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와 글쓰기를 아이들에게 부단히 시켜야 할 이유
두달 동안 준비해온 인문학 발표대회가 어제부로 끝이 났다. 내가 지도한 아이는 다행이도 작은 목소리를 뚫고 나올 만큼의 진심을 담은 발표로 은상이라는 쾌거를 이루어냈다. 상이 전부는 아니지만 여섯시간 가까이 글을 쓰고 발표하고 기다렸던 힘든 시간을 단숨에 날려버릴 만큼 은상은 우리에게 참 값진 것이었다.
다른 것보다 나는 이번 발표대회로 절실히 꺠달은 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독서와 글쓰기가 가진 힘이다. 10월 10일 그날은 우리에게 잊지 못할 감동을 남겼다. 바로 한강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소식이었다. kpop, 한류드라마는 이미 전세계의 인정을 받을만큼 괄목한 수준을 지녔으나, 문학이나 예술분야에서는 우리나라가 이렇다할 성과를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한강 작가의 수상 이후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문학계에 일순 희망의 빛이 돌기 시작했다. 한강 작가의 작품을 읽어보지 못한 우리 반 아이들에게도 한강 작가는 이미 kpop스타를 능가하는 존재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이번 대회에 참가한 아이들은 그 참가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존재로 느껴졌다. 스마트폰 속 각종 숏폼과 영상물,게임매체에 빠져 책을 멀리하는 현실 속에서 이 아이들은 책과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사실 자체가 뭔가 희귀한 존재처럼 느껴졌달까? 교실에 갇혀 2시간이라는 지난한 시간을 견디고 책을 읽고 책 주인공의 이야기에서 자신의 경험을 이끌어내고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글을 쓴다는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일. 나는 지도교사 대기실에 앉아 두시간을 버티며 글쓰기에 골몰하고 있을 아이들을 떠올리며 마음이 잠시 경건해져왔다.
두시간여쯤 지나고, 대망의 발표대회시간. 국민의례와 대회장의 축사가 이어졌고 드디어 아이들의 발표차례가 돌아왔다. 내가 지도한 아이는 21번 중 9번째. 작은목소리지만 자신이 쓴 글은 당당히 말하고 단상에서 내려오길 속으로 빌고 또 빌며 발표를 듣기 위해 온몸의 촉수를 세웠다. 1번 아이의 발표가 시작되자 대회장은 일순 고요함이 내려앉았다. 정적을 뚫고 1번 참가자의 우렁찬 발표소리가 대회장을 가득 울린다. 아이들이 읽은 책의 제목은 돌돌한 아이. 대략적 줄거리는 똘똘한 아이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엄마가 간곡히 바라며 낳은 아들이 돌처럼 단단한 모습을 하고 태어났고, 그 아이에게 끊임없이 똘똘함을 요구한다. 하지만 그 아이는 똘똘함 보다는 돌처럼 굳세고 단단하게 자신이 가진 온갖 트라우마와 고난을 극복하며 성장해나간다는 성장이야기다. 아이들은 같은 책이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았다.
자신은 돌돌한 아이 속 엄마처럼 아이에게 강요하지 않는 부모가 되겠다고도 하고, 초등학교 2학년 때 자신도 돌돌이처럼 놀림을 받은 적이 있었는 데 그때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게 후회된다고 앞으론 강하게 대처하겠다고도 하고, 늘 자신없이 살았는데 돌돌이처럼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다짐을 하기도 하고,자신이 가진 트라우마를 계단삼아 더 발전하는 아이로 자라나겠다고도 한다. 21번까지 발표를 듣는 동안 두시간 넘게 소요되었지만 그 시간이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바로 아이들의 눈빛에서 강하게 나온 앞으로의 자신의 삶에 대한 결연한 의지와 미래에 대한 희망 때문이었다. 두 시간동안 오롯이 경험한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아이들은 이미 다른 아이들에 비해 성장한 삶에 한발짝 앞서 다가간 것이다.
주인공의 삶에 자신의 삶을 포개어보며 위안을 얻기도 하고, 주인공의 좋은 점을 본받아 자신도 한층 성장하겠다고 하고, 옳지 못한 행동을 하는 인물을 보며 반면교사 삼아 자신은 그렇게 하지 않겠다며 큰 목소리를 내는 아이들. 그 아이들에게서 작은 한강을 보았고, 그 작은 한강들이 모여 만드는 밝은 세상을 그리며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독서가 주는 가장 큰 선물인 것이다.
아이들에겐 이런 경험들이 참 많이 필요하다. 늘 어른들이 그런 경험들을 전해줄 수 없으니 가장 효과적인 경험은 바로 독서. 책 속 주인공들의 삶을 독서를 통해 대신 살아보며 위안을 받기도 하고, 용기를 얻기도 한다. 자신이 가진 문제를 찾기도 하고, 또 그 문제에 갇히지 않고 주인공처럼 굳세게 이겨내보려는 다짐도 하게 되니 이보다 더 훌륭한 인생경험이 있을까?
이날 아이들의 발표를 통해 나도 내 자신이 가진 트라우마를 계단삼아 더 성장한 내 자신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거듭 노력을 해야한다는 교훈도 새겨본다. 이 날 대회장에 울러퍼진 아이들의 내면의 목소리들은 앞으로 아이들의 삶에 중요한 방향키가 되어 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독서와 글쓰기를 아이들에게 계속 시켜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