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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Sep 04. 2024

연남천 풀다발-풀꽃에서 배우는 삶의 지혜

아이가 아프고나서야 깨닫는 반복되는 일상의 소중함과 일상을 대하는 자세

 어느덧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언제나 똑같은 계절은 없다     


올해가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반복되는 일에도 매번 최선을 다한다.

     

 4학년 과학 식물 단원수업과 연계해 아이들에게 읽어주려 빌려온 그림책 연남천 풀다발에서 가장 인상깊게 읽은 구절 중 하나다. 연일 더워지는 날씨에 아이스크림처럼 온몸이 녹아내리며 힘이 빠지는 이 시기. 운명처럼 날아와 내 마음에 쏙 박혀들어온 이 문장은 힘없던 내 두 손을 불끈 쥐게 만드는 마법의 문장이었다.


그 문장에 내 마음에 날아든 이유는 아마도,요즘의 내가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있었고 좀체 기운이 나질 않는 하루하루라는 길 위에서 겨우 발걸음을 내딛으며 버텨가고 있는 중이라서 일까?


 어제, 아이가 간밤에 열을 내며 아팠다. 아프지 않고 평온한 일상을 잘 이어가던 아이었기에 제 속도를 유지하던 심장박동이 갑자기 날뛰기 시작한다. 급히 거실로 나가 펜트리 깊숙이 넣어둔 체온계를 꺼내 열을 재니 38.2도. 체온계에 뜬 빨간 불에 내 마음에도 빨갛게 비상신호가 켜졌다. 아이를 깨워 서둘러 해열제를 입에 넣어먹이고 미온수로 물수건 마사지를 해주며 열이 내리길 양손 모아 기도했다.

 아이가 아프면 으레 그렇듯 많이 아픈 거면 어떻하지? 열이 안내리면 어떻해야 할까? 큰 병은 아니겠지? 머릿속으로 할 수 있는 모든 나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며 걱정을 사서한다. 동시에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을 뭉게구름처럼 부풀린다.


 아이가 아프니 잠들기 전에 있었던 일들이 하나 둘 떠오르기 시작한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 갑자기 “아이의 열”이라는 변수가 생기면 잔잔한 호수가에 돌멩이 하나가 툭 던져진 것처럼 나른한 일상에 경종이 울린다. 그제서야 아이가 매일 통과하고 있는 일상을 수면 위로 가만가만 떠올려본다. 매일 아이는 학교 수업이 마치자마자 두 개의 학원을 오가고 밤에는 저녁을 먹은 뒤 두어개의 숙제까지 마쳐낸다. 그 지난한 과정 끝에 겨우 맞이하는 한 시간 정도의 자유시간.


 그 시간이 아이에겐 자유로이 허용된 달콤한 휴식 시간일테다. 그때마다 아이는 쪼르르 내게 다가와서 이런저런 말을 걸기도 하고, 보드게임이나 태권도 학원에서 배운 놀이를 같이 하자며 내 팔에 매달리곤 한다. 그 시간만이 아이에겐 유일하게 엄마와 보낼 수 있는 시간이지만.내 입장에선 그 시간만이 또 유일하게 나 혼자 보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나는 좀 더 친절하게 굴지 못하고 매번 같은 대답을 되풀이하는 경우가 수두룩했다.


 “혼자 놀아봐,엄마도 할 일이 있어”라는 무심한 대답. 그 말은 그렇게 수없이 아이의 마음을 콕콕찌르며 바람빠진 풍선처럼 힘빠지게 만들었을테다.     


 그래놓곤 자기 전, 늘 마음 한구석엔 잘 놀아주지 못했다는 찝찝함을 가슴 속에 돌덩이처럼 남겨두고, 다음 날에는 놀아줘야지 마음 속으로 되뇌이다, 다시 돌아온 저녁엔 같은 행동을 되풀이하고야 만다. 아이가 아프기 시작하니 그제서야 그렇게 흘러보낸 시간을 후회와 자책으로 내 자신을 책망해본다.


 매일 되풀이되어 터부시했던 아이와의 시간. 나는 그 시간에 아이에게 온전히 집중하며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머릿속에 의문부호 하나를 그려본다. 아이가 열을 내며 아팠던 당일인 일요일 오후에도 젠가를 하자고 했을 때 심드렁하게 답하며 빨리 끝내자고 재촉한 것. 그리고 저녁 시간에 자신이 개발한 재미있는 놀이가 있다며 같이하자고 했을 때 엄마는 책을 읽고 싶다며 아이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손에 들고 있는 책에만 집중한 것. 그 모든 행동이 부메랑이 되어 내 가슴에 날카롭게 날아와 박혀든다.


 늘 반복되는 일이라 무시했던 저녁차리기, 아이들과 놀아주기. 이런 것들은 내게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항상 돌아오는 시간이기에 사소한 무언가로 치부해버렸다. 그래서 매번 돌아오는 저녁이 큰 짐처럼 느껴져 대충 음식을 만들기도 하고, 아이와 놀아주는 시간마저 귀찮게 여겨왔다. 그보단 그 시간을 아껴 글을 쓰거나 책을 읽거나 수업준비 등 뭔가 생산성있거나 남는 일을 해야만 그 시간을 알차게 쓰는 것이라 믿어왔다. 그런 것들 만이 나를 성장시킨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가 아프고 보니 그 모든 것이 부질없음을 통감했다.


 어쩌면 삶에서 가장 우선순위에 두어야 할 것은 바로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 내가 해야 할 일들. 가장 기본적인 것들 가족들과 먹고 마시고 놀고 이야기 나누는 그런 일상 속 사소한 것들. 사소하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값진 그 일상에 나는 최선을 다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내게 연남천 풀다발에 나오는 식물들의 삶은 큰 울림을 주었다. 식물들은 매해 돌아오는 자신의 한 살이에 매번 최선을 다해낸다. 싹이 트고 잎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그 지리멸렬한 과정을 한 시도 놓지 않고 계속 한다. 그것도 있는 힘껏.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 시도 빠지지 않고 자신의 임무를 다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간다. 그렇기에 매해 돌아오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지만,그 다양한 계절마다 저마다 최선을 다해  꽃을 피워내는 식물들을 보며 우리는 마음이 풍성해지고 위안을 받는다. 그렇게 생각하니 괜스레 길가에 핀 풀꽃만 떠올려도 가슴이 웅장해져온다.

  

매일 나가는 일터, 매번 돌아오는 저녁시간 같이 그 반복되는 일상을 대충 보내지 않고 식물들처럼 있는 힘껏 살아내보리라 다짐해본다. 책 속 구절처럼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하루하루를 살아낸다면 밋밋한 일상에 특별한 향신료가 더해지지 않을까 생각하며. 아이가 아프고 나서야 내가 비로소 아이와의 보내는 이 시간이 더없이 특별한 순간으로 여기게 된 것처럼.


 식물에게서 얻은 지혜로부터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내게 주어진 일상을 최선을 다하며 좀 더 풍성하게, 눅진하게, 밀도있게 보내야겠다. 오늘 저녁 정성을 다해 식구들이 먹을 저녁을 준비하고, 아이가 내게 건네는 놀자는 메시지에 웃으며 화답하며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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