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유미 Nov 24. 2024

오늘은오늘의플리에부터-육아지옥에서 나를 건져낸 이것은?

일상을 시작하기 전 기본기인 루틴은 하루를 시작하게 하는 활력이다

하나 둘 셋 넷

발레를 시작한 지유도

세계적인 무대에서 춤추는 제이도

날마다 플리에부터 연습해요.

하루 또 하루가 모여

오늘도 아름다운 하루를 만들 거예요.


친정에 왔다가 우연히 도서관에서 발견한 책, 김윤이 작가의 오늘은 오늘의 플리에부터 그림책 내용이다. 플리에란 발레를 연습할 때 가장 먼저 익히는 기본동작으로 무릎을 굽히는 동작이라고 그림책에 설명되어있다.발레엔 문외한 인 내게 플리에는 다소 생경하게 느껴졌지만 의미를 알고 나니 꼭 발레에만 적용할 수 있는 단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인생에서 맞닥뜨리는 모든 일의 기본도 바로 플리에부터 시작해야 하니까.


  플리에의 뜻을 알고 나니  어린 시절 피아노 학원에서 연습했던 하농이 섬광처럼 떠올랐다. 본격적인 피아노 곡을 연주하기 전 손가락을 예열하는 느낌으로 연습하던,아직도 선연히 기억나는 하늘색 표지의 하농. 피아노의 가장 낮은 음계를 계단오르듯이 무한반복하는 건 무척이나 지루하게 느껴졌다.  마른 낙엽처럼 건조하고도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이 의미없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을까 뇌까리며 치던 그 하농. 하지만그 지루함을 이겨내고 나면 손가락이 부드럽게 풀려 다음 순서로 치는 체르니에선 손가락이 건반 위에서 춤을 추듯 부드럽게 움직여졌던 걸로 기억한다.


 플리에와 하농. 이 두가지는 본격적인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 기본기를 탄탄하게 하는 것의 중요성을 시사해주는 단어다. 두 단어를 곱씹고 있자니 아침에 일어나 본격 하루를 시작하기 전 화력을 돋우는 루틴의 중요성도 떠올리게 만들었다.


 나는 햇수로 이년째 아침에 일어나서 반복하는 루틴이 하나 있다. 바로 미지근한 물을 한 잔 마시고 가벼운 스트레칭을 하고 스쿼트 300개를 하는 것. 누군가는 출근 전에 스쿼트를 하면 기운빠지는 일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오히려 스쿼트는 내게 하루를 살아갈 의욕을 돋우는 예열작업이다.


 배에 단단히 힘을 주고 발바닥을 땅에 힘껏 딛으며 앉았다 일어났다 동작을 무수히 반복하다보면 어느새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볼이 발갛게 상기되고 등줄기에 땀이 흐른다. 지겹기 짝이 없지만 그 동작을 반복하고 200개를 채운 순간. 하루를 시작할 에너지가 철갑처럼 온몸을 단단히 감싸고 그렇게 오늘을 힘차게 시작하게 된다.


 하루를 시작하는 기본기와도 같은 루틴의 중요성을 알고난 뒤 나는 작년부터 꾸준히 학교에서도 루틴을 만들어 아이들과 실행중이다. 1교시 수업을 시작하기 전 우리 반은 늘 스트레칭 1분과 심호흡 3번. 오늘의 명언 한줄 복창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아침마다 피곤한 표정으로 텅빈 눈빛으로 앉아있던 아이들은 짧은 이 루틴을 하고 나면 눈빛에 생기를 머금기 시작한다.  


 내가 이 루틴을 시작하게 된 건 바로 육아휴직 후 내게 찾아온 삶의 무력감때문이었다. 늘 두 아이를 돌보느라 피로에 허덕이며 잠들고 난 뒤 맞이하는 아침은 천근만근이었다. 피로를 털 새도 없이 아기띠로 둘째를 안은 채 첫째의 등원을 준비하던 정신없는 하루에 지쳐 내 몸과 마음은 바싹 마른 장작이 되어갔다.


 그러다 도서관에서 운명처럼 만난 “나의 하루는 새벽4시30분 부터 시작된다”라는 책에서 본 일상루틴의 중요성을 접하고 속으로 이거다 싶었던 내용이 있었다. 조금 일찍 하루를 열고 미지근한 물마시기와 같은 작은 루틴을 실행하는 것이 삶의 활력을 준다는 것.


 그때부터 나는 새벽 4시 30분은 아니지만 아이들이 깨기 20분 전에 일어나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고 미지근한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사소한 행위지만 그렇게 보낸 아침은 그 어느때보다도 상쾌하고 활력이 솟았다. 육아는 여전히 나를 무겁게 압박해왔지만 그 20분이 그 무게를 덜어주어 하루하루를 무사히 버티게 만드는 힘이었다.


 그 이후 둘째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게 되면서 아침 스쿼트도 추가되어 지금에 이르렀다. 스쿼트도 처음엔 50개부터 시작해 조금씩 늘려가며 몸을 서서히 적응시켜나갔다. 처음엔 다리도 후들거리고 이 힘들고 지루한 걸 왜 하고 있지 회의감이 들었지만 이젠 많은 힘을 들이지 않고 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뭐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귀결되었다. 물론 몸이 피곤할 땐 100개로 줄이기도 하면서 너무 루틴에 얽매여 강박이 되지 않게끔 조절한다. 루틴이라는 건 내 삶에 활력을 주기 위함이지 압박을 주면 안되는 걸 아니까.


 오늘은 오늘의 플리에부터. 이 책은 발레용어에 관한 책이지만 하루를 시작하는 데 일상의 기본기가 중요함을 짧은 글을 통해 사람들에게 알리려는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매일 주어지는 하루가 버거운 사람들에게 그나마 하루를 가뿐히 시작하는 방법은 바로 자신의 플리에를 찾아 꾸준히 행해나가는 것이라는 걸.


 모두가 맞이하는 하루는 색색깔 볼펜처럼 다양하지만 자신에게 맞는 플리에를 찾아 노란색이라는 활기찬 색감으로 그리는 하루를 맞이하길 바래본다.

유난히 햇살이 창으로 밝게 비쳐든 주말 아침, 나는 오늘도 미지근한 물로 오늘의 플리에를 시작래보려한다.


 오늘은 오늘의 플리에로부터 시작하는 당신의 하루끝이 더없이 평온하고 포근하기를 바라며.

 

 

이전 16화 이세상최고의딸기-더 이상 설레지 않는 내게 필요한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