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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혜은 Apr 30. 2023

Day 4 : 포르투 투덜이

Day 4


    리스본의 마지막 날, 상 조르즈 성으로 향했다. 높은 곳에서 바라본 리스본 전망은 정말 놀라웠다. 빨간 지붕들이 빽빽한 게 아주 장관이고 그 앞으로 바다가 훤히 보여 속이 시원해지는 기분이었다. 상 조르즈 성에서 어제 만났던 동행 분을 우연히 또 만났다. ‘왜 지붕이 전부 주황색일까요? 국가적으로 뭔가 규제가 있었던 걸까요, 아님 전통적인 걸까요?’ 물었더니 ‘그냥 저게 제일 싸고 대중적인 재료인 거 아닐까요.’라고 답해주셨다. 주황빛 낭만은 자본주의가 처치했으니 안심하라고!



    근처 식당에 점심을 먹으러 갔는데 ‘spicy’하다는 파스타가 있었다. 주문했더니 점원이 이거 좀 맵다고 괜찮겠냐는 경고까지 해준다. (오히려 심장이 뛰는 한국인) 얼마나 매울지 기대하다 한입 먹어봤는데 하나도 안 맵다. 겨우 느끼하지 않을 정도. 아니 얘네는 이런 걸 먹고 매워한단 말이야? 너무 깜찍한 입맛이잖아...?


    트램은 너무 비싸고 덜컹거리지만 재미있다. 트램을 타고 숙소로 돌아와서 짐을 가지고 리스본 오리엔트 역으로 떠났다. 캐리어 끌고 다니기 짱짱 힘들다... 캐리어를 기차 짐 칸에 올리려다 목이 부러질 뻔했다. 그래도 올려둔 뒤로는 아주 편하게 갔다. 좌석 간격이 KTX 두 배는 되는 것 같다. 포르투에 무사히 도착하기를!



    도착 직전 창밖의 포르투 야경은 정말 반짝반짝하고 예뻤는데 숙소를 찾아가는 과정은 아름답지 못했다. 구글지도와 시티매퍼가 도무지 GPS를 제대로 못 잡고 안단테 발권기는 동전을 전부 뱉어냈다. 우웩. 그래도 친절한 현지인들의 길 안내로 휴대폰 배터리가 2% 남았을 때쯤 간신히 숙소 도착... 숙소는 온수가 잘 안 나오는 것 빼고 (이게 좀 치명적이지만) 좋다. 깔끔하고 안전한 느낌. 근데 물이 위에서 떨어지는 샤워부스에서는 샤워물품을 어디다 두고 씻어야 안 젖는지 정말 꾸준히 모르겠다. 축축한 샴푸통 싫어.......




    과거의 나는 어쩜 이렇게나 투덜이인지! 코인빨래방에 이불을 돌려놓고 탄 거 아닌가 싶은 맛이 특징인 저가 커피 프랜차이즈의 아이스 라떼를 마시면서 읽기에는 너무 부러운 일기다. 저 좋은 곳에서 저렇게나 투덜거리면서 지내다니. 정신 차리고 매 순간 감사하라고 꿀밤이라도 한 대 먹이고 싶다. 캐리어 들고 다니기 힘들다고 당시 SNS에도 투덜거렸었는데, 한 친구의 댓글이 기억난다. ‘찾을 땐 언제고 무겁다고 면박주네’ 였던가. 그러게. 눈물로 찾을 땐 언제고. 있을 때 잘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된다. 오늘도 언젠가는 평화롭고 여유 있던 주말로 기억될 날이 오려나. 그때는 또 지금의 나에게 꿀밤을 먹이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별일 없는 주말이 최고로 행복한 건데 그걸 모르고 투덜대고 있니!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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