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록]1946년, 한국이 일본을 점령했다

9화 - 의심

by 팬터피

**달수의 집**

새벽 5시, 대부분이 한창 깊은 잠에 들어 있는 조용한 시각에 시끄러운 전화벨소리가 정적을 깼다. 달수는 부스럭거리며 주섬주섬 전화기로 다가갔다.


“젠장, 아침부터 너무하네. 잡놈들.”


수화기를 집기 전 그는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이 시간에 전화 올 사람이 뻔한데, 그들에게 괜한 꼬투리를 잡히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여보세요, 김달수입니다.”


“전화 빨리 안 받을래!”


츠즈키였다. 전화를 받자마자 소리를 지르는 통에 너무나 짜증이 났다.


“죄송하지만 누구십니까?”


“전화 올 곳이 나 말고 더 있더냐?”


“아닙니다. 경감님이시군요. 말씀하십시오.”


달수도 오늘은 다른 날과 달리 조금 투닥거렸다. 아침 일찍부터 전화해 소리 지르는 통에 짜증이 많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켄타 경감이 어젯밤 실종됐다. 혹시 관련해서 뭐 들은 게 없는가?”


“아뇨, 들은 바가 없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아차 싶었다. 독립군의 계획들을 일본 경찰에게 미리 알려주는 게 자신의 임무인데, 짜증이 난 나머지 너무 쉽게 모른다고 내뱉었기 때문이다.


“뭐라고? 이 멍청한 놈. 그걸 말이라고 하냐? 모르면 다야? 그럼 지금부터라도 알아내야 할 거 아니야!”


“죄송합니다. 빨리 동태 파악해 보겠습니다.”


“이래서 네 놈 믿고 맘 편히 어디 돌아다닐 수 있겠냐? 켄타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으면 네 놈도 똑같은 꼴을 볼 줄 알아라.”


“주의하겠습니다. 면목 없습니다. 근데 그분 정보에 대해 좀 받을 수 있겠습니까? 인상착의라든지···”


“어제 네가 식당에서 봤다던 그 친구다.”


이 말을 듣는 순간, 그의 머릿속엔 다른 작전이 급히 그려졌다.


“경감님, 그분 실종 관련해서는 제가 잘 알아보겠습니다. 근데 제가 드리고 싶은 부탁이 있습니다.”


“지금 네 놈이 부탁을 할 상황인가? 염치가 없단 생각 안 드나?”


“중요한 거라 한 번만 들어주십시오. 만두가게 식당 주인은 경감님도 아시다시피 저희가 감시 중인 사람입니다. 그래서 보고 드렸던 것처럼 어제 대련 테러범들과 통화할 때 그 사장 놈이 밀정이니 믿지 말고 조심하라 당부했습니다.”


“그건 어제 들었다. 그래서 용건이 뭔가?”


“그 주인 놈을 최대한 빨리 체포하시는 건 어떠실지요? 그리고 빨리 내보내는 겁니다. 그럼 그 대련 놈들이 사장에 대해 의심할 테니까요.”


경감은 몇 초간 말이 없었다. 이에 대해 머릿속으로 정리를 하는 듯했다.


“체포를 하는데 왜 의심을 하지?”


“요점은 바로 놓아주는 데 있는 겁니다. 사장을 체포해 가시면 제가 그놈들에게 저건 눈속임이고 바로 풀려날 거라고 말할 겁니다.”


“음···”


“아무튼 그놈에게 궁금하셨던 거 취조도 좀 하시면, 혹시 뭐라도 나올 수 있고요. 그리고 지금 좀 조용한데, 뭔가 꿈틀거릴 꺼리가 될 수도 있고요. 그러는 동안 대련 놈은 제가 잘 건드려보겠습니다.”


“뭐, 나쁘지 않은 방법 같네만, 무슨 명분으로 그를 체포하지?”


“마침 그가 집으로 가는 방향이 그쪽이고, 장사 끝나면 늦은 밤 시간에 그 부근을 지나가니 대충 제보받았다고 하시면 될 듯합니다. 어제 주기 싫은 돈을 건넨 것도 있고요.”


“알았다. 그렇게 해볼 테니 너도 어떻게든 켄타의 행방을 찾아내라.”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그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하늘도 나를 돕고 있는 것인가? 어쩜 이렇게 딱 맞게 판이 짜여지지? 그나저나 켄타를 어찌 찾아야 하나. 왜 내 쪽에 아무런 연통이 없었을까? 혹시 그들이 눈치챈 건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에 그는 다시 잠에 들 수 없었다.




**챠샤오빠오**


관동군이 사장을 포박하였으나 그는 끝까지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그는 일본 경찰 무리에 잠시만 시간을 달라 양해했고, 자신을 잘 따르는 종업원 여자아이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예진아, 여기 문을 닫고 싶지만 손님들이 성화일 테니 우선 요리는 아주머니들께 맡기고, 재료 준비나 장 보는 것들만 예전 내가 알려준 대로 좀 하고 있거라. 별거 없을 테니 일찍 돌아올 거다. 경감님, 이제 가시죠.”


그렇게 말하고 사장은 진 쪽을 바라보며 씁쓸한 미소를 남겼다. 이후 일본군들은 사장을 데리고 식당을 빠져나갔고, 진은 이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식당 밖으로 끌려가는 사장을 한참 멍하니 보고 있는 동안 그의 뒤로 누군가 조용히 다가왔다. 그리고 그와 거의 반 폭도 되지 않을 만큼 가까워졌을 때, 그 자가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안녕하세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제가 어제 전화드린 김달수입니다.”


그들은 같이 설거지를 하며 말을 이어갔다.


“왜 제게 이러시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네 네. 그럼 제 말만 들어보세요. 저들은 사장을 체포한 게 아닙니다.”


“그럼 뭐죠?”


“상황이 긴박하니 정보원에게 이 사건에 대해 아는 것을 급히 묻고픈데, 대놓고 와서 물으면 다들 그가 배신자인걸 눈치챌 테니, 이렇게 체포하는 척 연기하는 겁니다.”


진은 접시를 닦다가 달수를 바라보며 재차 물었다.


“그러니까 경찰이 사장님을 불러서 이 사건의 자초지종만 묻고 내보낼 거란 이야기신 건가요?”


“맞습니다. 아시겠지만, 자신의 식구가 실종된 사건인데 죄가 있든 없든 우선 고문을 해서라도 자백을 받아내는 게 평소 일본 놈들의 모습입니다. 근데 만약 말짱히 그대로 나온다? 그럼 뭔가가 있단 거겠죠.”


놀라운 그의 말에 진은 더 말을 섞지 않고 일에만 몰두했다. 자신의 생각과는 다른 반응을 보이자 당황한 달수는 안달이 나서 계속 말을 걸었다.


“제가 오랫동안 그 자를 지켜봤습니다. 가까이 관찰하기 위해 이곳에 들어왔고요. 혹시 동지님도 저랑 같은 이유로 오신 건가요?”


“아닙니다. 저는 돈이 없어서, 굶지 않으려고 온 것뿐입니다. 그리고 저는 선생님께서 왜 이런 말씀을 제게 해주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우선은 조심해야 하는 상황이므로 진은 고민 끝에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의 조심스러운 태도에 달수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네, 우선은 조심하셔야 하는 상황이시니 이해합니다. 뭐, 아무튼 사장님 조사받고 나오면 다시 이야기하시죠.”


“두 분이 금세 많이 친해지셨나 보네요~ 무슨 이야기들을 그렇게 진지하게 나누세요?”


지나가던 예진이 방긋 웃으며 말을 걸었다.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던 달수는 당황하며 말을 얼버무렸다.


“그냥 사장님 걱정이 돼서. 좋으신 분인데··· 별일 없으셔야 할 텐데...”


“그러게요. 이게 뭔 일이에요··· 빨리 나오셔야 할 텐데 걱정이네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금방 나오실 겁니다.”


“그걸 어찌 아세요?”


달수는 자신이 너무 확신 있게 말한 게 티가 난 건 아닌지 조금 걱정했다. 하지만 ‘누가 이런 멋진 계획을 상상이나 할까?’라고 스스로 대견해했다.


“아니, 우리 사장님이 어디 이런 일에 연루되실 분인가? 조금만 이야기해 보면 오해가 풀리겠지~”


“네..그쵸. 근데 일본 놈들이 워낙 상식 밖이고 좀 잔인해야죠···. 아무래도 점심시간 이후에 서에 한번 다녀와야겠어요.”


그녀의 말에 달수는 조용히 속삭였다.


“그전에 오실 수도···”


“네? 뭐라고 하셨어요?”


“아니야. 그냥 혼잣말. 난 담배 좀 피고 올게~”


그렇게 쌩하고 달수는 자리를 벗어났고 자리에는 진과 예진만 남게 됐다.


“일은 할 만하세요?”


첫날부터 어수선한 분위기인데도 불구하고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는 진을 보며 예진은 고마움을 느꼈다.


“네, 힘쓰는 일은 자신 있어서요.”


“설거지가 힘쓰는 일인 줄 오늘 처음 알았네요.”


“하하하. 아무튼 이런 일들 잘합니다. 걱정 마시고, 부탁할 거 있으면 언제든 불러주세요.”


“그렇다면··· 점심시간 이후에 같이 경찰서 가주실 수 있으실까요?”


“아··· 그게··· 음..”


진은 ‘경찰서’라는 단어에 크게 당황했다. 무조건 안 간다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경찰서에 가기엔 너무 위험한 상황이었다.


“혹시 불편하시면 저 혼자 가도 됩니다.”


“아, 아닙니다. 경찰서라고 하면 그냥 좀 무서워서요.. 하하.”


“아, 아무래도 좀 그렇죠? 그럼 뭐, 저 혼자 다녀올게요.”


“저랑 같이 가시죠. 여자분 혼자 가기 좀 무서운 곳이잖아요···”


“오! 정말요~ 감사합니다! 실은 혼자가기 조금 무서워서.. 그럼 이따 점심 정리하고 같이 가요.”


“네네. 빨리 준비할게요.”


막상 간다고는 했지만, 벌써부터 이따 갈 일이 걱정된 진은 접시를 닦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호랑이굴에 스스로 들어가는 꼴이라니···.




[관련 용어 사전]


관동군 (關東軍, 1906~1945)


일본 제국이 1906년 만주 지역에 주둔시키며 조직한 군대로, 이후 일본의 만주 침략과 중국 본토 진출의 핵심 전력이 되었다.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켜 만주국을 세우는 데 앞장섰으며, 이후 태평양전쟁에서 일본 육군의 주력 부대 중 하나로 활동했다.


특히 단순한 군사 조직을 넘어, 헌병 경찰과 같이 만주 지역에서 일본의 식민 지배를 유지하는 핵심 역할을 했고, 항일 세력 탄압, 조선인 강제 노역, 사상 검열, 민간인 학살 등의 탄압을 공동으로 진행했다. 또한, 관동군 예하 731부대는 생체실험을 자행하며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전쟁 범죄를 저질렀다. 1945년, 소련군의 공세로 인해 붕괴되었고, 일부 장교들은 전범 재판을 피해 도주하거나 일본 내에서 요직을 차지했다.


*출처: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국사편찬위원회, 『관동군과 일본제국주의』(오카모토 슌스케, 2012), 『일본의 만주 지배와 관동군』(이홍규,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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