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고 하지 않아도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은 참 많다.
엄마는 좋다
학교 갔다 돌아오면 엄마는 두 팔 벌려 맞아 준다.
그러지 못할 때라도
엄마는 식탁 위에 있고
화초들 사이에 있고
깨끗이 빨아놓은 수건 위에 있다.
집에 오면 엄마는 늘 있다.
그림책 엄마는 좋다에서 내 마음 속에 오래 머무른 부분이다. 학교갔다 돌아온 아이가 엄마가 없어도 엄마의 존재와 사랑을 집안일의 흔적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것. 이 부분을 읽으며 나는 어린 시절 우리 엄마가 떠올랐다. 자식들에게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가 어려우셨던 분. 하지만 온몸으로 우리에게 사랑을 표현해주시며 애쓰셨던 우리 엄마. 그림책의 저 구절처럼 나도 엄마의 존재를 집안 곳곳에서 느꼈던 것 같다.
외벌이에 공무원인 아빠의 월급으로 삼남매를 부족함 없이 키우려고 부단히도 애썼던 우리 엄마. 내 흐린 기억 속에 엄마는 미용실도 마음대로 못가고 늘 녹슨 가위로 자신의 머리를 자르며 미용실 값아꼈다 하며 옅은 미소를 지으시곤 했다. 그리고 자신의 끼니는 거르면서도 간이 안좋으신 아빠를 위해 아침마다 콩물을 갈고, 삼남매의 아침식사로 참기름 듬뿍 넣은 계란찜을 식탁 위에 늘 올려두셨던 엄마의 뒷모습. 그런 엄마의 애씀의 흔적들이 내 기억 속 여기저기 스며있다.
나는 그 당시 회사를 나가는 친구의 부모님이 부러웠었다. 집에서 늘 후줄근한 티에 댕강 자른 단발머리를 한 엄마와는 달리 깨끗한 맞춤복을 입고 세련된 커트머리를 하고 차를 타고 출근하던 친구의 엄마를 보며 우리 엄마였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늘 품고 다녔던 것 같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부러웠던 사실은 친구 엄마는 늘 친구에게 사랑하는 우리 딸 이라며 그 사랑이라는 표현을 참 잘해주셨다는 것이다.
우리 엄마는 사랑한다는 표현에 인색하신 분이었다. 엄마입에서 사랑한다는 표현이 나오는 건 뭔가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했다고나 할까? 나는 자라오면서 엄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초등학교 시절 부모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라는 말을 선생님께 들었을 때 그 사랑이라는 표현의 의미가 뭔지 곱씹어볼 정도였달까? 성인이 된 지금껏 엄마에게 사랑한다는 표현을 들어보지 못했다. 그래서 어린시절엔 엄마가 나를 사랑하는게 맞을까 의심한적이 꽤 많았던 것 같다.
그러다 이 그림책을 만나고 부턴,나는 머리를 한 대 띵 얻어맞은 것 같았다. 엄마는 사랑한다는 표현만 입밖에 내지 않았을 뿐, 그 누구보다도 사랑한다는 표현을 넘치게 하셨다는 사실을. 학교에서 돌아오면 늘 식탁 위에 올려져있던 간식들.(엄마표 설탕바른 프렌치 토스트. 수제요거트는 아직도 그 맛이 혀끝으로 생생히 기억날 정도다). 늘 가지런히 개어져 있던 내 옷들. 베란다에 촉촉이 물기 머금은 화초들. 저녁마다 땀을 내며 만드시던 감자볶음,오뎅볶음.계란말이 같은 반찬들. 수능시험 준비나 임용고시 준비 때마다 잠못들고 졸린 눈으로 나를 맞이해주던 모습들. 새벽같이 싸주시던 김 폴폴 나던 도시락.
무뚝뚝했던 엄마는 그렇게 사랑이라는 두 글자를 내 온몸에 새겨주셨던 사랑넘치던 사람이었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그 사랑이 온몸에 스며 나의 피와 살이 되었다는 것도. 성인이 된 지금, 엄마는 또 다른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친정 갈 때마다 양손 무겁게 들고 오는 각종 반찬들. 특히 다진 마늘. 손끝이 얼얼하도록 마늘을 까고 팔목이 저릿하도록 다져내는 그 마늘엔 엄마의 깊은 사랑이 담뿍 묻어난다. 나는 된장찌개를 끓일 때나, 콩나물 불고기,생선조림 같은 음식을 할 때 마다 엄마의 사랑을 느낀다. 이 마늘에 담긴 딸을 향한 사랑을. 멀리 있는 엄마가 보고 싶을 때마다 나는 냉동고의 마늘을 가만히 바라본다. 꼭 엄마가 그 자리를 든든히 지키고 있는 것 같달까?
지금 나의 엄마는 냉동고에도 있고, 거실 화초에도 있고,베란다에 내놓은 양파에도 있다. 그렇게 나는 멀리 있는 엄마의 사랑을 집안 곳곳에서 느낀다. 우리 엄마에게도 내 사랑을 느낄 수 있게끔 이번 추석엔 나의 흔적을 곳곳에 남겨두고 와야지. 엄마가 좋아하는 복숭아, 사과를 양손 무겁게 가지고 내려갈 생각에 벌써 마음이 부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