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화려한 겉면 뒤엔 어두운 이면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얼마 전, 인문학 발표대회 차 들른 한 초등학교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난 안신애 작가님의 “멋진 하루”. 제목과 달리 이 책에 숨은 묵직한 메세지가 내 가슴을 쩡 하고 울렸다. 알고도 모른 체 한 불편한 진실과 어둠을 그림책을 통해 정면으로 응시했기 때문일까?
이 책은 우리가 먹고 마시고 사고 즐기는 것 이면에 숨은 어두움에 대해 적나라하게 고발하는 책이다. 주 배경은 쇼핑몰이고, 쇼핑몰에서 소비하는 모든 것들의 배후에 존재하는 동물들의 처참한 희생장면이 이 그림책에서 주목할만한 점이다.
무엇보다 내 가슴을 서늘하게 만든 것은 책 두 번째 장면. 밍크코트를 신나게 입어보며 자신이 산 코트를 sns에 자랑하는 장면 곧바로 뒤에 등장하는 처참한 장면때문이다. 좁은 공간에 갇힌 서너마리의 밍크들. 그들을 향해 손가락끝을 구부려 한껏 겁주는 듯한 모양새인,검은 장갑을 낀 사람의 두 손. 사지에 내몰려 공포에 휩싸인 채 작고 까만 눈을 크게 치뜬 밍크들의 모습은 내 망막에 짙은 흔적을 남겨 오래도록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장면은 몇 년전 겨울에 입을 앙고라 니트를 검색하다 우연히 유튜브 알고리즘에 떠서 본 충격적인 영상을 떠올리게 했기때문이다. 영상 속에는 등장하는 산채로 털이 뽑히는 앙고라 토끼들. 그들의 단발마같은 비명 소리가 내 귓속을 날카롭게 파고 들었고 ,깨어진 유리조각처럼 내 마음을 할퀴었다. 그 섬뜩함에 나는 그 이후 앙고라 니트를 쳐다도 보지 않았을 뿐더러 , 쇼핑몰 쇼윈도의 환한 조명아래 보얗고 우아한 앙고라 니트를 볼때면 어디선가 토끼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아 마음이 괴로웠었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라는 말을 실감하게 해준 그림책 멋진 하루. 그리고 내가 몇 년 전 본 영상. 아무생각없이 물건을 소비하는 내게 이 둘은 물건의 화려함 이면에 숨은 어두운 그림자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대단한 동물보호운동가는 아니지만, 적어도 물건을 소비할 땐 앞으론 그 물건 이면에 숨은 동물의 참혹함을 떠올리며 한 번 더 생각하게는 되리라.
이 그림책은 우리가 소비하는 물건 이면에 숨은 어두움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사람과 동물이 함께 공존하며서로가 서로를 위해 도움이 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저자의 의도. 하지만 나는 이 그림책이 비단 화려한 “물건”뒤에 숨은 어두움이라는 것만을 알려주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네 인간의 화려한 삶 뒤에 숨은 어두움도 함께 생각해보게 만드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급류처럼 밀려드는 sns속 화려한 사람들의 모습들. 넓은 평수의 집, 명품 차와 가방 그리고 옷. 연예인처럼 날씬하고 예쁜 몸매의 소유자들. 해외여행이나 비싼 음식점 방문 등. 화려한 것들이 그 세상에서는 차고 넘친다. 그것만 보자면 그 사람들 모두는 인생의 하이라이트를 매일 살고 있는 셈이다.
문득 나는 그 모습을 “멋진 하루”속 그림책에 대입해본다. 명품 가방을 들고 한껏 포즈를 취한 화려한 모습. 하지만 바로 뒷장엔 불꺼진 좁은 방에서 카드명세서를 보며 한 숨을 내쉬는 누군가의 뒷모습. 다이어트를 해 날씬한 몸을 하고 한껏 포즈를 취해 찍은 바디프로필 사진. 바로 뒷장엔 폭식과 절식을 반복하며 우울한 모습을 하고 있을 누군가의 뒷모습.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sns속 화려한 뒷모습에는 그림책 멋진 하루에 등장하는 잿빛의 어두움이 존재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문득 마음에 가시가 걸린 듯 살짝 불편해진다. 그리고 예전에는 무턱대고 부러운 눈으로만 보던 그 화려함이 더 이상 화려하게만 느껴지지 않게 될 것 같았다.
물건이든 사람이든 보이는 이면에는 어두움이 있기 마련이다. 물론 나도 누구의 눈에는 화려해보이는 면이 있을지도 모른다. 얼마 전, 한 선생님께서 했던 말씀이 갑자기 떠오른다. “선생님은 늘 밝고 좋은 기운을 가지고 있어서 세상 힘든 일이 뭐가 있을까 싶어” 나는 그 선생님께 “저도 마음 속에 늘 어두움 몇 개는 안고 살고 있어요” 라고 대답하자 부러움 가득한 타인의 눈으로 바라보던 눈빛이 자신의 삶을 보는 듯한 애틋한 눈빛으로 바뀌었던 순간을 기억한다.
화려함 이면에 숨은 어두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뗄려야 뗄 수 없는 이 불편한 진실. 물건이든 사람이든 이 진실을 똑바로 응시하고 살아갈 수만 있다면 삶이 조금 덜 팍팍하지 않을까? 어두움을 직시하고 그 어두움을 조금 옅게 만들어가는 방향으로 살아가면 그것은 물건이든 동물이든 사람이든 모두가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게 하는 작은 날갯짓 정도는 될 수 있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