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씹은 유자청처럼 떫기도 한 문장들
Day 3
신트라와 호카곶에 가는 날. 교통권 24시간짜리를 어제 오후에 두 번만 쓴 게 아깝기도 하고, 버스가 아닌 트램을 꼭 타보고 싶어서 아침 일찍 나가서 리스본 대성당을 보고 가기로 했다. 골목 옆 건물을 스치듯 덜컹덜컹 언덕을 올라가는 트램은 정말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성당 문 여는 시간보다 일찍 도착하게 되어서 근처를 좀 서성였는데 어떤 노숙자가 나에게 소리를 질렀다. 애써 무시했는데 너무 무서웠다. 대체 왜?ㅠ 그 사람을 피해서 한 바퀴 걸은 다음 성당 앞 노천카페에서 라떼를 마셨다. 천천히 다 마시고 아홉 시가 됐는데도 성당 문이 안 열려서 당황했다... 성당 옆에 서 계시던 경찰분께 오늘 성당이 여는 게 맞냐고 물었는데, 본인이 영어를 못 하니 불어로 하라고 하셔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그 순간 덜컹하더니 성당 문이 열렸다. 9시 6분. 경찰관분과 내가 동시에 함박웃음을 지었다. 기다린 시간에 비해 성당은 금방 둘러보고 나왔다. 어제 본 제로니무스 수도원보다 확실히 단출한 느낌? 장식이 소박하면서도 웅장했다. 대지진을 이겨냈다는 얘기를 듣고 봐서 그런지 몰라도 엄청 튼튼해 보였다. 이제 지하철 타고 호시우역으로 출발.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에 조금 외진 골목으로 걷게 됐는데 길가에 아무도 없고 벽에는 ‘기한 지난 비자 가지고 꺼져라 곰팡이들아’ 같은 게 적혀 있어서 무서웠다. 대로변을 다닐 때는 못 봤는데 평화로워 보이는 여기도 이민자에 대한 인식이 좋지는 않나 보다. 그래도 골목을 다 내려와서 올려다본 리스본은 참 예뻤다.
신트라행 열차를 탔다. 한국인이 많다. 한국어가 들리니 왠지 안심이 된다. 신트라 도착 후 페냐성 가는 버스에서 한국인 동행들을 만났다. 모두 혼자 왔는데 하나 둘 모여서 함께 다니게 된 거라고 한다. 그날 코스가 똑같기도 해서 어쩌다 보니 같이 다니게 되었다. 다들 내 캐리어가 없어진 일에 대해 매우 유감을 표해주셨다. 페냐성 정말 날씨 좋고 색감 쨍하고 예뻤는데 카메라로 남기지 못해서 많이 아쉽다. (카메라 충전기는 분실된 캐리어에 잠들어있다.)
나를 리스본에 오게 한 이유의 90%쯤 되는 호카곶. 유라시아 대륙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는 곳. 장소에 의미 붙이기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만큼 낭만적인 장소도 찾기 힘들었다. 그 막연한 낭만이 너와 헤어진 후에는 세상의 끝에 너를 버리고 오는 것으로 구체화되었다. 마법처럼 그곳에 가면 순식간에 네가 잊힐 거라고 생각했다. 지구에서 가장 거대한 대륙의 서쪽 끝에 그 정도의 마력은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는 곳에서 내 마음도 끝나고 새로 시작될 수 있지 않겠냐고 생각했다.
호카곶에는 정말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의 바람이 불었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다들 사진을 찍고, 연인들은 키스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찬란한’ 바다를 보며 생각했다. 세상의 끝에 옛 연인을 버리고 가는 것보다 세상의 끝에서 키스하는 게 훨씬 낭만적이긴 하다고. 네가 보고 싶었다. 억지로 버리겠다고 버려지는 게 아니었다. 호카곶은 물론 정말 아름다웠고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나게 하는 마력도 지니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네가 버려지지는 않았다. 밤에 숙소에서 네가 SNS에 올린 글을 봤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네가 편안해져서. 내가 괜찮다고 말해도 스스로 괜찮다고 느끼지 않으면 괜찮지 않을 것이었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었다. 이제 괜찮기를, 네가 더 편안하기를 바랐고 내가 아직 너를 좋아한다는 확신이 따라왔다. 망했다.
그리고 내 캐리어가 돌아왔다!!!!!!!!! 공항에 항의 전화하려고 마음의 준비하고 영어로 대본까지 썼는데 할 필요 없어졌다. 정말 너무 행복하다. 이제 지난 이틀을 ‘해프닝’으로 말할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 정말 감사하다.
일기를 다시 보면서 리스본 성당 앞 작은 광장의 햇빛과 약간은 쌀쌀했던 바람, 트램을 타고 올라가며 스쳤던 가게의 빵 냄새, 어찌할 바 모르던 찰나 덜컹하고 열리던 성당 문이 생생하게 기억나서 잠시 행복해졌다. 유자차를 끓이는 기쁨이 여기 있구나.
그러나 첫 모금부터 마지막 한 입까지 마냥 달콤하지만은 않다. 까딱하다 유자청을 잘못 씹으면 떫은맛이 퍼지는 걸 경험해 본 사람은 알 거다. 예전의 나는 정말 감성적이었구나. 약간 조금 많이 견디기 힘들 정도로…. 이 또한 예전 기록을 들춰보는 것의 묘미가 아닐까 한다…. 아니 사실 좀 힘들다 과거의 나야 대체 왜 이런 문장들을 남겼니? 잘못 씹은 유자청처럼 떫다. 지난 인연을 그리워하는 내 문장은 과하게 절절한 구석이 있어 소름 돋지만 그 문장에는 호카곶의 노을을 보며 Lost Stars를 듣던 기억이 함께여서 버릴 수도 없다. 당시의 인연에 대해서는 (안 들려도 상관없고) 들린다면 좋은 안부가 들리길 바라는 건조한 마음만 남아있지만, 칼바람이 부는 절벽에서 대서양의 시작을 바라보는 것은 다시 생각해도 벅찬 경험이었다.
신트라에서 만났던 동행들은 이제는 카카오톡 친구 목록 한 켠에 ‘이런 사람이 있었지’라는 기억 정도로만 남아있다. 이런 식의 일회성 인연이 몇몇 더 있는데 가끔 그게 씁쓸하기도 하고, ‘아주 거칠게 말하자면 우린 높은 확률로 서로 실망하게 될 일만 남은 셈’이니까 (브로콜리너마저,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 中) 좋은 기억만 남길 수 있어서 다행스럽기도 하다. 인연이라는 게 참 가볍고 복잡한 것 같다.
그리고 드디어 돌아온 캐리어. 다음날이면 포르투로 이동해야 했던 터라 여행을 하면서도 마음 한 켠이 계속 초조했다. 숙소를 바꾸니 혹시 캐리어를 찾으면 바뀐 숙소 주소로 보내달라는 말을 항공사 측에 전해야 했다. 전화도 싫어하고 항의도 싫어하고 영어도 싫어하는 나에게 영어로 항의 전화를 해야 하는 상황은 정말이지 아찔했다. 미루고 미루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간이 되어서야 울며 겨자 먹기로 전화를 걸었다. 내 캐리어가 언제 오는지 궁금해서 전화했어. 이후로 대본을 읽어 내려가려던 찰나, 항공사 직원이 말했다.
- "어 네 캐리어 아마 도착했을 텐데? 아직 못 받았니?"
"앗 내가 오늘 아직 숙소에 안 들어갔어."
- "아마 도착했을 거야. 혹시 숙소에 없으면 다시 연락 줘~"
그때의 그 두근거림이 다시금 생생하다. 내 캐리어가 돌아왔다. 숙소에 달려갔다. 기분이 아주 좋았지만 혹시 숙소에 없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숙소 문을 연 순간, 내 캐리어가 거기 있었다. 그때의 기쁨. 환희. 안도! 가방을 보고 그렇게 기뻤던 적은 아마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다시 생각해도 짜릿한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