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록]1946년, 한국이 일본을 점령했다

5화 - 밀정

by 팬터피

**통화시(서간도 지역) 고문실**

달수는 재빠르게 여자 동지인 수영의 밧줄을 풀었다. 그리고 현우에게 다가가 다시 포박을 풀면서 눈물을 흘렸다.


“동지... 진짜 고생 많았어요... 동지의 이런 나라를 위한 희생이 나라의 독립을 앞당겨 주리라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형님···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거죠···”


묶여 있던 것을 다 풀고 그를 부축하며 슬쩍 보고 물었다.


“근데, 혹시 백야 장군님은 언제 오시나요?”


이 말에 현우의 눈빛이 변했다.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한 그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현우는 잠깐 망설이다가 재빠르게 달수의 총을 낚아채려 했다.


탕!


고요했던 실내에 총소리가 처량하게 울려 퍼졌다. 달수는 현우의 반응이 이상하다고 눈치를 채고 그가 총을 뺏으려 하자 바로 방아쇠를 당겼던 것이다.


“아, 젠장. 아··· 아이씨······죽으면 안 되는데··· 하···.”


그는 순간적으로 올라오는 화를 참지 못하고 혼자 탄식을 되뇌었다. 이 모습을 보고 있던 수영은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당황스럽고 겁에 질려 식은땀이 났다.


“동지! 일어나 봐요. 아이씨, 그 새끼 언제 오냐고! 야, 일어나 보라고.”


그가 현우의 멱살을 잡고 흔들며 뺨을 때리며 깨우려 하는데, 문 쪽에서 구둣발 소리가 나더니 죽은 줄만 알았던 아까 그 일본 경감이 들어왔다.


밖에서 있었던 총격전은 현우를 안심시켜 원하는 답을 얻으려는 속임수였던 것이었다.


“무슨 총소리냐?”


“죄송합니다. 이 녀석이 눈치를 채는 바람에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런 벌레 같은 놈. 이거 하나 제대로 처리를 못 해서 일을 망쳐? 다리 같은 곳을 쐈어야지, 죽이면 어쩌라고!”


“워낙 급작스레 벌어진 일이라 경황이 없었습니다. 진짜 이번 한 번만 선처 부탁드립니다.”


“한심하기 짝이 없는 조선 놈들! 저년이나 그냥 쏴라!”


달수는 무릎을 꿇고 싹싹 빌며 애걸복걸하다 그의 지시를 받고 수영을 노려보며 총을 겨눴다. 총구가 자신을 향하자 수영은 겁에 질려 오줌을 지렸다. 그 모습을 본 경감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역시 네놈들은 미개하구나. 죽음 앞에 다다르니 좀 겁이 나나 보지?”


“제가 장군님, 아니, 그 사람, 아니 아니, 그놈이 언제 어디로 오는지 알고 있습니다. 다 말씀드릴 테니 한 번만 살려주십쇼.”


수영이 벌벌 떨며 싹싹 빌었다. 죽을 수도 있단 공포가 크게 밀려온 모양이었다.


“오, 네년도 안단 말이지? 그래. 말만 해주면 내가 살려주마. 예쁘장해서 실은 처음부터 네년이 아주 맘에 들었다. 시간과 장소만 말해다오. 그리하면 목숨도 살려주고 내 첩으로 평생 편안하게 살게 해 주마.”


“7월 25일······. 11시 반, 시내의 챠샤오빠오라는 식당에서 다 같이 만나기로 했습니다···. 이때.. 이 지역의··· 신흥학우단 출신 사람들과 또 다른 독립군들까지 같이···.. 접선하기로 했습니다. 알려드렸으니 제발 목숨만 살려주십쇼··· 제발..”


수영은 겁에 질려 연신 눈물을 흘렸다. 일본인 경감은 담배에 불을 붙였다. 불이 붙은 담배를 수영에게 권했고, 그녀가 한 모금 마시자 냅다 그녀의 입술을 강제로 추행했다. 수영은 놀라서 아무 반항도 하지 못하는 사이 그는 더욱 격렬히 혀를 놀렸고, 봉긋한 가슴과 엉덩이 등 온몸 곳곳을 더듬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차가운 총소리가 번졌고, 수영이 배에 피를 흘리며 처량하게 쓰러졌다.


“네년은 혀 놀림이 별로구나. 야. 여기 청소 잘해 놔라. 냄새가···”


“네! 알겠습니다.”


그는 달수를 남기고 사무실로 향하며 씩 웃었다. 드디어 조선 놈들이 영웅처럼 생각하는, 우리 군에겐 치욕을 남겼던 김좌진인지 뭔지를 잡을 수 있다. 이것만 성공하면 특진을 할 거고, 그다음은 여기 서장 자리는 노려봐도 되지 않을까란 기대에 부풀어 기분이 좋아졌다.


반면, 달수는 골방에서 자신을 동지라 믿었던 두 동포의 시신을 바라보며 담배를 물었다. 표정이 워낙 거만하고 차가워서 아까 일본 순사에게 쩔쩔매던 이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새끼들, 될 걸 꿈꿔야지. 독립? 웃기고 있네. 미련한 놈들. 너희는 미련하고 무지해서 이렇게 된 거다. 잘들 가시게.”


그렇게 이곳을 정리하고 있는데, 문이 벌컥 열리더니 아까 그 경감이 무언가를 들고 들어왔다.


“야! 이 전보 한 번 읽어 봐라.”


“앗. 네 네. 알겠습니다.”


그는 순사가 멀리 갈 때까지 머리를 조아렸다. 그리고 그가 안 보일 때쯤, 전보 내용을 훑어보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그 서신은 대련에서 온 것이었다. 총독을 암살하려 했던 놈들이 이 근방을 지나갈 확률이 크니 수사에 유의하라는 내용이었다.


김좌진 장군도 잡고, 총독 암살시도범도 처리한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대우와 큰 보상금이 떨어지게 될 것이란 생각에 절로 흥분이 됐다.


‘근데, 이놈들을 어찌 찾지?’





**통화 시내 작은 숙소**


형원과 진의 그 밤 무용담이 워낙 유명해지고, 간도 전 지역에 수배령이 떨어진 덕에 일본 군과 경찰은 그들을 잡기 위해 더욱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 덕에 그들은 뭐 하나 맘 편히 먹을 수도, 편한 숙소에서 따뜻한 바닥에 누워 두 다리 쭉 뻗고 잘 수도 없었다. 그렇게 여차저차 한 달이 넘는 여정을 이어갔고, 겨우 목적지인, 이곳 간도 지방의 대도시인, 통화시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그들은 이 도시에서 독립군에 합류하고자 조심히 방법을 찾고 있었다. 그러나 독립군과 연결될 수 있는 경로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독립군들은 이 지역 일본군인 관동군에게 발각되지 않기 위해 철저한 보안을 유지하였기에 마음만 먹는다고 쉽게 연결고리가 생기지 않았다.


특히 대부분 점조직으로 되어 있어서 독립군 한 명을 소개받아야 합류가 가능한 구조였기에 형원과 진은 그들과 어찌 접점을 찾아야 할지 고민이었다.


“막막하다. 뭐부터 시작해야 할지.”


진은 식당에서 포장해 온 만두를 한 점 먹자마자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러게. 신흥학우단이 이 근방에 있었다는 거 말고는 아무런 정보가 없으니···”


“그래도 잘 찾아보면 기회가 오겠지. 조급해하지 말고 잘 알아보자.”


“그래. 그러자. 근데 쫓기는 입장에서 돈도 없으니··· 누가 알아볼까 겁나서 아무 곳에서나 일을 할 수도 없고···”


진은 왕만두 한 점을 입을 크게 벌려 한번에 넣더니 우물거리며 말했다


“그럼 식당 설거지라도 알아보자. 이 만두, 요 아래 큰 식당에서 사 온 건데 가게가 크고 산만하더라고. 아무래도 사람이 많으면 눈에 덜 띄지 않을까?”


“그럼 넌 거기로 가. 둘이 같이 다니면 누군가 알아볼 수 있으니 난 다른 식당을 알아볼게.”





**통화 시내 만두가게**


“어서 오세요. 자리에 있는 쪽지에 드실 거 적으시고 불러주세요.”


식당은 2층으로 되어 있었고, 1층은 넓었으나 2층은 계단으로 올라가면 각 4면의 끝쪽만 자리가 있는 구조였다. 2층은 1층 어디나 다 보이는 뻥 뚫린 구조였고, 2층 손님이 1층에 있는 종업원을 부르면, 1층에서 돌아다니던 직원들이 바로 소쿠리를 들고 가서 주문을 받고 받는 방식이라 뭔가 더 분주하고 산만해 보였다.


주로 만두들이 주 메뉴지만, 간단한 볶음밥 및 국수류도 판매하는 식당이었고 꽤나 큰 공간에 점심시간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이 지역 사람들이 다 여기와 있는 듯했다.


“아, 저는 좀 전에 여기서 만두를 포장해 간 사람인데요. 만두가 너무 맛있어서 여기서 일을 할 수 있을까 해서 여쭤보러 왔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이쪽으로 따라오세요.”


종업원은 진을 가게 안쪽 주방으로 안내했다.


“근데 혹시 조선분이세요?”


“네, 맞습니다.”


“저도 조선 사람입니다. 여기 사장님도 고향이 조선이라 이 식당에 동포분들이 많이 계세요.”


“오, 고향의 맛이 느껴졌는데, 역시!”


“호호호, 그러셨어요? 사장님이 엄청 뿌듯해하시겠네요.”


“뭐가 내가 뿌듯해한다는 거야?”


주방 문을 열자 사장이 바쁘게 만두를 빚으며 둘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근데 이분은 어인 일로?”


“아, 여기서 일하고 싶다 하셔서요.”


“안녕하세요, 사장님. 이 식당에서 같이 일하고 싶은데 혹시 자리가 없을까요? 설거지도 좋습니다.”


“이렇게 인물이 훤칠하신 분은 설거지보단 앞에서 손님들 주문받는 게 더 나으시겠어~.”


“감사합니다. 과찬이십니다. 근데 제가 중국어가 능숙하지 않아서요. 주방에서 힘쓰는 일 시켜주시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어? 아까 들어오셨을 때 말씀 잘하시던데요?”


같이 들어왔던 여직원의 말에 진은 약간 당황했지만,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변명을 했다.


“감사합니다. 근데 그냥 딱 몇 마디만 하는 수준입니다. 하하.”


“뭐, 정 그렇다면 내일부터 주방에 와서 일해줘요. 여기 만두 좀 싸 드릴 테니 좀 가져가시고.”


“오~ 감사합니다! 여기 만두 너무 맛있더라고요. 고향에서 먹던 맛 그대로던데요?”


“15년 장사하면서 들은 말 중 제일 뿌듯하네요. 하하하.”


그때 일본 순사 둘이 주방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무언가를 찾는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진은 그들을 보자마자 긴장했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무슨 일인 거지? 꼬리를 밟힌 건가? 그는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자연스럽게 외투 안쪽에 넣어둔 총에 손을 가져갔다.




[관련 용어 사전]


신흥학우단 (1911년 창설)


신흥학우단은 1911년 만주 지역에서 설립된 독립운동 교육기관으로, 한국 독립운동을 위한 군사 교육과 지식인 양성을 목표로 했다. 이 단체는 1919년 신흥무관학교로 발전하여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했다. 신흥학우단은 한국광복군과 의열단 등 여러 무장 독립운동 조직에 핵심 인력을 공급하며,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싸울 독립군을 길러냈다.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은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에서 큰 활약을 펼쳤으며, 이후에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무장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출처: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정보시스템,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공훈록, 『신흥무관학교와 독립운동』(이원규,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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