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 취조
**통화시 외곽(류허현) 낡은 창고**
드넓은 허허벌판에 열 채 남짓한 집들이 듬성듬성 있는 한 시골 마을. 집들은 가운데 가축 사육장을 중심으로 배치되어 있고, 사육장 옆에는 농장 운영에 필요한 장비들이 즐비한 창고가 하나 있었다.
소, 돼지 그리고 닭들의 울음소리로 마을은 아침부터 시끄럽다. 그런 소란을 뚫고 희미하게 누군가의 역정 소리가 들린다.
“이놈!! 너희는 우리 대일본제국의 힘이 무섭지 않느냐! 내가 지금 총독님과 호형호제하는 사이이거늘! 만에 하나 내가 잘못되면 군대 한 부대가 수색을 펼칠 것이고, 그럼 이 동네 조센징들은 다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 것이다!”
“이 아새끼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
“뭘 새삼스럽게 그래요. 처음 잡혀오면 수순이잖아요.”
“요새끼 좀 더 오래가니까 그렇지.”
“손가락이라도 하나 분지르면 좀 조용해지려나?”
창고에는 아까 납치된 켄타가 손과 발이 꽁꽁 묶인 채 의자에 앉아 있다. 눈도 수건으로 가려져 있는 상태라 그가 느끼는 공포는 더욱 컸다.
그 앞에는 두 남자가 그를 감시하며 서 있다. 그는 덩치가 있고 약간 거칠게 생겼지만, 안경을 써도 눈이 선한 게 보여 온순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빼짝 말랐지만 몸이 다부져 보였고, 얼굴에 있는 흉터로 인해 누가 봐도 겁을 먹을 만한 분위기를 지닌 사내였다.
“뭐 때문에 이러는지 모르겠지만, 난 평화주의자라고. 나 조선인들에게 총 한 번 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에요. 누구 원한 사고 그럴 사람이 아닌데 내가..”
“자, 선생님. 이제부터 제가 묻는 것만 잘 대답하면 생채기 하나 없이 집으로 가실 수 있습니다. 알겠습니까?”
“그런 거라면 내가 잘 말해줄 수 있는데, 난 경무과라 아는 게 별로 없어요.”
“알겠다. 아는 것만 말하라. 대신 조금이라도 거짓인 게 들통나면 거짓말 한 개당 손가락 하나씩이니 신중하게 말하시고. 구라칠 거면 안 들키게 잘 꾸며서 씨부리시고.”
켄타는 둘의 상반된 어투에 더욱 겁이 났다. 하나는 딱 들어봐도 지랄 맞은 성격이었는데, 다른 하나는 자칫 수가 틀어지면 바로 목에 칼이 들어올 것만 같았다.
“아이고, 어떤 게 궁금하실까요? 아는 건 없지만, 아는 대로 최대한 알려드릴 테니 너무 걱정 마시고 말로 풀어가시죠.”
“우선, 우리 동지 둘이 너희 서에 체포되었다. 그들은 어찌 되었나?”
“죄송합니다. 안타깝게도 그 두 분은 고문을 받다가 돌아가셨습니다. 뭘 그렇게 사람 목숨까지 잃게 할 정도로 고문을 했는지··· 제 동료이지만 너무하네요. 제가 대신해서 사죄 말씀드립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켄타는 자신도 그들과 함께 목숨을 부지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두려움에 자신도 모르게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그 이야기를 들은 두 사람도 다른 의미지만 눈물이 나긴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멍하니 다른 곳을 보고 서 있었다.
“한창 꽃다운 나이인 애들을···. 특히 수영이는 이제 막 열여덟인데···.. 찢어 죽일 놈들··· 그렇게 죽일 필요까진 없었잖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그럼 제가 들어가서 그놈들 따끔하게 혼내겠습니다..”
“이 새꺄 그만 질질 짜! 미리 말했지만 대답만 똑바로 하면 살려서 집으로 보내주겠다. 자, 다음. 이 둘이 독립군인 건 어떻게 알고 잡아간 거지? 얘네들은 아직 위험작전을 수행한 것도 없는데?”
“그거까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 도시에 정보원이 있고, 그의 정보로 잡아들인 것만 알고 있습니다.”
정보원이란 말에 둘은 서로 눈이 마주쳤다. 밀정이라니···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동지를 의심하고 싶지 않았고 딱히 수상한 사람도 없었다.
“그.. 그럼··· 혹시 그의 이름이··· 뭔가?”
“죄송하지만 그건 극비라 현장직들 외에는 그것까진 잘 모릅니다. 실은 정보원이 있다는 것도 술자리에서 들은 거라..”
“모르는 게 확실한가? 거짓말하면 재미없을 거라 분명 말했는데.”
“진짜입니다. 아니면 다른 경무과 사람을 잡아서 물어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저희 쪽은 진짜 모릅니다.”
“음···. 그럼, 혹시··· 동지들을 아무런 이유 없이 잡아간 이유는 뭔가요?”
“그것도 잘 모르겠지만, 뭔가 중요한 정보를 캐내기 위해서라고만 알고 있습니다. 그 정보원은 모르는 내용이라고 들었습니다.”
결국 폭탄 테러나 주요 인물 살해 등이 아닌 단지 정보를 얻기 위해 이 짓을 벌인 것이다. 그것도 아직 새파랗게 어린 친구들에게 말이다.
계속 요동치는 감정을 추스르기 힘들어 둘은 담배에 불을 붙였다. 한 모금 깊게 들이켠 뒤, 경감에게도 한 모금을 줬다. 그가 겁에 질려 제대로 빨지 못하자 한 번 더 기회를 줬다.
“그럼 마지막 질문입니다··· 혹시 선생님께서 납치될 당시··· 그때를 기억하시나요?”
“파친코에서 나온 이후로는 전혀 기억이 나는 게 없습니다···. 혹시 어떤 거 때문에 그러실까요?”
덩치가 큰 남자가 겁에 질린 켄타에게 다가가 귀에 대고 나지막이 속삭였다.
인상이 좋은 그 남자는 경감 쪽으로 다가가 귀에 대고 조근조근 속삭였다.
“혹시나 기억이 나더라도 평생 묻고 사시는 게 나으실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챠샤오빠오**
“다 정리되셨죠? 이제 갈까요?”
“아.. 네네.”
일이 많아져서 그녀가 혼자 경찰서를 가길 내심 바랐지만, 아침 일찍 사장이 경찰에 끌려갔다는 소문이 돌아서인지 오늘따라 점심 손님이 많지 않았다. 그는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하고 주방문을 나섰다.
“그건 다 뭐예요?”
“사장님 배고프실까 봐 음식 좀 담았어요.”
“사랑이 넘치시네요. 교도소도 아니고 경찰서 면회에 이렇게 먹을 것까지.”
“이미 느끼셨겠지만, 사장님 진짜 좋은 분이세요. 저 여기 처음 와서 머물 곳도 뭐도 없을 때 여기 숙소랑 먹을 거까지 다 마련해 주셨어요. 일도 다 가르쳐 주셨고요.”
“좋은 분이시네요. 그거 이리 주세요. 무거워 보이는데.”
“아니에요, 앞에 있는 인력거 탈 거라 괜찮아요. 아, 마침 저기 있네요.”
그녀가 가리키는 곳에는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인력거와 인력거꾼이 있었다. 바로 형원이었다.
“안녕하세요. 시내 경찰서로 부탁드립니다.”
“네?? 경찰서요?”
“네. 왜요? 아저씨도 지은 죄가 많으셔서 경찰서 가기 싫어하시나요?”
“무··· 무슨··· 말씀을요. 법 없이도 사는 사람입니다.”
“외모는··· 법이 없으면 안 되실 것 같은데···”
“네???”
“아참, 내 정신 좀 봐. 젓가락을 안 들고 왔네.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그녀가 식당으로 뛰어들어가자 형원과 진은 서로를 째려봤다.
“너 왜 여깄어?”
“여기 사장 경찰서에 잡혀갔다며? 온 시내에 소문이 다 났던데? 밀정이라는 거 순전히 거짓부렁이었어.”
“놀라지 마. 나 오늘 그 사람 봤어. 어제 전화한.”
“뭐? 어디서? 어떻게?”
형원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물었다. 오전 사이에 얼마나 많은 일이 일어났던 것인가!
“여기서 일하더라고. 사장을 감시하고 있었대. 근데 그가 말해 줬는데, 잡혀가는 게 뭔가 경찰이랑 짜고 치는 것 같대. 의심을 피하려고. 그래서 아마 바로 풀려날 것 같다고 하더라고.”
“자기네 식구 실종 건 용의자로 잡아간 건데···. 고문도 안 하고 그냥 바로 놔준다고? 그건 말이 안 되는데?”
“그니까. 진짜 멀쩡히 나온다면 말이 안 되는 거긴 하지..”
“근데 경찰서는 왜 가는, 아, 오셨어요~”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출발하시죠.”
그들은 경찰서로 향했다. 그 모습을 식당 안에서 달수가 창문 너머로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통화시 외곽의 한 숙소**
한 남자가 숙소 안에서 전화를 하고 있었다. 그는 이전에 찻집에서 류자명과 백야 장군과의 접선에 대해 논의했던 자였다.
“전화받았습니다. 김좌진입니다.”
“안녕하십니까, 형님. 김종진입니다. 잘 지내셨습니까?”
“나라가 이런 상황인데도 별 탈 없이 지내고 있어 부끄러울 따름이다. 자명 동지는 잘 만나셨는가?”
“네, 잘 만나서 이야기 나눴고, 원래 저희가 보기로 했던 그때 그 장소에서 뵈면 될 것 같습니다.”
“7월 25일, 11시 30분, 시내의 큰 만두가게. 이상 없지?”
“네, 맞습니다.”
“그래. 항시 몸조심하고. 자네 같은 애국자들이 몸 건강히, 목숨 잘 보존하고 계셔야 나라의 독립이 빨리 올 수 있는 것이야.”
“네, 알겠습니다. 조심하겠습니다. 장군님도 조심하십시오. 이만 끊겠습니다.”
김종진은 장군의 말에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나라를 위한 마음과 사람을 챙기는 마음. 그것이 백야 장군이 나라와 백성을 위해 희생하는 밑바탕이었던 것이다.
**통화시 경찰서 근처**
진과 예진은 먹을거리를 한 보따리 싸서 형원의 인력거를 타고 경찰서로 향하고 있다. 경찰서 근처에 가까워질수록 형원과 진은 이래저래 지금의 이 상황이 복잡하고 신경 쓰였다.
“도착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근데 조금만 더 가주시면 안 될까요?”
“바로 요 앞인데, 아까 말씀하신 그 가격으로는 딱 여기까지예요.”
“호호, 아저씨 너무 웃기세요~”
“아저씨라뇨.. 제가 더 어려 보이는데···”
“호호호 진짜 웃기세요~ 요기 바로 앞인데 조금만 더 가주시면 안 돼요?”
“네, 안 됩니다. 세상에 공짜란 없는 법이니까요.”
형원은 경찰서 근처에는 가고 싶지 않아 1리 이상 떨어진 곳에 인력거를 세웠다. 그리고 진에게 계속 눈치를 줬다. *너도 지금 들어가면 안 된다고.*
“아저씨~ 너무하신다~ 정말 칼같으시네요. 인물이 좋으셔서 갈 때도 타려 했는데~”
“계속 아저씨라고···.아무튼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그렇게 넙죽 인사를 하고 고개를 드는데, 저 멀리 경찰서에서 두 명이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며 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 둘은 꽤나 깊은 사이인 듯 등도 다독이고 악수도 나눴다.
“어. 사장님이다. 벌써 나오시나 봐요. 사장님!”
예진은 사장을 크게 불렀고, 사장은 그 소리에 깜짝 놀라며 서둘러 같이 있던 사람과 황급히 인사를 나누고 돌아섰다. 같이 인사를 나누던 사람은 츠즈키 경감이었다. 그 순간 형원은 잽싸게 고개를 돌렸다.
“저 사람이 사장이라고? 왜 관동군 경감이랑···”
“나도 모르겠어..”
“저 새끼 배신자가 확실해.”
“······.”
“그 달수라는 자, 나도 같이 이야기 좀 나눠봐야겠어.”
형원은 사장과 츠즈키에게 얼굴이 팔리지 않게 반대 방향으로 인력거를 끌고 뛰어갔다. *역시 달수란 사람 말이 정말 맞는 것인가?*
[독립운동가 인물사전]
김종진 (金宗鎭, 1901~1931)
충청남도 홍성군에서 태어난 독립운동가로, 호는 시야(是也)이며, 김좌진 장군의 6촌 동생이다. 1919년 3·1 운동에 참여하여 체포되었으나, 미성년자로 석방된 후, 1921년 윈난강무당(雲南講武堂)에 입학해 군사 교육을 받았으며, 졸업 후 신민부에서 활동하였다. 1929년에는 재만조선무정부주의자 연맹을 조직하고, 한족 총연합회로 전환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31년 7월 11일,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하이린(海林)에서 암살되었다. 정부는 그의 공로를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 하였다.
*출처 :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공훈록,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정보시스템,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데이터베이스,『재만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과 독립운동』 (이준식,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