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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혜은 May 05. 2023

Day 5 : 포르투 출신 우산

Where are you from?

Day 5


    호스텔 조식을 먹으러 부엌으로 갔다. 부엌 중앙에는 머리가 길고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외국인 남자가 있었는데 내가 아침을 먹는 한 시간 내내 주변 사람들에게 말을 걸었다. 보니까 자기는 일찍 와서 밥 다 먹은 후에 들어오는 사람 모두에게 말을 거는 것 같았다. 다들 유쾌하게 대화하는 것 같긴 했는데 정말 투머치토커였다. 내용 전부를 알아듣지는 못해도 투머치토커의 기운은 언어의 장벽을 넘어 전해졌다. 같이 대화하던 여자분이 식사를 마치고 내려가자 그 뒤편의 남자분에게 말을 걸었고, 그 남자분도 다 드시고 내려가자 조식을 관리해 주는 호스텔 직원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직원분이 시리얼을 가지러 창고에 가자 내 차례였다. 블라블라…. 어디서 왔어요?로 추정되는 말을 하시길래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어제 한국에서 여기 도착한 거냐며 놀라셨다. 아하 어제 리스본에서 넘어왔어요. I’m not good at English, sorry... 하니 ‘자기가 바로 English인데 나랑 얘기하고 있으니 You are good at English’라는 영국 사람 본인들만 재밌을 법한 고향 유머?를 던지고 여행 재미있게 하라며 드디어 자기 방으로 가셨다. 하하.




    아침에 비가 왔고 3유로 주고 산 우산은 세 시간 만에 부서졌다.. 포르토는 비가 와도 예쁘다. 지붕은 리스본이랑 똑같이 빨간데 전반적으로 좀 더 고풍스러운 느낌. 도시 중심부가 좁아서, 그리고 구글맵이 어제부터 나를 엿 먹이고 있어서 호스텔에서 받은 관광지도 한 장 들고 그냥 걸었다. 길을 잘못 들어서 다리 건너 아랫마을? 에 갈 뻔하기도 했지만 물어물어 볼랴 시장에 도착했다. 전통시장이라는데 이제는 기념품 가게가 대부분이어서 조금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5유로짜리 우산을 새로 샀다.. 호스텔에서 한국인 분이 추천해 준 식당을 왔는데 안심스테이크 아주 맛있다. 샹그리아는 비주얼이 훌륭하긴 한데 신트라에서 마신 게 더 맛있었던 것 같다. 세시 반에 역시 그 한국인 분이 알려주신 무료 워킹투어를 신청해 뒀다. 


    밥 먹고 시간 맞춰 페드로 5세 동상 앞에 갔다. 출발 7분 전이었는데 아무도 없길래 당황했다. 뭐지;싶어서 다시 확인해 보니 약속 장소는 페드로 4세 동상 앞이었다. 오전에 그냥 돌아다니다가 ‘페드로’만 보고 ‘아 여기가 나중에 와야 하는 약속 장소구나~’ 했었는데 이 동네에는 페드로가 한 명이 아니었던 거다... 그때부터 구글맵 찍고 엄청 뛰어서 간신히 도착.. 가이드 V는 배우지망생으로 온 세계를 떠돌다가 고향에 가이드로 정착해서 블랙조크를 선보이며 가이드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의 블랙조크는 일단 영어인 데다 포르투갈 억양이 더해져서 전부 알아듣진 못했지만 어쨌든 투어는 좋았다. 혼자서는 몰랐을, 알았어도 갈 엄두를 못 냈을 골목골목을 다닐 수 있었다. 해가 지고 가로등이 켜진 후에 내려다본 포르토는 또 정말 예뻤다. 그리고 너무 많이 걸어서 숙소 오자마자 뻗어버림.





    원래는 아침밥을 챙겨 먹지 않는데 숙소에 조식이 포함되면 꼭꼭 시간 맞춰 일어나서 양껏 먹었다. 그래야 점심을 간단히 먹어도 버틸 수 있으니까…. 눈물 나는 짠내투어. 포르토 호스텔은 조식이 맛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말 많은 영국 할아버지가 나한테 Big breakfast라고 잘 먹는 거 보기 좋다고 했던 것도 기억난다. 두유노 ‘아침은 공주처럼 저녁은 거지처럼’? lol. 


    호스텔 같은 방의 여자분, 동양인인 것 같긴 한데 한중일 중 어느 곳에서 오셨을지는 감이 잡히지 않아서 아무 말도 걸지 않고 조용히 지냈다. 그분이 갑자기 ‘한국분이세요?’하시길래 화들짝 놀라며 어떻게 아셨어요 묻자 내가 침대에 펼쳐 놓은 한글로 된 책을 가리키며 웃으셨다. 모르는 게 더 이상. 추천해 주신 식당도, 워킹투어도 참 좋았다. 감사해요!


    글을 쓰다 기억 났는데, 워킹투어 중에 '비긴어게인' 촬영팀을 만나기도 했다. 나중에 보니 비긴어게인 방송 장면에 워킹투어를 듣던 우리 모습이 찍혀있었다. 신기한 추억.


    공교롭게 지금도 비가 온다. 날씨가 나의 여행기를 따라오는 것 같다는 터무니없는 상상도 해 본다. 포르투에서 5유로를 주고 산 우산은 아직 잘 쓰고 있다. 여행지에서 생활용품을 사는 것도 추억을 남기는 좋은 방법인 것 같다. 쓸 때마다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우산 출처까지 생각하면서 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 가끔 떠오를 때면 잠깐은 미소 지을 수 있다. 오늘은 잠깐보다 조금 더 길게 미소를 머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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