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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도 사람이다 Nov 06. 2024

그 누구든 혼자 크는 게 아니다.

가족, 지인, 환경에 감사하다.

말, 언어가 주는 신뢰는 늘 반갑다.

아주 당연한 결과다.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이 좋다.

자주 가는 카페나 마트 등 방문할 때마다 예쁘다고 칭찬하는 사람들이 있다.

반대로 무뚝뚝한 사람들도 있다.

아주 당연하게도 칭찬을 해주는 사람들이 있는 곳은 한 번이라도 더 방문하게 된다.

입에 발린 소리라 할지라도 상대의 기분을 띄워주는 일은 돈이 들지도, 감정이 상하지도 않는다.

감정에 휘둘려 말하는 사람을 보면 위태롭다.

글을 쓰면서도 찔린다.

물론 나 역시도 누군가에겐 사소한 감정에 잘 휘둘린다고 생각할 수 있다.

맞다. 누군가의 곱지 못한 시선이나 말투에 하루 종일 우울할 때가 많다.

그럴 땐 가면을 쓰고 억지로 웃으며 칭찬으로 상대의 기분을 풀어주려 애쓰는 일이 간혹 생긴다.

굳이 그럴 이유도 의무도 없는데 말이다.

하지만 하고 나면 상대의 기분이 풀리고 있음을 알아차리게 되는 순간이 온다.

상대가 되찾은 미소로 인해 우울해진 내 기분도 되찾을 수 있다.

물론 되찾기는커녕 예외도 있다.

그래서 우울의 늪에 더 깊이 빠지기도 하고, 부정적인 감정이라는 매서운 소용돌이가 휩쓸고 가며 표출하지 못해 안달 난 감정이 품어질 때도 있다.








뜻을 분명하게 표현했어도 이해를 못 하는 사람들이 있다.

동문서답이다.

그들의 공통점은 들을 생각도 자세도 안 되어 있다는 것이다.

당황스러움의 연속이 되는 관계는 스트레스만 불러온다는 말이 맞다.

나의 노력이 전달이 되지 않을 때는 결국 재방문은 더 이상 고려하지 않는다.

가게뿐만 아니라 모든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친근감 있게 다가가려다 유머라고 착각하며 실수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다.

그저 상대가 유머라고 받아들이면 다행이다.

그저 내가 유머라고 받아들일 줄 알면 다행이다.

말 한마디로 틀어질 수도 있고 신뢰도가 높아져 존중받을 수도 있다.

그래서 어려운 게 관계고, 이 관계 속에서 오고 가는 말, 언어라는 게 참 어렵다.

적당함을 아는 사람이 물론 좋겠지만, 나야말로 적당함을 알아차리지 못할 때가 있다.

단순히 눈치가 있다와 없다로 구분한다면 관계는 쉽게 정리가 되겠지만 전달하는 사람의 어투나 태도에도 눈치를 챙겨야 한다고 볼 수 있다.

말 그대로 눈치껏 해야 한다는 게 가장 어렵다.

그래서 관계를 맺기에도 끊기에도 많은 생각이 스친다.

더구나 쉬운 일이란 없다.

관계를 맺기엔 인연이 불러오는 갈등 상황도 슬기롭게, 함께라는 명목으로 존중하며 지켜야만 한다.

반대로 관계를 단칼에 잘라버리면 어디에서 어느 상황이건 비슷하게나마 돌아올 수 있다는 점도 늘 잊지 말아야 한다.








완곡한 어투로 예의 바르게, 상대가 헷갈리지 않게 표현하면 서로 다칠 일이 없다.

쉬운 것 같으면서도 결코 쉽지 않다.

갈등을 싫어하지20대와 30대는 왜 그렇게  갈등이 놓인 관계 속에 있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상대가 돌려 말하는 것조차 거슬리고 상처가 됐다.

그래서 내 뜻을 표현하고자 전달을 하면 말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오해가 생긴다.

결국 상대방 탓을 하며 끊어낸 인연이 하나 둘 늘어갔다.

어느 날 내가 표현하는 방법이 잘 못 됐는지 되짚어봤다.

어설픈 전달일 수 있겠지만 나름 명확하게 내 뜻을 표현했다.

지나고 나서야 상대의 듣는 자세가 잘 못 되었다는 걸 알아차렸고, 상대가 들을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전달하는 나 역시도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이미 지나간 갈등상황이다.

상대도 나도 그 어떠한 사과나 오해를 풀고자 노력하지 않았다는 게 문제다.

결국 인연은 그렇게 종결됐다.

이제는 어떤 관계든, 먼저 제대로 들으며 이해하고, 생각하는 자세를 상대도 눈치채게끔 눈으로 시그널을 보낸다.

상대가 부담을 느낄 수 있겠지만 난 그만큼 진심으로 듣고 다는 나만의 표현 방법이고 나 역시도 말하고자 하는 나의 메시지를 전달할 때 상대의 태도를 생각해 본다.

말을 해 봤자다 싶은 상대가 있고, 들어줄 준비가 아주 된 상대도 있다.

수다는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지만 깊은 대화는 누구나 쉽게 할 수 없다.








나는 늘 배움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사고가 짧다는 것에 대한 불만을 갖고 있다.

스스로 부족함을 배우고자 하는 갈망이라는 늪에 빠져 살기도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생각보다 깊은 사고를 하는 사람이 주변에 많지 다는 것이다.

나는 나의 사고를 더 확장하기 위하여 깊은 대화를 원하지만 현실은 대화에 큰 의미를 두는 상대를 만나는 게 어려운 일이었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것이다.

그래도 나에겐 늘 응원해 주고 다독여주는 신랑이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내가 가장 신뢰하고 애정하는 신랑과 대화를 하면서 배우고, 그 대화 속에서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

물론 8살 아들 녀석과의 대화도 즐겁긴 하다.

짧을 수밖에 없는 8살의 사고력에서 배우는 것도 있다.

대화 자체가 흥미롭기도 하고 넌지시 사고력을 키워줄 만한 의문을 던져주는 즐거움도 있다.

어휘가 하나씩 늘어나고 응용하는 걸 보면 기특하기도 하다.

단, 나도 사람인지라 더 많은 깨달음을 갈구한다.

나의 사고력을 크게 확장시켜 줄 누군가를 원하지만 결국 당장의 해결책은 책뿐이다.

왜냐하면, 안타깝게도 나라는 사람 역시 아직은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며 배움의 재미를 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브런치, 하나라도 더 담아내려고 부담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아직은 벅차기만 한 존재라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한없이 가벼워 보일 수 있는, 쓸모없어 보이고 형편없어 보이는 나의 글들 모두 애정한다.

그리고 나에겐 쓸모없지도, 형편없지도 않다.

그 누구도 함부로 못 할 나의 인생이고, 나의 하루하루가 담긴 일상이며, 나에게 주어진 장이다.

더 중요한 건 나는 브런치에서만큼은 아직 어른이 아니다.

더 읽고, 더 배울 것이며, 더 쓸 것이다.

누군가에게 의미가 있는 사람, 신뢰를 주는 사람이 될 것이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준비는 이미 되어있다.

항상 감사하며, 소중하게, 존중을 담은 깊은 대화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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