“걸을 수 있겠어요? 우선 여자 동지분 포박부터 풀어줄게요.”
달수는 재빠르게 밧줄을 풀었다. 그리고 현우에게 다가가 다시 포박을 풀면서 눈물을 흘렸다.
“진짜 고생 많았습니다. 동지의 이런, 나라를 위한 희생이 이 나라의 독립을 앞당겨 주리라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형님···.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거죠..”
묶여 있는 거 다 풀고 그를 부축하며 슬쩍 보고 물었다.
“근데, 혹시 백야 장군님은 언제 오시나요?”
이 말에 현우의 눈빛이 변했다.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한 그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현우는 잠깐 망설이다가 재빠르게 달수의 총을 낚아채려 했다.
탕!
고요했던 실내에 총소리가 강렬하게 울려 퍼졌다.
[관련 용어 사전]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1923년 9월)
1923년 9월 1일, 일본 관동 지방에서 규모 7.9의 대지진이 발생했다. 도쿄와 요코하마를 비롯한 주요 도시가 초토화되고 사회 혼란이 극심해진 가운데, 일본 정부와 극우 세력은 "조선인이 방화와 폭동을 일으켰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이에 따라 일본 경찰과 자경단, 민병대 등이 조선인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했다. 공식적인 피해자는 6천 명 이상으로 추정되며, 일부 일본 사회주의자들과 중국인들도 희생되었다. 일본 정부는 사건을 은폐하려 했으며, 학살 가담자들은 대부분 처벌받지 않았다.
*출처: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정보시스템, 『관동대지진과 조선인 학살』(김종수, 2017)
간도 참변 (1920년 10월)
간도 참변은 1920년 청산리 대첩에서 패한 일본군이 보복으로 만주 간도 지역 조선인들을 무차별 학살한 사건이다. 일본군은 독립군을 소탕한다는 명목으로 조선인 마을을 습격해 수천 명을 살해하고, 가옥과 학교, 교회를 불태우며 마을을 초토화시켰다. 생존자들은 산속으로 피신하거나 소련으로 이주했다. 이 참변으로 조선인 사회는 큰 타격을 입었으며, 이후 독립군들은 조직을 재정비해 항일 무장투쟁을 이어갔다.
*출처: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공훈록,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정보시스템, 『청산리 전투와 간도 참변』(조동걸,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