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나 직장을 가기 싫을 땐,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을 떠올려보세요
"비밀 하나 말해 줄까?","난 새 학기가 너무 두려워"
까만색 바탕에 하얀색 글씨, 책의 맨 앞페이지에 등장하는 문장이다. 새학기를 앞두고 학교에 가기 싫어하는 아이들이 아닌, 아이들이 맨 책가방의 입장에서 쓴 동화책이다.
지금의 나, 그리고 아들, 또 우리 반 아이들에게 딱 들어맞는 문장이랄까?
내일이면 28일간의 여름방학이 끝나고 다시 맞이하는 새학기 첫 날이다. 물론 3월의 첫날만큼 코르티솔과 아드레날린이 상승하고 심장이 요동치는 긴장감은 없지만, 일단 개학은 개학이다. 쉬고 있는 장작에 화력을 더하듯 더위와 게으름이 칠갑된 내 몸에도 에너지를 불어넣어야 한다. 모두가 알듯, 늘 일이라는 인이 박혀있는 몸과 잠시 쉼을 허락한 몸 중 가장 둔한 몸은 바로 후자. 그 전보다 더 센 화력으로 밀어부쳐야 한다는 점이 힘겹게 다가온다.
방학과 동시에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린 아들의 방학 숙제를 어제 다시금 확인하고 화들짝 놀랐다. 허겁지겁 도서관에서 빌려온 10권의 책을 과식하듯 읽히고 독서록을 쓰게 하고, 가족여행 쿠키만들기 등 테마과제도 어제서야 겨우 완성해낸다. 성인이 되어도 학창시절 벼락치기 습관을 못버린다. 거기다 나는 교사가 아닌가? 반 아이들에게는 "얘들아 숙제 미루지 말고 열심히 해야 한다" 라고 신신당부해놓고선 정작 내 아들의 숙제도 이런 식이니. 사실 방학과 동시에 아이들에게 한 저 말도 반신반의하며 던진 건 솔직히 인정한다.
초등학교 시절의 내게 방학 숙제는 안하면 큰 일나는 무언가였다. 내 마음 속 깊숙이 묻어둔 추억창고를 살살 열어본다. 아직도 선연히 기억나는 파란색 표지의 ebs 방학생활. 그 당시 아이들 사이에선 1센티가 될까말까한 방학생활을 가장 두껍게 불리는 것이 국룰이었다. 그래야만 방학숙제상을 거머쥘 수 있는 자격요건이 되기 때문이었다. 나는 각종 종이접기, 사진 등을 붙여 최대 3배 까지 불려본 기억이 있었다.
내 초등학교 시절 방학의 기억은 파란색 방학생활을 두껍게 불린 기억으로 점철되어있다. 마땅히 학원이라는 곳이 존재하지 않은 시골이라 더 가능했던 것 같기도 하다. 친구들과 어디 놀러가고 가족과 해외를 가는 것 대신 그들과 옹기종기 모여 만들기 숙제를 하고, 그림을 그리고,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며 긴 방학을 하루하루 열심히 채워나간 나날들. 우리에겐 방학숙제가 여행이었고 피서였던 것이다. 그래서 요즘의 방학숙제가 성가신 존재,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된 것이 어색하기만 하다.
다시 현실로 발을 붙여본다. 마치 오늘은 지구가 내일 멸망한다면 무엇을 하고 싶나요? 질문에 대한 답을 하는 시간과도 같다. 남편과 못가본 브런치 가게를 가볼까? 개학맞이 입을 옷을 사러 갈까? 평소엔 꿈도 못꾸는 런치 타임 가게를 노려볼까? 등 평소에는 하지도 않던 생각들이 난무한다. 개학과 동시에 눈코뜰새 없이 정신없는 생활에 파묻힐 것이 분명하기에 조금이라도 멋진 방학의 데미를 장식하기 위해 부지런히 머리를 굴린다.
문득 우리반 아이의 일기장 내용이 머릿속에 섬광처럼 떠오른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뭐가 하고 싶냐는 주제의 일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직까지 마음에 각인된 것을 보면 꽤나 어른스러운 대답을 내놓았던 일기였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가족들과 영화보고 맛있는 음식도 먹으며 대단한 일 대신 가족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고 싶다" 그 문장을 아이들 앞에서 읽어주기 까지 헀었다. 가끔씩 내 가슴을 울리는 글은 어른들이 아닌 아이들이 많이 쓰는 것 같다.
개학을 하루 앞둔 오늘, 나도 대단한 일들 대신 일상적인 하루를 보냈다. 땀을 뻘뻘 내며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두 곳의 도서관에 발자국을 찍으며 내일 반아이들이 아침에 읽을 책을 빌려오고, 식구들과 저녁으로 먹을 식재료를 마트에서 사오고, 고장난 가방의 지퍼를 고치러 갔다. 그리고 내일 안내사항을 알림장앱에 쓰며 나와 아이들에게 개학이라는 경종을 울려 현실로 돌아오게끔 만들었다. 알림장을 쓰며 나는 그간 내 마음속 무대 한켠으로 밀어놓았던 교실을 머릿속으로 가만히 떠올려본다. 그리고 그 교실에 앉아 반짝이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던 26개의 눈동자도 차례차례 무대의 중심 위로 올려본다. 생각보다 개학이 두렵지 않았다.
다시 돌아갈 내 자리가 있다는 것, 그리고 나를 믿고 바라봐주는 아이들을 다시 볼 수 있다는 것. 쉬고 있던 마른 장작에 갑자기 작은 불씨가 던져진 느낌이었다. 평소라면 개괄식으로 1,2,3 번호 붙여 방학숙제 및 등교안내만 적었던 무미건조한 알림장 내용에 서두에 이렇게 적었다.
"내일이면 개학이네요,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교실, 다시 만날 수 있는 친구들이 있음에 감사한 오늘입니다. 새학기 만큼 두렵지 않을거예요. 다시 등교네 라는 무거운 마음 대신, 친구들,급식,선생님 등 내 마음을 기분좋게 만들어지는 단어를 떠올리며 오늘 밤엔 일찍 잠들어요"
이 문구는 내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시간은 내가 힘으로 밀어낸다고 해서 밀려지지 않는다. 학생들이 개학이 오지 말길, 휴가를 마치고 회사로 복귀해야 하는 직장인들이 출근날이 오지 말길. 강한 힘으로 밀어내봐도 소용없다. 애석하게도 시간은 그런 우리마음을 이해해주지 않고 본분을 다할 뿐. 그럴 땐 다른 방법이 없다. 그저 묵묵히 받아들이고 내일 개학이, 출근이 좋은 점 하나 정도를 떠올려보며 부정적인 기분을 조금이나마 희석하는 것. 개학을 하루 앞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아닐까?
이 그림책의 책가방도 마찬가지다. 책가방은 아이가 마구 던져넣은 책과 파일, 그리고 어디로 가는 지 모르는 불안함, 턱턱 던져지는 아픔때문에 힘들다는 점에서 우리와는 다른 결을 가졌지만 어쨌건 방학맞이로 쉬던 가방이 새학기가 싫은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와 맥락을 같이 한다. 하지만 책의 마무리에서 책가방은 학교 갈 힘을 다시 얻게 되는데 바로 자신과 같은 동지가 있다는 사실! 나와 같은 감정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그 연결감이 책가방을 힘나게 하고 조금 덜 힘든 내일을 기대하게 한다.
개학을 정확히 18시간 앞둔 오늘, 나도 아들도 우리반 아이들도 같은 감정으로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지금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밀린 방학숙제를 하고 있을까? 아님 오늘도 열심히 학원을 뛰어다니며 본분에 충실하고 있을까? 아님 마지막 날이니 더 실컷 늘어지고 게임도 하고 친구와도 놀고 맛난 음식을 먹으러 가서 행복감에 젖어있을까?
오늘은 모두가 다른 일을 하고 다른 생각을 하며 보내는 하루겠지만 내일은 개학이라는 하나의 공통점으로 묶일 것이고 같은 마음으로 연결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오늘 하루를 좀 더 살맛나게 버티게 하는 힘이 된다. 내일 등교하면 아이들과 이 책을 함께 읽으며 조금 느슨해져 있던 연결선을 조금 팽팽하게 만들어봐야겠다.
학교가 가기 싫던 초록색 가방이, 자신과 같은 마음을 가진 보라색 가방이 해준 말로 마무리되는 책의 마지막 문장을 읽으며,완전 괜찮지 않은 개학의 감정을 조금이나마 누그러뜨러 보고자 한다.
"아직은 조금 두렵겠지만 괜찮을거야 모든 걸 너 혼자 짊어지지 않아도 돼"
"얘들아 개학을 앞둔 지금은 조금 두렵겠지만 괜찮을거야 우리 모두는 같은 마음이니까 그 마음 함께 학교에서 나누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