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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Nov 17. 2024

이세상최고의딸기-더 이상 설레지 않는 내게 필요한것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생각하기

"딸기가 많아질수록

기쁨이 줄어들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딸기가

뭐냐고 누가 물으면

분명 이렇게 대답할 거야.


사르르 녹아내릴 듯 행복한 맛,

이 세상 최고의 딸기

그것은 바로

처음 먹은 그 한 알."


 얼마 전, 도서관 그림책 큐레이션 코너에 떡하니 자리잡고 있던, 표지도 분홍분홍 설렘 가득한 히야시 기린 작가의 ”이 세상 최고의 딸기" 중 내 마음에 쏙 하고 들어온 문장이다. 이 책의 내용을 간략하게 간추리자면 흰 곰에게 딸기 한 상자가 처음 배달되어 오는 순간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딸기를 처음 접한 흰 곰은 콩닥콩닥한 마음으로 가장 예쁜 접시를 꺼내어 맞을 준비를 한다. 그리고 대망의 딸기 배달의 날. 어찌나 소중한지 딸기씨 하나하나 세어보기도 하고, 딸기 주위를 빙그르르 돌며 춤도 추고, 자기 전까지도 딸기 생각을 하며 잠드는, 마치 첫사랑에 눈을 뜬 수줍은 소녀를 연상케 하는 흰곰.

 그러다 매해 겨울이 되면 딸기는 어김없이 배달되고 게다가 양도 더욱 늘어나게 되면서 흰곰은 딸기에 대한 첫 마음을 잃어가고, 딸기로 인해 느꼈던 기쁨마저 줄어들게 된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외치는 말.

 "이 세상 최고의 딸기는 바로 처음 먹은 그 한알"

책을 뚫고 튀어나올 것만 같은 그 눅진한 깨달음의 말은 닫혀진 내 가슴 속도 활짝 열고 훅 끼쳐 들어왔다.요즘 무기력한 내 삶에 어떤 울림을 주었다고나 할까.

 어느덧 11월, 2024년의 마무리도 두 달이 채 안남았다. 초봄 3월의 설렘과 두근거림 긴장을 지나고 그 어느때보다도 후끈한 열기 속에 휩싸였던 그 여름을 지나 낙엽이 바스락거리며 나무가 옷을 벗을 준비를 하는 처연한 가을을 지나고 이제 겨울의 초입에 들어선 지금. 나는 그 어느때보다도 무기력한 순간을 지나고 있는 중이다. 매일 최선을 다해내야 한다는 어떤 프레임에 갇혀 나는 이것저것 시도해보곤 했다. 바쁜 와중에도 브런치 연재글을 매일 이어가고, 블로그 일상기록, 여행기록도 틈틈이, 아침엔 스쿼트와 새벽독서, 주말엔 기구 필라테스 등 끊임없이 나를 몰아세웠다. 뼛속깊이 부지런한 한국인의 피를 이어받아 나는 120프로를 해야만 잘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왔으니까.

 브런치 연재도, 블로그도, 기구 필라테스도 처음엔 나를 가슴 뛰게 하고 삶에 윤기와 활력을 주는 자양강장제와도 같은 구실을 했다. 그래서 나는 퇴근 후 육아를 해야 하는 뺴곡한 스케쥴 속에서도 틈틈이 해나갔고 심지어 잠들기 직전까지도 블로그 글을 쓰며 체력을 다 빼고 잠에 들어도 하나도 힘이 들지 않았으니까


 영원히 지속되는 설렘이란 없듯이 내게 찾아온 그 설렘과 충만감도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처음이라는 거품이 빠져나가자 내겐 더 이상 그것들이 나를 가슴뛰게 하지 않았던 것이다. 기록하고 쓰는 모든 게 의미없다는 생각까지 미치자 우울감마저 엄습했다. 하지만 또 대충 사는 건 허용되지 않는 성격인 내게 이제 그 모든 것이 강박으로 느껴졌고 힘들어도 매일 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른 수건 쥐어짜내듯 건조한 마음으로 해내곤 했다. 그러다 보니 내 마음 속에 남은 건 성취감이 아닌 무기력감만 남은 것.


 무얼 해도 더 이상 행복하지 않다는 생각은 나를 더욱 더 무기력이라는 음습한 굴레에 더 빠져들게 만들었다. 내 마음에 커다란 구멍하나가 뚫린 듯 허한 마음이 계속 되었고 집에 오면 그 심리적 허기를 냉장고를 여닫으며 음식으로 채우곤 했다. 하지만 그 마음의 허기는 뱃속 허기가 아니기에 음식으론 절대 채워지지 않는 영역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공허한 눈빛으로 식탁 위에 앉아있는데 아들이 탭을 들고 자신의 신생아 시절 영상을 몰두해 보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내 팔뚝만한 크기의 아들이 배냇짓을 하고 초보 엄마인 나는 그 모습이 너무도 진귀한 나머지 시종일관 사랑이 듬뿍 배어난 목소리로 00이 너무 예뻐 라며 도돌이표 처럼 소곤거리고 있었다. 돌연 내 눈에 눈물이 차올랐고 가슴이 찡하게 울려왔다. 그러면서 번뜩 스치는 어떤 깨달음이 있었다.  나는 첫 마음을 너무 잊고 살아가고 있었구나. 다른 어떤 것보다 엄마라는 첫 마음.


 퇴근 후 나는  글쓰기와 독서라는 내 일에만 너무 몰두하느라, 그리고 하루 치 인생을 120프로를 해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감에 정작 우리 아이들, 남편에게는 신경조차 못쓰고 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갑작스레 내 정수리를 뚫고 들어왔다. 글쓰기와 독서를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 퇴근 후 집에 와서 저녁식사만 가까스로 해서 식탁에 내어놓고는 가족들에 대한 관심을 내어주지 않았던 것이다.

 남편이 퇴근해서 눈맞추며 내게 건네는 이런저런 일상 이야기들, 아들이 태권도에서 배워 온 품새를 내 앞에서 득의양양하게 해보이던 모습, 딸이 하츄핑 인형을 들고 내게 재잘거리며 말을 걸어오는 순간, 놓칠 수 없는 그 고귀한 순간들을 나는 얼마나 놓쳐왔던걸까?

 아들은 그 후로도 매일 자신의 어릴 적 영상을 습관적으로 틀며 입가에 웃음을 띄며 내게 이것저것 물어왔다


 “엄마 나 뒤집기 할 때 기분이 어땠어?" 눈을 반짝이며 묻는 내게 "엄마 그런 모습 처음 봐서 가슴이 너무 설레고 두근거렸어" 나의 그 대답이 흡족한지 아들의 입가엔 웃음이 내내 걸려있었다. 그리고 물어봤다.


"00이는 왜 계속 어릴 적 영상을 자꾸 보는 거야? 어떤 게 재미있어?"

 "음, 나는 이 동영상 속 엄마가 나한테 너무 부드럽고 사랑스럽게 말해주고 자꾸 안아주니까 그거 보니 행복해"


 아들이 무심코 던진 한마디에 내 눈자위가 급속도로 붉어져왔고 가슴 한 켠이 아려왔다. 그리고 꼭 안아주며 귀에 속삭였다. "엄마가 앞으로 00이 품새하는 거 집중해서 봐주고 보드게임도 재미있게 같이 하자."아들은 예에 하는 신난 추임새를 넣으며 곧장 내 앞에서서 태권도 품새를 그 어느 때보다도 절도있는 동작으로 내게 선보인다. 나는 한껏 과장된 표정을 하고 박수치며 아들의 어깨를 치솟게 했다.

 늘 처음 시작한 것들은 내게 설렘과 기대를 안겨주지만 그것이 너무 과해지고 내게 압박감이 들게 만들면 내 일상 속 소중한 무언가도 놓치게 만든다. 그것이 딸기든, 물건이든, 돈이든, 어떤 취미든. 나는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것들을 하되, 너무 과하게 나를 압박해가면서 하지 말아야 겠다는 사소한 깨달음. 알고는 있지만 실천이 참 어려웠던 이 진리를 이 세상 최고의 딸기라는 그림책을 통해 다시 한번 느낀다.

 첫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고 느낀 그 설렘과 가슴 콩닥임에 글쓰기를 처음 시작할 때의 그 마음을 대입해본다. 잘해내야한다는 압박감에, 나를 갈아넣어 더 열심히 몰아부쳐야 한다는 생각에 첫 마음을 자꾸 잃어가고 있는 나를 돌아본다. 흰곰이 그림책의 마지막에서 이 세상 최고의 딸기가 처음 먹은 그 한입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을 보며 나도 이런 생각을 해본다.


 내가 처음 엄마가 되어 사랑넘치는 마음으로 아들을 대할 때를 생각하고, 처음 글쓰기에 발을 들여놓으며 느꼈던 설렘과 충만감을 생각하며 모든 것을 처음의 마음으로 생각하며 살아야겠다 라고. 이 세상 최고의 딸기를 만들기 위해선 계속 처음의 마음을 떠올리며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 천천히 시작하며 나아가는 마음이 제일 중요하다고.


 이 세상 최고의 딸기는 내게 엄마라는 이름을 처음 선물해준 아들과 딸 그리고 아내라는 이름을 처음 선물해준 남편 그리고 작게나마 쓰는 삶을 선물해준 글쓰기니까. 그  소중한 딸기의 단맛을 잃지 않고 오래도록 음미해나가기 위해서 늘 잊지 말아야 할 일.


 처음의 마음 기억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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