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록]1946년, 한국이 일본을 점령했다

7화 - 백야

by 팬터피

**외진 골목길**

어둡고 조용한 늦은 저녁 시간, 골목길에서 달수가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다. 얼마 후, 고문실에서 수영을 총으로 쏜 츠즈키 경감이 그에게 다가왔다.


“무슨 일이길래 감히 오라 가라 인가?”


“죄송합니다. 요즘 사건이 많다 보니 의심받을 수도 있을 것 같아 서에 방문하는 건 이제 좀 조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큰일 앞두고 그게 맞겠다. 아무튼 용건부터 말해 보거라.”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경감님. 실은 오늘 그 대련 폭파범을 발견한 것 같습니다.”


경감이 별 관심 없는 척하며 다른 곳을 보고 있다가 ‘대련 폭파범’이란 단어에 눈이 휘둥그레져서 달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디서? 지금 이 동네에 와 있느냐?”


“네, 맞습니다. 오늘 제가 일하는 식당에 한 놈이 와서 설거지 일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근데 어찌 그놈이라 확신하지?”


달수는 자신을 무시하는 그에게 이 중요한 사실을 바로 말해 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갑자기 걷기 시작했고, 그를 따라 경감도 옆을 맞춰 걸었다. 달수가 생각을 하는 듯 뜸을 들이자 츠즈키는 갑자기 멈춰 서서 성을 냈다.


“지금 나랑 장난을 하는 게냐? 왜 말을 하다 마는 것이냐?”


“아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제가 감히 경감님을요. 실은 아직 제 나라를 걸고 확신할 수 있다 할 순 없지만, 여러 가지 정황상 그자가 맞는 것 같습니다.”


“너에게 걸고 자시고 할 나라가 남아 있느냐?”


경감이 빈정대자 달수는 짜증이 났다.


'네 놈이 언제까지 날 무시할 수 있는지 보자.'


그냥 태어나길 일본인으로 태어난 것 말고는 별로 대단하지 않은 놈이··· 자신이 작전도 다 짜고, 목숨 걸고 기를 써서 물어다 준 먹잇감들을 아무런 힘들이지 않고 그냥 받아먹기만 하는 놈이··· 항상 무시하는 게 너무나 화가 났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아니면, 그냥 몰래 여기서 쏴 죽일까?'


그런 충동이 살짝 들기도 했지만 이 놈만큼 멍청한 놈도 서에 없기에 그냥 참았다.


“무슨 말씀을 그렇게 서운하게 하십니까? 저는 엄연히 대일본제국의 신민입니다.”


“그래, 쓸데없는 말 그만하고 말해 보거라.”


“실은 이 지역에 있는 웬만한 조선 출신들은 다 알고 있는데, 우선 처음 보는 놈이라 유심히 지켜봤습니다. 근데 놈이 중국어를 곧잘 하는 것 같은데 굳이 콕 집어 설거지일을 시켜 달라는 겁니다. 사장이 인물이 좋으니 주문받는 일을 하라 했는데도 굳이 자기는 중국어를 못한다면서 말이죠.”


“그게 뭐가 이상하다는 거지?”


“제가 주방 일을 오래 해봐서 아는데, 설거지가 더 힘들고 돈도 적어 어린 친구들은 잘 안 하려 하거든요. 그리고, 또 하나가 있는데, 오늘 경무과에 계신 경감님 동료 한 분이 식당에 오셨습니다.”


“누구?”


“제가 성함은 못 들어서··· 근데 슌지 경감이 얼마 전에 이 식당에서 사례금을 좀 받으셨는데요. 뭐 그런저런 명목으로 그분도 받고 싶다고 오셨습니다.”


츠즈키는 한심한 표정을 지으며 혀를 찼다.


“찌질한 놈들, 그런 푼돈이나 챙기려고···”


“아무튼 주방에 들어오셨는데, 그놈이 경계를 하는 게 보이더라고요. 뭔가 구린 게 있지 않고서야··· 그렇게까지 반응하지 않을 텐데 말이죠. 뭐, 일반인들에게는 안 보이겠지만, 워낙 이런 일을 오래 하다 보니 쫓기는 상황이구나, 하는 게 저한테는 보이거든요.”


오늘따라 좀 많이 들뜨고 건방진 달수의 모습이 츠즈키는 많이 거슬렸다. 매번 바닥에 머리가 닿을 것만 같이 조아리지만, 말하는 모습을 보면 자기가 엄청 대단한 사람인 양 생색내는 모습이 참으로 없어 보였다.


벌레 같은 녀석. 큰 건을 기다리는 중이니 며칠만 그냥 놔두자. 하지만 그 이후엔 이 놈부터 쳐내고 다른 놈을 알아보리라.라고 경감은 생각했다.


“음··· 그런 게 잘 보이긴 하지. 근데 어떤 행동을 하던가?”


“공손한 척 두 손을 가슴 쪽으로 모으더라고요.”


“그게 왜? 좀 본론부터 말하면 안 되나?”


“죄송합니다. 외투 안쪽의 총 쪽으로 손을 가져가는 느낌이었습니다.”


“음··· 듣고 보니 의심스럽구만. 근데 혼자 왔나? 다른 사람은 없었고?”


“아니요, 한 명뿐이었습니다. 근데 제가 그놈 뒤를 밟아보니, 숙소에 남자 두 명이 머물고 있는 듯합니다. 거기 일하는 직원들에게 들은 겁니다.”


이야기를 다 듣고 츠즈키는 한참 고민을 했다. 그리고 달수에게 속삭였다.


“우선 그놈 잘 감시하게. 그리고 오늘 숙소로 전화를 해서 그놈들이 맞는지 떠보게. 가능하겠나?”


“네, 저도 오늘 그럴까 생각 중이었습니다.”


“그래. 어디 소속인지, 윗선이 누구인지도 잘 파악하고.”


“그냥 직접 만나볼까 하는데 어떻습니까?”


너무 서두르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에 츠즈키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만나서 뭘 하려고?”


“유선상으로는 다 이야기하려 하지 않을 겁니다. 의심을 할 테니까요. 우선 만나서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내용을 이야기하다 보면 그놈들이 윗선에 대해 다 불지 않겠습니까? 그럼 그놈들 체포하는 것만 남게 되는 겁니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급한 감이 있지만, 뭐든 직접 부딪쳐야 답이 나오는 법이다.


“그럼 그렇게 해라. 단, 다른 사람들에게는 절대 비밀로 유지하고. 너희 속담에 ‘낮말은 쥐가 듣고 밤말은 새가 듣는다’지? 말이 샐 수 있으니 절대 누구에게도 말해서는 안 되네.”


달수는 틀린 속담을 당당하게 말하는 멍청한 경감을 조소할 뻔했지만, 다행히 순간 정신을 차리고 꾹 참았다.

멍청한 놈이 욕심만 많아서, 다른 곳에 말도 못 하게 하고, 자기가 그 공을 또 혼자 꿀꺽하려고. ‘이번만큼은 네 놈 생각처럼 다 되진 않을 것이다.’라고 달수는 혼자 생각했다.





**달수의 집**


달수는 텅 빈 집에 들어섰다. 방 한 칸 달랑 있는 좁은 집이지만, 집 안에 아무것도 없어서 오히려 넓어 보인다. 헛헛한 방 안에는 탁자에 전화기 하나, 그리고 잘 자란 난 하나가 달랑 놓여 있다.


“아빠 왔다. 잘 지냈니?”


달수가 난의 먼지를 수건으로 조심히 닦으며 화분에 대고 혼잣말을 했다.


“오늘 아주 중요한 날이 될 거야. 아주 큰돈을 벌게 될 기회.”


“그래. 어제 말했던 그놈들을 오늘 찾았지 뭐니. 좀 있다가 전화를 해보려고.”


“응. 그래. 맞아. 그게 걱정이야. 그놈들이 분명 경계할 텐데, 그놈들이 자신이 테러범이라는 걸 어찌 실토하게 할지 말이지.”


“우선 내 소속과 신분을 밝히고···. 다 알고 전화하는 척하면서 우리의 임무를 같이 도모하자고 하면 신뢰가 쌓일 거라고? 좋은 생각이야.”


“오, 그래! 왜 그 생각을 못했지? 김좌진 그놈이 올 때 놈들에게 보여주면 내가 독립군이란 걸 완전히 믿겠구나. 그래, 그래. 넌 정말 천재구나! 아주 기특하다, 기특해.”


그는 난을 보며 혼자 대화를 끝낸 뒤, 그 옆에 있는 수화기를 들었다.


“네, 수고가 많으십니다. 거기 여관이죠? 213호에 사는 분들과 통화를 했으면 하는데요. 네네. 기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통화시의 작은 숙소**


형원과 진이 대화 중일 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숙소 직원이었다.


“안녕하세요. 전화가 와서요. 빨리 내려오세요.”


“혹시 전화 올 곳이 있어?”


“아니 없는데, 뭐지? 함정인가?”


둘은 의아해하며 주변을 살피며 조심히 내려갔다. 다행히 별다른 이상한 점은 없었고, 전화만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둘은 전화를 앞에 두고 눈빛을 교환했다. 누가 받아야 하나. 무슨 일일까? 소리가 새어 들어갈까 말을 하진 못했지만, 손짓을 통해 둘 중 말주변이 나은 진이 전화를 받기로 했다.


그는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하고 수화기를 들었다.


“안녕하세요, 전화받았습니다.”


“안녕하십니까, 혹시 주변에 누구 듣는 사람은 없나요?”


“네, 조용히 받고 있습니다. 혹시 누구십니까?”


“저는 다물단의 김달수라는 사람입니다. 혹시 대련에서 오신 분 맞으십니까?”


“네? 어디시라고요?”


“다물단이라고, 신흥무관학교 졸업생들이 모여 있는 단체입니다.”


이 말에 진은 물론이고 같이 듣고 있던 형원까지 깜짝 놀랐다.


그토록 찾아 헤맸던 독립군과 연결고리가 생겼다는 기쁨과 우리가 누구인지, 어디 묵는지를 어찌 아는지에 대한 궁금함에 그들은 당황했고, 상당히 혼란스러웠다.


“네··· 고생이 많으십니다.. 근데 대련은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전화를 잘못 거신 듯합니다.”


“아, 교육을 잘 받으셨네요. 그럼요, 그럼요. 이렇게 쉽게 정체를 밝히시면 안 됩니다.”


“혹시 무슨 용건으로 전화 주셨을까요?”


“다름이 아니오라, 저희 주 임무가 밀정 및 친일파 척결에 있습니다. 아시겠지만, 그놈들이 겁을 먹고 그 짓을 안 해야 우리나라를 되찾는 게 빨라질 수 있지 않겠습니까?”


“죄송하지만, 저희는 이런 일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입니다. 이만 전화 끊겠습니다.”


진이 전화를 끊으려 하는데 옆에서 듣던 형원이 재빨리 전화를 낚아챘다. 그리고 진에게 손짓으로 조용히 하라고 부탁했다.


“네, 저희는 잘 모르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우선 말씀해 주세요. 들어보겠습니다.”


“아, 다른 한 분도 같이 계셨군요. 영광입니다. 이렇게 대단한 동지분들의 목소리를 듣다니. 아무튼 저는 이 지역의 밀정을 처단하기 위해 왔고, 증거를 수집 중입니다.”


“네, 근데 전화를 주신 이유가···”


“이 일을 진행하는 데 참여해 주셨으면 합니다. 저희 다물단은 선생님들이 대련에서 행하신 일에 너무 감명을 받았습니다. 이번 일을 함께 도모하시고 차후 저희와 함께하신다면 좋을 것 같아서 이렇게 실례를 무릅쓰고 연락드렸습니다.”


형원은 심장이 두근대고 있음을 느꼈다. 오랫동안 찾아 헤맸던 독립군과 함께할 수 있음은 물론 배신자를 척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이다.


그때 진이 손짓으로 전화를 끊으라고 계속 재촉했다. 형원은 아쉬움이 컸지만 위험한 상황임은 틀리지 않았기에 전화를 끊으려 했다.


“죄송하지만,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저희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전화를 잘못 거신 듯합니다. 이만 끊겠습니다.”


“아, 잠시만요. 그럼 이건 어떻습니까? 조만간 백야 김좌진 장군님께서 이곳을 방문 예정이십니다. 그때 백야 장군님이 오시는 걸 직접 눈앞에서 보시면 저를 믿으시겠죠? 그 후에 저희 모임에 바로 합류하시죠. 아시겠지만, 장군님은 항상 전투의 최전선에 서 계신 분입니다. 이곳에서도 그분의 계획은 놀라울 겁니다.”


“백야 장군님께서요? 흠흠. 그럼 장소와 시간을 알려주시면 참고하겠습니다. 그렇다고 저희가 그런 사람이라는 건 아닙니다. 백야 장군님은 대한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존경하는 분이니까요.”


“네, 그럼요, 그럼요. 7월 25일······. 11시 반 시내의 챠샤오빠오라는 식당입니다. 이날 저희는 회동을 가지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참고로 여기 사장 놈이 밀정입니다. 조심하십쇼. 그에게 속아 독립군 청년 두 명이 현지 경찰에게 잡혀간 듯합니다. “


둘은 약속 장소 이름을 듣자마자 황당해했다. 진이 내일부터 일을 하기로 한 그곳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만두까지 챙겨주고 사람 좋아 보이는 그 사람이 배신자였다니..


“이날 모여 이 배신자를 어찌 처벌할지도 논의할 것입니다. 어찌 됐든 백야 장군님께서 두 분을 뵙고 싶어 하시니 그날 같이 자리를 하시는 건 어떤지 해서 연락드렸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서로만 바라보고 있던 진과 형원은 큰 폭풍 앞에 자신들이 서있음을 여실히 직감할 수 있었다.




[관련 용어 사전]


다물단 (1910년대~1920년대)


일제강점기 조선과 만주 지역에서 활동한 항일 비밀결사 조직으로, 주로 일본의 밀정(密偵) 색출 및 처단에 집중한 독립운동 단체였다. ‘다물(多勿)’은 고구려가 빼앗긴 영토를 되찾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이들은 독립운동 조직의 기밀 유지와 친일파 응징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다물단은 일제의 탄압으로 인해 내부 정보가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철저한 보안 체계를 유지했으며, 일본 경찰과 총독부의 앞잡이가 된 자들을 암살하거나 경고하는 방식으로 활동했다. 또한, 조선 내 주요 독립운동 단체들과 협력하며 정보 전달 및 작전 수행에 기여했다. 이후 일본의 집중적인 탄압으로 조직은 해체되었으나, 일부 단원들은 한국광복군과 의열단 등으로 흡수되어 항일 투쟁을 계속 이어나갔다.


*출처: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정보시스템,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공훈록, 『항일비밀결사 다물단의 활동』(김경수, 2018), 『독립운동과 밀정』(정운현,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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