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생각보다 위기해결 능력이 강하다.
어제 과학시간에 참 예쁜 풍경을 보았다.
과학 2단원 슬러시 만들기 모둠실험. 수업 시작 전부터 아이들은 슬러시를 먹을 생각에 한껏 들떠 있었다. 작은 지퍼백에 쥬스를 담고 얼음이 담긴 큰 지퍼백에 쥬스가 담긴 작은 지퍼백을 넣고 흔들면 되는 아주 간단한 실험.
그 어느때보다도 아이들의 눈빛은 사뭇 진지했다. 그런데 어떤 모둠에서 한 아이가 쥬스를 얼음이 담긴 큰 지퍼백에 담는 모습에 내 레이더망에 포착되었다. 내가 주의를 주기도 전 이미 그 아이는 크게 상심해있었다. 자신의 잘못으로 그 맛있는 슬러시가 삽시간에 날아가게 된 아찔한 상황. 나는 그 순간 내 설명을 듣지 않고 독단적으로 행동한 아이가 조금 밉게 보여 그러니까 선생님 말 잘 듣고 해야지. 라고 말했고, 그 아이의 마음은 오죽하겠나 싶어서 내가 아침에 먹으려 사온 쥬스라도 줄까하는 찰나. 그 모둠의 아이들이 대처한 행동에 잠시 말을 잃었다.
그 누구도 그 아이를 비난하지 않았고 천천히 큰 지퍼백에 있는 쥬스를 작은 지퍼백에 조심히 옮겨담기 시작했다. 한 방울이라도 떨어질세라 서로가 필사적으로 잡아주며 말이다. 결국 그 쥬스는 무사히 모둠 아이들의 협동으로 작은 지퍼백으로 이사를 갔고, 실험이 잘 되어 다행히 슬러시를 맛나게 나눠먹을 수 있었다.
어른의 개입이 없이도 아이들은 생각보다 위기를 잘 대처해나간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하는 지 번뜩이는 아이디어도 잘 생각할 수 있는 위대한 힘이 있다. 쥬스를 주지 않고 잠자코 지켜본 나는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아이들은 내가 자주 말하는 말의 의미를 잘 실천했다.
2차 화살을 쏘지 말라.
어제 아이들의 행동을 보고 나도 다시 다짐해본다.
그리고 아이들이 예상치 못한 난관에 봉착했을 때 바로 달려가 해결해주기 보다 옆에 가만히 서서 지켜보고 적절한 도움을 주는 것도 어른의 역할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