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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Nov 03. 2024

특종 쌓기의 달인-내가 도전을 멈추지 않는 이유

계속 무너져도 계속 쌓아나가는 걸 반복하며 성장한 나에 한 걸음 다가가기

 "매일 매일 탑을 쌓는다고 들었습니다. 이유가 뭔가요?"

 "좋아하니까요"


 특종 쌓기의 달인 그림책의 대화내용 중 내 마음에 가장 크게 와닿은 부분이다.

연두색 표지에 소파 가구 수박 변기 컴퓨터 등 온갖 삼라만상의 물건들이 엉성하게 쌓인 형태의 그림이 박힌 제목도 인상적인 그림책이다. 매일 쌓기를 하는 아이들이 신기한 비둘기 기자, 그 아이들에게 쌓기를 하는 이유를 계속 묻고 아이들은 그에 답하는 인터뷰 형식의 그림책. 얼핏 보면 아무 의미 없어보이는 말들이지만  한장 한장 넘겨가며 달라지는 아이들의 대답을 읽다보면 실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도전하는 일종의 끈기를 엿볼 수 있다. 매일 탑을 쌓은 이유는? 무너뜨리려구요. 다시 쌓으려구요. 그 글귀에 나는 얼마 전 내게 닥쳤던 작은 좌절의 경험이 불현듯 떠올랐다.


  에버랜드에서 교사들의 교육자료를 공모전을 개최한다는 문자를 우연히 받았고, 나는 난생 처음 교육자료전에 득의양양하게 도전했다가 고배를 마셨다. 없는 시간을 쪼개어 새벽같이 일어나 관련콘텐츠를 수집해가며 나름 열과 성을 다해 완성한 교육자료. 나는 왠지 모르게 상을 받을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회심의 이메일을 보냈다. 결과발표날, 손꼽아 기다리던 문자엔 아쉽지만 다음 번에 함께 합시다. 라는 내용이 내게 가시처럼 날아들었고, 그 예쁜 가을날의 단풍이 내겐 성가신 존재처럼 느껴진 그 날 하루였다. 최근들어 실패한 적이 없었던 터라 나는 그 문자에 크게 좌절을 경험했었다.


 생각해보면 최근들어 무언가에 도전한 일이 없어서 실패한 경험도 없었고, 그 실패에 맞설 면역력조차 없었는 지도 모른다. 거두절미하고 나는 하루종일 좌절의 기분을 충분히 맛보고, 다음 날엔 개운하게 털어버렸다. 돌아보니 새벽에 일어나 단 한시간만 투자했고, 다시 읽어보고 보완하거나 덧붙이거나 하는 수고로운 작업을 더 거치지 않아서였는 지도 모른다. 나름의 실패요인을 찾고 나니 더 이상 그 실패에 파묻히지 않을 수 있었고 다음 도전에는 부족한 점을 보완해 더 성심성의껏 해보자는 결연한 의지도 들었다.


 그러다 얼마 전, 교직원 메신저로 안전교육관련 에세이를 모집한다는 연락을 우연히 받아들었다. 평소라면 가뿐히 제쳤을 내용이지만 어쩐지 다시 도전해보고 싶어졌다. 에버랜드 교육자료전 도전으로 내 마음 속 무너진 탑을 다시 한 층씩 쌓고 싶다는 의지가 횃불처럼 활활 타올랐기 떄문일까. 나는 또 다시 새벽같이 일어나 하얀 창을 띄우고 안전교육에 대한 내 경험을 떠올리며 한 줄씩 아래로 층을 쌓아간다. 그렇게 인고의 시간끝에 탄생한 에이포 두장 분량의 높은 층. 무너지지 않게 고이 바탕화면에 잘 저장해둔다. 그리고 산책을 하다가도, 샤워를 하다가도 저장해둔 탑을 계속 떠올렸다. 그러면서 아이디어가 퐁퐁 샘솟아 오른다. 이런 내용을 더 추가해야지, 이건 뺴야지 하면서 마음 속으로 커서를 올려 지웠다 추가했다 반복 후 다시 바탕화면에 저장된 나의 글층을 불러내어 몇 문장은 빼고 몇 문장은 다시 쌓아올린다.


 무수한 과정을 통해 내 글층은 무너졌다 쌓아올랐다를 거듭했다. 장장 4일 동안 내 글층은 마치 아들이 좋아하는 젠가처럼 쌓고 무너지고를 반복하여 오늘 아침 겨우 완성된 탑의 형상을 갖췄다. 완벽하다고는 할 순 없지만 무수한 노력의 과정의 산물이었다. 에버랜드 자료전과는 확연히 다른 열정이었다. 아마도 그 뼈아픈 경험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겠지 싶어 그 경험 또한 귀중하게 여겨진다.


 오늘 아침 최종 완성본 메일을 보내고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떄와는 달리 이상하리만치 결과가 궁금하지 않았다. 글 탑을 쌓고 무너뜨리고 하는 과정에서 얻은 귀중한 선물이 있었기 때문이다.바로 내가 "이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자료전같은 딱딱한 형식의 글보다 나는 내 경험을 바탕으로 술술 써지는 이런 에세이류를 끔찍이도 좋아한다는 것. 누가 시키지 않아도 벌떡 일어나 글을 다듬고, 다른 일을 할 때도 내내 머릿속에 떠오르던 내 문장들. 그림책 속 아이들이, 누가 보았을 땐 무의미한 곧 무너질 탑을 쌓는 이유가 "그저 좋아하니까요"라고 단순명쾌한 대답을 내놓았듯이. 나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2주 후 결과 발표날, 원하던 상을 받지 못해 공들여 쌓은 탑이 무너지더라도 나는 웃으며 다시 쌓을 수 있을 것만 같다. 현실 속 비둘기 기자와 같은 사람들이 왜 그런 무의미한 일을 하는거야? 라고 물으면 나도 아이들처럼 당당히 대답하리.

 "그냥 내가 좋아하는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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