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해결 과제 - 나의, 혹은 우리의 한 때
그리고 이제야, 문제의 메시지를 보고 두근거리는 마음을 인식한 내가, 드디어 너에 대한 감정을 받아들인 내가 다시 등장하는 시점이다. 하지만 마음을 알아챘다고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연락을 주고받을 때 기분이 조금 더 좋아진 정도..? 계속 그런 마음이 들었다. 편하게 연락하며 가끔 가족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고 이해받을 수 있는 이 관계가 너무 소중해서, 더 가까워질 기회를 가지려다 완전히 끝나버릴까 봐 그게 두려워서. 그냥 이렇게 계속 이렇게 지내도 괜찮지 않을까 했다.
매일매일 하는 연락이 한 달이 넘어 자연스러워질 때쯤 오랜만에 얼굴을 보기로 했다. 조금 일찍 약속 장소에 도착해서 카페에 앉아 너를 기다렸다. 그냥 오랜만에 친구 만나는 거지 하는 생각과는 다르게 약속 시간이 다가올수록 심장이 뛰었다. 왜 이래. 흰 셔츠를 입은 네가 등장했다. 괜히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털어 마셨다. 아 오늘 좀 덥네. 주변을 거닐며 그간의 근황을 이야기하고 저녁 식사를 하러 자리를 잡았다. 기분 좋게 술을 한 잔 들이켠 네가 말했다.
“나 다음 주에 소개팅 해”
당황스러웠다. 우리 같은 마음이 아니었던가. 아니구나. 한 달을 넘게 연락하며 너도 어느 정도 호감이 있을 거라 여겼던 건 나만의 착각이었구나. 조금은 머쓱하고 많이 슬픈 마음을 애써 숨기며 ‘아 정말?’ 같은 대답이나 하던 내 표정은 어땠을까. 네 눈에는 그때의 내가 어떻게 보였을까 궁금해진다. 자연스러웠을까? 너무 자연스러워서 너는 아무것도 몰랐을까? 술이 썼다. 자리를 정리하고, 이대로 들어가기는 아쉽다는 너의 말에 근처 강가의 산책로를 걷기로 했다. 강가에 앉아 발을 담그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너는 장난스레 물을 튀기고서는 내가 질색을 하자 자기 소매로 내 이마를 닦아줬다. 그 손길이 싫지는 않았지만 짜증이 났다. 아니 싫지 않아서 짜증이 났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 같다. 나를 친구로만 생각하는, 다음 주에 소개팅을 나가는 사람한테 쓸데없이 설레는 내가 싫었다.
징검다리를 건널 때 네가 자연스럽게 손을 잡았다.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졌다. 아니 소개팅 나간다더니. 나는 그냥 친구인 거 아니었나. 나는 친구랑 손 안 잡는데. 보통 친구랑 이렇게 손도 잡고 그러나? 너는 그럴 수 있는 사람인가? 내가 친구 이상이라서 손을 잡은 거라면? 그렇다면 소개팅 나간다는 말은 뭐야? 이거 뭐냐고 물어봐야 하나? 장난스레 손을 빼며 분위기를 바꿀 수도, 손을 잡은 이유를 물으며 내 마음을 고백할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어느 쪽도 내가 원하는 상황은 아니었다. 나는 너와 더 멀어지고 싶지도, 더 가까워지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다 네가 지난 연애에서 썸녀와 손을 잡았다며 말했던 게 떠올랐다. ‘징검다리 건널 때 위험하니까 그냥 잠깐 잡아줬지~’ 이것도 그냥 그런 거겠지. 별 의미 없는 거겠지. 손을 잡은 채로 몇 발자국을 더 걸으면서도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 징검다리를 건너 강변을 벗어나는 계단을 오른 후 너는 잡았던 손을 놓아줬다. 손이 닿았던 곳이 여전히 따뜻했다. 오만 생각이 스치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했던 그날의 나는 비겁했다. 너는? 너는 어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